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뉴딜로 재탄생한 美港…경주 수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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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뉴딜로 재탄생한 美港…경주 수렴항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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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 경주시 양남면 수렴항

 

수렴 바다의 황새바위와 납작한 바위군. 황새바위 가장 높은 봉우리에 수백 년도 더 되었다는 개동백나무 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 바다의 바위는 생경했다. 모든 것들의 이름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납작하고 평평한 바위는 마치 최선을 다해 광합성을 하려는 고집 센 수생식물처럼 보였다. 그것은 언젠가 영상으로 본 판상모양의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새들은 익숙한 조심성을 가지고 조금 떨어진 바다의 작은 바위들을 뒤덮고 있었다. 그로부터 또 조금 더 먼 바다에는 섬이라 할 만한 바위가 떠올라 있다. 황새바위 또는 군함바위라고 부른다. 그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수백 년도 더 된 개동백나무가 살고 있다고 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그 나무를 찾았다. 저기, 작고 앙상한 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것은 허공을 향해 나에게 오라는 듯 팔을 뻗고 있었다.  
 

                             수렴항. 내항에 배들이 많고 마을에 비해 큰 규모라고 느껴진다. 

수렴(水念)은 물을 생각하는 것. 이 이름이 곁을 맴 돈지 제법 오래 되었다. 수렴은 경주의 남쪽 끝이다. 원래는 임진왜란 때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가졌던 곳이라 해서 수영포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렴리가 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접안하기 가장 좋은 곳 1위가 수렴해변이었다고 전한다. 바위들 덕에 은폐가 가능하고 수심이 완만해서 접안이 좋았다고. 수렴항의 짧은 방파제 입구에 황새바위를 조망하는 동그란 전망대가 있다. 확실히 군함을 더 닮은 듯하다. 밀물이면 황새바위는 물 한가운데 떠 있는 배처럼 보이지만, 썰물 때면 바위 주변의 수심이 허리춤 정도라 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대나무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 ‘꼬루메’라는 해초를 딴다고 한다. 가을에는 바위를 청소한다. 깨끗한 바위 표면에는 돌미역 종자가 자연스럽게 붙는다. 겨울 동안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자라난 미역은 수렴리 해녀들이 채취해 정성으로 말린다.  

 

                수렴항 방파제에 설치되어 있는 컬러 테트라포드. 미관과 안정성을 높인 제품이다. 

방파제는 최근에 보강공사를 한 듯하다. 얕은 바다 쪽에는 계단식 블록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에 앉으면 저 생경하고 납작한 바위가 바로 앞이다. 그들은 등을 대고 반듯이 누워 물결은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천천히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는 얼굴들이다. 방파제 끝에는 옅은 컬러에 돌기가 있는 테트라포드가 쌓여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선명한 색조로 그려져 있다. 컬러 테트라포드(T.T.P)는 오랜 연구 끝에 우리나라 자체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천연광물질에서 추출한 도료로 콘크리트에 색을 입혀 미관을 고려했고 돌기를 통해 사고 가능성을 줄였다.   

 

                            수렴마을 팽나무 할머니 당산목. 내항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서 있다. 

내항에 접한 집들은 모두가 조그마하고 대부분이 횟집이다.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는 듯한 횟집의 옆 벽에 아름다운 팽나무가 서 있다. 할머니 당산나무다. 굵은 가지에 금줄이 매여 있다. 금줄을 맨 가지는 벽 너머로 가지를 힘차게 뻗어 내항을 바라본다. 얼핏 보이는 수평선에 만족하고 햇빛과 물가를 사랑하며 마을의 소박한 경치에 충실한 모습이다. 선양장에는  몇 척의 배가 바다로부터 끌어올려져 있다. 어딘가 아픈 것일까, 조금 넉넉하게 쉬고 싶은 것일까. 선양장의 끄트머리, 도로 건너편 노인정 뒤로 팽나무 한 그루가 어딘가 숨은 듯 보인다. 할아버지 당산목이다. 가느다란 가지에 금줄을 둘렀다. 그 옆에는 또 한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고 제단은 두 나무 앞에 놓여 있다. 긴 방파제는 내항을 넓게 감싸며 뻗어 있다. 마을의 비해 큰 규모라는 느낌이 든다. 정박된 배들이 많다. 출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상의 부부를 곁눈으로 오래 본다. 

 

                        수렴마을 할아버지 당산목. 수렴1리 노인정 뒤쪽에 숨은 듯 자리한다. 

수렴항의 남쪽에는 관성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관성(觀星)은 수렴리의 자연마을로 옛날 별을 보고 시간을 측정하는 첨성대 같은 것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관성마을 남쪽으로는 지경마을이 이어진다. 경상북도의 경계인 마을이다. 수렴항은 수렴1리 수렴마을에 위치한다. 수렴마을의 북쪽은 양남면 하서리다. 항구에서 북쪽으로 걷는다. 도로가에는 작은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예전에는 40여 가구가 횟집을 운영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20여 가구로 줄었다. 수렴마을은 울산 등 인근에서 어업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고 한다. 갈치, 광어, 낙지, 문어 등 어종이 매우 풍부했고 그 수확량도 엄청났다. 지독한 보릿고개 시절에는 울산의 온산 사람들이 이곳 수렴에 와서 살았다 한다. 생선을 쌀로 바꿔 연명할 정도였으니 고기 잡아 배 채우던 시절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사람들이 항구에 멸치를 저장하곤 했고 적산가옥도 적지 않았다 한다.  

 

                      수렴봉표. 효명세자 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숯을 만드는 산이라는 뜻이다. 

횟집거리의 뒤쪽은 낮은 언덕이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 초입에 명문이 새겨진 바위가 흙에 살짝 묻힌 채 서 있다. 봉표(封標)다. 봉표는 왕릉의 후보지나 벌채를 금지한 산에 세우는 표식이다. 바위의 명문은 몇몇 글자가 확인되지 않지만 연경묘(延慶墓), 향탄(香炭), 수렴포봉표(水念浦封標) 등은 확연하다. 연경묘는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요절한 뒤 묻힌 묘의 이름이다. 향탄은 제사에 쓰이는 향과 숯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즉 수렴봉표는 효명세자 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필요한 숯을 만드는 산이니 벌채를 금한다는 표식이다. 1831년 10월에 봉표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효명세자의 흔적을 보여주는 봉표는 대구 경북에서 6곳이 확인되고 있는데 수렴 봉표는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수렴이라는 글자에 시선이 간다. 수렴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수렴항 달빛광장. 수렴항은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19년 어촌뉴딜300’ 사업을 거치며 많이 변화되었다.  
                                    할매바우.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들어주신다고 한다.

바다에 면한 길은 ‘수렴항 달빛광장’이다. 가로 벽은 꽤 높아 ‘바다와 함께’라는 마음은 적지만 차가운 바닷바람은 정수리만 스친다. 그러다 벽은 툭 트여 몽글몽글한 해안을 그림처럼 드러낸다. 그 그림 같은 바다를 바라보는 자리에 ‘할매바우’가 모셔져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금줄이 걸려 있다. 앞에는 화강석 제단이 낮게 놓여 있고 누군가 막걸리를 올려 두었다. 할매바우는 마을을 지켜주고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들어주신다고 한다. 하서리 해안이 멀찍이 보이는 바닷가에는 ‘무장공비 격멸 전적비’가 서있다. 1983년 8월 5일 새벽에 수렴리 바다로 침투하던 무장공비 5명을 섬멸했다는 내용이다. 수렴 바다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수렴항은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19년 어촌뉴딜300’ 사업에 선정돼 개발되었다. 주요사업 내용으로는 다목적광장 조성, 월파방지시설 설치, 수렴1리 마을회관 리모델링, 수렴마을 가로경관 및 보행안전시설 설치, 관성해변 솔밭쉼터 조성, 황새바위 조망 공간 조성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렴 바다에는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 것 같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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