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젠더 전쟁을 젠더 허물기로, 보편권의 회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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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의 젠더 전쟁을 젠더 허물기로, 보편권의 회복을 위해
  • 조현준 경희대학교·영문학
  • 승인 2022.12.0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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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

ㅇ 『개인의 탄생 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 (조현준 지음, 소소의책, 2022.04, 304쪽)
ㅇ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 읽기』 (조현준 지음, 세창미디어, 2022.11, 196쪽)

 

올해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필자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간 조금씩 꾸준히 작업한 결과물이 운 좋게도 한꺼번에 결실을 본 까닭이다. 이 두 저작은 다른 듯 공통점과 연결성이 있다. 지금 대중적 관심의 주제인 MZ세대의 청년 담론과 온라인 논쟁으로 뜨거운 젠더 혐오 양상이 묘하게 중첩되면서 문제의식 및 그 대안과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다. 『개인의 탄생: 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은 MZ세대를 이해할 열쇠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에 집중했고,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 읽기』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가 되지 않고, 자본주의가 물질만능주의가 되지 않을 가능성을 각자가 자기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콘서트 행위’에서 타진한다고 할 수 있다.

2022년 4월에 발간된 『개인의 탄생』은 원래 경희대학교의 대표 브랜드이자 트레이드마크인 후마니타스칼리지의 필수교과목인 중핵과목의 교재로 지난 10년간 자리했던 『우리가 사는 세계』의 대중 교양서용 확장판으로 기획되었다. 10년 이상 후마니타스 중핵교과를 가르쳐온 여러 교수님들이 각각 과학, 사상, 정치, 경제, 사회 부문을 단행본 시리즈물로 출간하기로 했고 그 중 필자가 맡은 책이 사회 부문에 해당한다. 과학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계몽주의 담론이 인권을 위한 대혁명으로, 또 세속적 부의 축적을 정당화한 시장경제로 변화하면서 어떻게 그 체계 안에 사는 인간의 실제 삶을 변화시켰는가가 초점이었다.

그런데 『개인의 탄생』은 생각지 못한 다른 효과를 가져왔다. 원래 18세기 근대 개인주의의 탄생과 21세기 현대 개인주의의 현주소, 앞으로 다가올 미래 개인주의의 방향으로 나누어 기획한 책인데, 의외로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MZ세대 해설서로 읽힌다는 반향이 되돌아왔다. 새 책과 관련된 강연이나 발표장에서의 반응이나 관심은, 근대적 개인의 보편적 인권과 평등한 자유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고찰보다는 청년세대를 이해하고 젠더 갈등이나 세대갈등을 극복할 대안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었다.

Z세대는 1997년 이후 태어난 20대를 주로 지칭한다. MZ세대로 통칭되기도 한다. 하지만 M세대가 1981년생 이후라고 볼 때, 엄밀히 말하면 M세대는 이미 40대이고, Z세대는 20대 초중반이라 둘을 묶어 말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주로 20대 Z세대의 가치는 싫존주의(싫어도 존중), 인코노미스트(인적 관계도 경제적으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없는 신기한 잡학상식), 겟꿀러(내 취향은 비싸도 겟해서 꿀처럼 즐긴다)로 요약된다. 이들은 규칙이나 계약을 중시하고 공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표방한다는 특징을 보이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도 보인다. 

특히 어릴 때부터 자기개발과 경쟁이 습관화된 Z세대는 인간관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여력이 없어 사교활동을 인터넷 온라인으로 대체한다. 그러다 보니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기도 하고 내가 올리는 이미지가 쉽게 디지털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맥락으로 유포 혹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Z세대는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 좋아요와 구독, 친구 추가와 팔로워, 혹은 댓글의 반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거울의 방’에 나를 가두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카페인(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 뿐 아니라 유튜브의 각종 반응에 예민하다보니 오히려 ‘관심의 감옥’에 갇히게 되기도 한다. 

근대의 개인주의는 소속이나 계급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했지만, 현재의 개인주의는 ‘실제 나’보다는 ‘보여지는 나’의 이미지에 과도하게 치중해 현실의 나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미래의 개인주의는 어쩌면 무한한 인터넷 공간에서 환상적인 메타버스를 누리면서도, 몸 자체는 작은 방안이나 사각형 폰에 갇혀 대면이나 넓은 실제 세계의 경험을 제한할 수도 있다. 정신이나 이성만큼 중요한 게 몸이고 감정이라면 여전히 개인이 처한 실제 공간과 실제 인간관계는 무시하기 어려운 중요성이 있다.

『개인의 탄생』은 또한 근대의 성과물인 개인주의가 편협한 이기주의나 아전인수격 이중 기준으로 발전한 것은 아닌지도 되묻는다. 개인과 집단은 상호 공존하는 것인데, 지나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를 낳고, 지나친 집단주의는 전체주의를 낳는다. 지금은 지나친 개인주의의 시대이고 온라인상의 정보의 홍수속에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 수 있는 ‘확증편향성’의 시대기 때문에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이중기준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축약어와 혐오어로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 확장될수록 내 시야는 좁아지고 타인에 대한 경쟁, 분노, 시기, 혐오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올해 11월에 발간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 읽기』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가 2004년 출간한 <젠더 허물기>의 해제이자 다섯 개의 렌즈를 통해 버틀러의 후기 정치윤리학 사상을 조망하려는 책이다. 그 다섯 개의 렌즈는 젠더를 행한다는 것과 허문다는 것, 젠더에서 인간으로 관점의 변화, 인터섹스와 트렌스섹스에 대한 현실폭력에 대응하기, 소포클레스의 고전 『안티고네』 다시 읽기,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이 책은 ‘젠더가 허물어진다’로 시작한다. 젠더 전쟁, 젠더 혐오가 한창인 지금의 대한민국에 젠더가 허물어진다는 생각이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젠더가 행위로 구성되는 만큼 사회적 관계성 속으로 허물어질 수 있다면,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계성과 너와 나의 감정의 문제가 된다. 또한 이성과 합리성의 시대가 엘리티즘으로 지성적 위계를 나누고 능력주의로 귀결된다면, 우리에게 몸이라는 육체적 한계는 먹고 자고 배설해야 사는 유기적 생명체의 동물성과 연결되고, 아무리 지성인이라도 생노병사를 겪는다는 겸허한 토대가 된다. 개개인이 아무리 지성적이고 유능해도 결국 나를 지탱하는 공동체의 제도나 시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 사회 환경, 그리고 자연 환경에 기대지 않고는 내가 생존할 수 없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관계, 사회, 자연과 ‘상호의존’한 결과물이자 효과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버틀러의 『젠더 허물기』는 젠더 수행성 속에 젠더가 사회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논의에서 젠더조차 사회성이나 공동체의 규범적 토대위로 허물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기보다는 그 사회의 사회성, 나를 둘러싼 감정적 관계성, 그리고 나와 공동체간의 상호 연결성이 된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수행적 젠더는 관계성과 사회성 속에서 허물어질 수 있고, 중요한 것은 ‘나’의 젠더보다는 ‘우리’ 모두의 보편 토대인 인간에 대한 성찰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기준에 못미치는 것으로 간주되던 인터섹스와 트렌스섹스에 대한 폭력에 대항할 방법에 초점이 모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버틀러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소포클레스가 쓴 드라마  『안티고네』를 가져와 ‘애도의 보편권’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애도의 권리는 인간의 인간됨을 확인할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근거라고 볼 수 있다. 

이태원 참사로 우리는 이미 158명의 청년을 잃었다. 304명을 잃은 8년 전 세월호 사건에 이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삶의 가능성이 어쩌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사회적 관계망과 안전망 속에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시 『안티고네』에서 조카 안티고네가 외삼촌 크레온에 대항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칙령으로 금지된 오빠의 시신을 흙에 두 번이나 묻는 장면이 떠오른다. 인간의 ‘보편적 애도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목이자 안티고네가 영웅성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안티고네에게는 죽은 사람이 영웅인지 역적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생을 다했을 때 정당한 애도와 장례의 절차를 따라 인간으로서의 그의 삶을 반추하고 기억하며 공공연히 슬퍼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권리는 특정인이 아닌 모든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조현준 경희대학교·영문학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올해 <개인의 탄생>과 <젠더 허물기 일기>를 출간. 저서로 <젠더는 패러디다>,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역사>, 역서로 <써커스의 밤>, <젠더는 변화하는가>, <젠더 허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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