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된 공동체, 표류하는 개인…공동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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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공동체, 표류하는 개인…공동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2.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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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위의 공동체 | 장 뤽 낭시 지음 | 박준상 옮김 | 그린비 | 320쪽

 

현대인에게 ‘군중 속 외로움’은 이제 하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지나친 개인화는 각자가 각자 내부에 갇히는 폐쇄성을 양산했고, 이는 공동체라는 이름의 의미를 그저 표류하는 개인들의 집합 정도로 탈색시켜 버렸다. 그렇다고 ‘같음’에 대한 환상을 갖고 어떤 목표를 설정하여 유지되는 공동체를 구상한다면, 이는 파시즘처럼 또 다른 폐쇄성으로 가는 길임이 자명하다. 

장-뤽 낭시의 이 책은 이러한 공동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다. 낭시는 ‘공동체’를 사회와 일치시키려는 이상주의적·전체주의적 시도를 비판하고, 사회 내로 환원되지 않는 또는 법, 이데올로기, 국가, 민족 등에 고착되지 않는 ‘관계’ 자체에 주목한다. 어떤 중심을 세우지 않고, 타자에게 기울며, ‘함께 함’이 곧 목적인 공동체. 낭시는 이를 ‘무위’라 부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연적인’ 평등의 장소이자 소통의 장소로서의 공동체를 구상할 수 있다.

낭시는 동구권의 몰락과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패퇴 이후에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 공산주의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알랭 바디우가 그에게 “최후의 공산주의자”라는 명칭을 부여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낭시는 우리 시대에 여전히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공동존재와 공동체에 대한 요구가 취소될 수 없다고 본다. 낭시의 정치 철학의 독창성은, 공동체가 어떠한 종류의 구성된 사회(크든 작든 모든 동일성의 집단)와도 일치될 수 없다는 주장 가운데에서 발견된다.

플라톤에서부터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주 이상적 공동체는 구축해야 할 사회로서 추구되었다. 과거 공동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기능했던 마르크스주의적 공동체, 연합의 주체가 되는 곳을 중심으로 전체가 그를 재현하도록 만든 파시즘적 공동체는 모두 공동체에 대한 허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낭시의 비판 대상이다. 오히려 그가 우리의 주목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 내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 또는 사회 내에서 고착되지 않는 ‘관계’ 자체이다. 그는 그 무위의 장소가 결코 어떤 구도·목적·기획·프로그램에 따라 규정되거나 고정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라는 존재가 윤리적·총체적·사회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개념적·관념적 구도에도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낭시의 메시지는 사회가 동일성의 가치 기준에 따라 스스로 구조화되고 폐쇄적이 될 때, 즉 사회 바깥의 지정될 수 없는 무위의 관계를 망각할 때 필연적으로 파탄의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다. 또한 그 무위의 관계가, 궁극적으로 어떠한 존재 이유도 존재 목적도 나아가 어떠한 가치도 갖고 있지 않은 유토피아적 장소가 모든 사회의, 현실의 모든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중심에 보이지 않게 놓여 있다는 것이다.

낭시의 무위 개념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낭시가 공동체와 관련해 그러한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낭시가 주장하는 바는, 관념적으로 명확히 표상되지 않는 동시에 사회적·제도적으로 아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어떤 ‘우리’가, 또한 그 ‘우리’를 추진하는 ‘공동체로 향해 있는 정념’이 이미 정립되어 있는 사회·집단과 사회적·집단적 틀을 변형시키거나 나아가 무화·와해시키려는 움직임이 언제나 있어 왔으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움직임은 ‘해체’로 나아가기에 부정적이지만, 바로 ‘우리’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로 향해 있기에 적극적·능동적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무위 또는 무위의 공동체는 ‘우리’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으며 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우리’로 편위되어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개인화된 삶이 제시됨과 더불어, 사회적·정치적·사상적 분쟁이 어느 때보다 첨예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목적이나 갖춰야 할 정체성보다 ‘관계’ 자체를 부르짖는 이 책의 급진적인 메시지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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