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Care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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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Care together?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12.05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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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서울의 한 자치구 소식지에서 ‘영케어러 Care together 지원’이라는 정책 홍보 문구를 발견했다. 아래에 그 문구가 실린 안내문을 자치구 이름과 담당자 연락처만 가리고 그대로 옮겨왔다.

 

‘영케어러 Care together’는 정책 사업의 이름인데 한글로 쓴 영어와 로마자로 쓴 영어가 섞여 있다. 문자인 ‘한글’과 언어인 ‘한국어’는 서로 엄연히 다르고, 한글로 썼다고 해서 모두 한국어인 것 또한 아니다. ‘영케어러’는 한국어 어휘 체계에 편입된 외래어가 아니라 엄연한 영어다. 한국어를 써야 할 자리에서 고유명사라면 몰라도 일반명사를 굳이 이렇게 영어로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안내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뿐만이 아니다. 우선 ‘우리돌봄’과 ‘자기돌봄’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강의 일정’을 소개하는 표에 ‘수술비, 치료비, 입원비’ 등 강의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말들이 들어가 있다. 표 바로 아래에 나오는 ‘욕구’ 또한 적절하게 쓰이지 못한 말이다. 이 맥락에서는 ‘욕구’보다 ‘희망’이나 ‘의사’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적합하다. 그 아래의 ‘심의 결과에 따라 선정되며’는 무엇이 심의 결과에 따라 선정된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한편 서울시청 지하에 ‘시민청’이라는 이름으로 마련한 공간에서는 현재 ‘쉬운 정보 쓰기 프로젝트’와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쉬운 언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힘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쉬운 언어’란 “단순히 쉽게 이해되는 언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 장애인 등 일상적인 언어를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특히 사회생활에서 마주하는 과업들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풀어 쓴 언어 표현”(출처: 필자의 논문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텍스트언어학 48, 2020)을 가리킨다.

한쪽에서는 이처럼 그 어떤 사람과도 쉽게 소통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힘을 기울이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 표현을 정책 안내문에 버젓이 써 놓는다면 이런 모순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싶다. 공공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쉽고 원활하게 소통하는 법’을 늘 생각하면서 일했으면 한다. 그래야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고 공공 기관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들도 뜻하는 바대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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