왜 사람들은 인간의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끈질기게 자연에 의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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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인간의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끈질기게 자연에 의존하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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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사실과 당위에 관한 철학적 인간학 | 로레인 대스턴 지음 | 이지혜·홍성욱 옮김 | 김영사 | 124쪽

 

자연(is)에서 당위(ought)를 찾으려는 시도가 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계속해서 자연 질서로부터 도덕적 질서의 모델을 찾는가? 토머스 쿤 이후 과학사학계를 이끌어온 저자 로레인 대스턴은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특정 자연, 지역적 자연, 보편적 자연법칙 세 가지로 나누고, 각각이 사람들에게 어떤 규범을 제공하는가를 살펴보면서, 규범성이라는 개념을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모든 여성의 천직은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인민 대다수는 귀족과 성직자에게 종속되는 것이 자연스럽다"처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낡은 주장에서부터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들을 수 있는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 "이 폭우와 홍수들은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는 부자연스러우니 식품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같은 말들까지, 지역과 시기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도덕적 규범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왜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먼저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도덕적 규범을 끌어내는 세 가지 유형의 자연이 있다. 

1) ‘특정 자연’은 사물의 본질로서의 의미, 즉 그것의 존재론적 ‘신분증명서’로서의 자연이다. 특정 자연은 그들 자체를 재생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의 질서를 재생산한다. 이런 맥락에서 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괴물이나 생식을 목표로 하지 않는 동성애는 모두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2) ‘지역적 자연’은 경관에 특색을 부여하는 동식물, 기후, 지질의 특징적인 조합이다. 지역적 자연은 '생태계'라는 자연 체계의 평형상태를 통해 '질서'와 연관된다. 이 경우 불균형, 불안정은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3) ‘보편적 자연법칙’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불가침의 질서를 뜻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자연철학의 확실성은 범위를 제한하는 대가로 얻어졌다.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의 권리선언 모두가 자연이 보장하고, 그렇기에 보편적이며 양도 불가능한 권리라는 언어를 가져다 썼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의 이러한 질서들이 훼손되었을 때 인간은 보통 감정과는 다른 독특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는데, 공포(horror), 두려움(terror), 경이로움(wonder)과 같은 ‘격정(passion)’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격정들은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적인 괴로움 같은 극단적인 상태이며, 우리를 불시에 덮쳐 사로잡는다. 이는 자연의 질서가 사람들의 경험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대스턴은 도덕적 규범성은 일종의 질서(order)를 전제로 하며, 질서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듯, 질서 없이는 도덕이나 법이 있을 수 없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내일 해가 뜰 수도 있고 안 뜰 수도 있고, 과거가 미래를 안내하지 않는 땅은 사람의 땅이 아니다.” 이렇게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는 연결되지만, 독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좋다, 하지만 결국은 사실과 당위를 혼동한 ‘자연주의적 오류’가 아닌가? 왜 굳이 자연인가?” 저자는 이런 의문과 염려에 대해 독창적이고 멋진 대답을 내놓는다. “인간의 몸에 딸린 이성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성이다“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히 대중의 실수, 종교적 믿음의 잔재, 또는 엉성한 사고의 습관으로 설명되는 집단 비합리성의 사례가 아니라, 오히려 합리성의 인간적 형태에 관한 사례이기에 ‘철학적 인간학’의 주제이다. 도덕적 질서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첫째, 자연이 어디에나 있고, 항상 볼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고, 친숙하기 때문이다. 둘째이자 더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질서의 예를 자연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리 표상하는 인간에게는 자연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세 가지 답변을 이 책의 결론 삼아 제시한다. 1) 도덕의 자연화는 약한 전략이다. 모든 규범을 지지하는(또는 전복하는) 수많은 자연적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논쟁의 당사자 모두가 자연을 휘두를 수 있기에, 자연은 정치적 논쟁에서 더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다.” 2) 인간의 질서를 뒷받침하기 위해 자연의 질서에 호소하는 것이 오류가 될 때는 특정한 규범과 질서를 정당화하려고 할 때뿐이다. 규범성 자체와 질서의 연관성은 굳건하고 정당하다. 3) 인간의 몸에 딸린 이성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성이다. 저자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며 “더 완벽하다고 추정되는 다른 유형의 이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갈망은 공개적으로든 은밀하게든 신학에 얽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보편적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철학적 인간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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