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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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함정
  •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22.12.05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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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

“엠비시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설명하면서 대통령은 비유를 동원했다. “사법부가 사실과 다른 증거를 조작해서 판결하면 국민들께서 사법부는 독립기관이니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하겠나.” 

그렇지만 대통령의 언급과 달리 사법부는 증거를 조작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가 내놓은 증거를 따져서 판결하는 기관이다. 증거를 조작한다면 그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검찰)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비유는 검찰을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는 ‘증거’는 세상에 없다. 경력을 부풀리는 데 사용한 가짜 논문도, 이익을 주고받은 돈다발도 그 자체로는 범죄의 증거가 아니다. 기소 권력을 독점한 검찰이 그것을 ‘증거’로 만들어야 범죄의 증거가 된다. 검찰만이 증거를 만들 수 있고, 심지어 검찰은 가짜 증거를 ‘조작’하거나 거짓 증언을 교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검찰을 사법부로 뭉뚱그리는 대통령의 비유는 검찰도(!) 증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하는) 증거에 따라 판결한다고 오도하는, 그래서 검찰의 ‘선택적’ 증거 만들기의 현실과 증거 조작의 가능성을 은폐하려는 ‘악의’를 내장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들께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하겠나’라는 반문은 또 다른 왜곡을 담고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의 ‘국민들께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부득이한 조치’를 취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대통령이 문제 삼더라도 취할 수 있는 ‘부득이한 조치’는 (재심청구 이외에는) 없다. 증거를 조작한 검찰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서 문제 삼고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대검과 서울지검 앞에 수만 명 사람들을 모아가지고 거의 검찰을 상대로 협박을 했다. 이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과거 같으면 다 사법처리될 일이다”라며, 국민들께서 검찰의 ‘행태’를 문제 삼는 것에 분노하면서 군부권위주의 시절을 예찬했던 전(前)검찰총장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기서 비유는 비유일 뿐이라고 두남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유가 단순한 ‘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비유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소재)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주제)에 투사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사유 양식이다. 유수 같은 세월이라는 비유는 친숙한 물의 흐름(소재)에 빗대어 알기 어려운 시간의 흐름(주제)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비유에서 초점은 주제에 있지만 그 비유를 구사하는 사람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내용은 소재에 있다. 대통령의 비유에서 초점은 엠비시에 대한 ‘부득이한 조치’이지만 내용은 법원과 검찰을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反)헌법적, 초헌법적 인식을 드러낸다.

‘언론’은 사법부가 아니라고 두호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정의 행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입법부가 정하고, 그런 행태가 있었는지 여부는 행정부가 ‘수사’하고 그 행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사법부가 판단하도록 헌법은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헌법이 나누어 놓은 세 가지 활동을 묶어서 혼자 실행했다. ‘최고’ 권력자가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통할하는 권력 행사 방식은 ‘짐이 곧 국가’이던 절대왕정 시대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구사한 비유는 이런 절대왕정식 권력 행사가 우발적인 일이 아님을 증거한다. “당선인이라는 것은 부동산 매매 계약에서 대금을 다 지불한 상태 아니냐. 등기 이전하고 명도만 남은 상태라 곧 들어가 살아야 되는데 아무리 법률적 권한이 매도인에 있더라도 들어와 살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을 매매하고 이전하는 부동산 즉 ‘사적 소유물’에 빗대는 이 비유는 그 권력이 임기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도구’라는 사실을 무지하거나 무시한다. 부동산의 비유를 사용한다면, 당선인을 명도만 남은 매수인이 아니라 (부동산 주인인 국민과 새로 계약한) 새 임차인에 빗대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을 ‘사적 소유물’로 인식한다면 헌법도 거리낌 없이 ‘매수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수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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