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의 구조변동을 이해하는 방법, ‘하버마스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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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의 구조변동을 이해하는 방법, ‘하버마스 신드롬’
  • 이시윤 박사·사회학
  • 승인 2022.12.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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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 (이시윤 지음, 파이돈, 532쪽, 2022.11)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는 벌써 30년이 지난 과거가 되었다. 아니, 90년대는 이제 지나간 ‘역사’라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인문사회과학장에 관한 이야기다. 80년대에 시작되어 90년대를 거치며 완성된 우리 학술장의 모습은 현재의 학술 공간의 원형을 이루고 있고 그래서 이제는 중요하게 탐색해야 할 역사적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90년대를 조명하려는 시도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90년대의 학술문화, 학생조직 등에 대한 성찰적 접근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부분적이고 파편화 되어 있고 학술공간을 거시적이고 체계적으로 규명하려는 기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하버마스 스캔들: 화려한 실패의 지식사회학>에서 90년대 학술장의 거시적 ‘구조변동’을 오늘날의 우리를 성찰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바라봐야 할 역사적 대상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90년대 중반 ‘신드롬’을 이룰 만큼 고조되었던 하버마스에 대한 관심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급격히 사그라진 현상은 이 시기 학술장의 구조변동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우선 나는 하버마스 인기의 고조와 쇠퇴가 이론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가치보다는 그를 둘러싼 수용자와 소비자들의 상호작용 과정으로부터 설명되어야 한다는 지식사회학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급진적 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론 안에 내재된 불변의 가치 혹은 유용성이란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유용성은 그것을 전유하고 해석, 갱신하는 사람들의 실천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주목한 것은 구체적인 하버마스 이론의 수용 주체들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학술장, 심지어 그 외부의 사람들에게까지 하버마스가 중요한 것으로 비쳐지게 할 수 있었고, 또한 그 과정이 왜 지속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책에서 내가 분석한 것은 하버마스 인기가 주류 이론가 그룹, 변혁주의 신진 학자 그룹,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신진 하버마스 연구그룹’이 결합된 ‘네트워크’ 형성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의 쇠퇴 또한 세 그룹의 연결이 끊어지고 또한 각 그룹들이 내부적으로 분해되는 과정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특히 주류 그룹은 제도권 특유의 학술적 실천성향인 ‘딜레탕티즘’이 작동하여 이들로 하여금 매번 다른 이론을 새로이 찾아 나서면서 이탈했고, 변혁주의 그룹은 그들에게 지배적이었던 ‘(학술적)도구주의’가 학술적 몰입보다는 사회적 개입의 목적에 복무하게 이끌었다. 무엇보다, 사실상 수용의 중심 주체였던 신진 하버마스 연구그룹은 제도권-변혁주의 진영 사이에 있었기에 두 성향 모두에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이들이 딜레탕티즘과 도구주의 사이에서 스스로 하버마스 연구를 놓아버렸다는 점은 치명적이었다. 한마디로, 하버마스 인기의 상승과 하강의 원인은 그것을 수행한 구체적 학술장 내 행위자들의 조직적 실천과 그것을 추동한 학술적 ‘아비투스’로부터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버마스 수용과정에서의 이러한 부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변화하는 90년대 학술장의 공간 속에서 보여주었던 어떠한 가능성 때문이다. 즉, 한때 하버마스에 대한 집중된 관심은 주로 신진 하버마스 연구그룹이 중심이 되어 ‘하버마스 네트워크’가 생산해 낸 담론, 즉 그의 비판이론이 한국사회의 변화하는 현실을 설명하고 참고점을 줄 수 있는 좋은 지식인지를 두고 엉겨 붙은 비판적 대화의 결과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학술장 내 집합적 ‘상징투쟁’의 형성과 그 결과인 장의 진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장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동일한 관심사를 두고 더 객관적이고 옳은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학자들의 집합적 몰입을 제도적-문화적으로 안착시킬 때 그 장은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버마스 현상은 내가 보기에 적어도 90년대 인문사회과학장에서 다른 어떠한 경우보다 성공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는 끝내 딜레탕티즘과 도구주의 사이에서 해체되고 말았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90년대를 통과하면서 장의 내외부에 두 성향이 지배적인 학술 실천으로 고착화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즉, 점차 해외 유학을 마치고 최신 서구이론을 도입해 오는 제도권 학자들의 단발적 논의가 또 다시 새로운 이론의 도입으로 대체되는 경향과, 주로 비판적 학자들이 시급한 사회적 현안들에 개입하여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 하는 경향의 두 가지 이질적 실천이 ‘중심부’와 ‘주변부‘에 병존하는 장의 구조가 강화된다. 하버마스 수용 학자들의 분열은 정확히 이러한 장의 상태에 구속되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초래된 것이었고 또한 이 자체가 다시금 장의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버마스가 중요한 이론이므로 더 성공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하버마스가 아닌 그 어떤 이론이라 하더라도 모든 연구자가 하나의 자원에만 몰입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여러 이유들로 인해 연구관심을 바꾸고 새로운 지적 자원을 찾아 이동하는 것도, 사회 부정의에 맞서 개입하는 도구적 실천도 무척 중요한 학술적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정작 우리 학술장의 중심부에는 공통의 담론이 존재하지 못하고 서로 유리된 학자들 사이 공회전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 이것이 장의 구조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은 문제다. 하버마스 수용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당연히 30여 년이 지난 지금, 학술장의 구조적 질서는 그때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문제적인 것이 되어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버마스 수용 사례로부터 출발하여 1990년대 우리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이 어떠한 모습으로 구조화 되었는지, 그 속에서 어떠한 다양한 시도들이 어떠한 조건 하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얼마큼의 성취를 이루었고 또 어떠한 한계를 가지는지 하나하나 검토하는 작업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보면 어떨까? 만일 이러한 ‘공통의’ 작업들이 이뤄진다면, 그 작업들 사이 어딘가에서 분명 오늘날의 우리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가능성들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 스캔들>의 역할은 그 시작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이시윤 박사·사회학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공주대학교, 청주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사회이론, 지식사회학, 종교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서구이론 수용 현상에 대한 연구 시리즈를 비롯하여 비판이론과 종교, 생태주의가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을 분석하는 기획들을 진행 중이다. "1990년대 학술장의 구조변동 속에서 한 하버마스주의 철학자의 궤적: 장춘익의 지적 여정의 의의와 한계", "'두 개의 운동'으로서의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 종교시민운동 축의 복원과 시민환경운동과의 관계 분석", "한국 종교지형에 대한 이론 분석과 통합 과제(오세일 공저)"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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