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성차의 비밀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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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성차의 비밀을 밝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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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에 관한 생각: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 프란스 드 발 지음 | 이충호 옮김 | 세종서적 | 568쪽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장류학자인 저자 프란스 드 발은 수십 년간 사람과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학은 기존의 젠더 불평등에 정당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젠더와 생물학적 성이 관련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은 인간 사회에서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자동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해서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녀 간의 선천적인 차이점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이 문화가 아닌 생물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장류 연구에서 찾는다. 성차에 대해서는 다양한 접근법이 존재해왔지만, 이 책은 기존의 연구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영장류를 통해 성차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와 비교한다. 이를 통해 널리 받아들여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믿음들과 권위와 지도력, 협력, 경쟁,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 성 행동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동물 연구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는 항상 인간의 고귀함을 내세우는 상대측 진영으로부터 인간 문화의 영향을 간과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남녀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가부장제는 우리의 동물 조상이 남긴 유산일까? 남성의 공격성은 극복할 수 없는 본능의 문제일까? 침팬지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의 조상은 살육자들이었을까? 프란스 드 발은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또 다시 명쾌하게 제시한다. 요컨대,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에 관한 책이다.

기존의 생물학은 페미니즘에 의해 ‘수구보수 학문’의 대표 격이라고 공격받았다. 어설픈 생물학에 기반해서 “수컷의 바람기는 선택적 적응 과정을 거친 진화의 산물이니 여성들은 이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라는 식의 잘못된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때마침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가며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곧바로 사회생물학, 더 넓게는 진화론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동안 생물학이 해온 실수들로 인해 형성된 우리의 잘못된 통념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동물과 사람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성차는 사람의 젠더에 관한 거의 모든 논쟁에서 그 중심에 있는 모든 질문들을 제기한다”며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간주한다. 그는 남녀 관계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가정들, 폭력, 권위, 경쟁, 성차, 믿음, 협력, 유대 등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흥미로운 질문들 중 하나는 '성차가 유전법칙과 문화(생물학 대 환경)라는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의해 결정 되는가'이다. 이 주제는 상당히 많은 함의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고, 어느 한쪽의 상대적 영향력을 강조할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파장을 일으킨다.

이 책에 따르면, 어느 방향으로든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거의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다. 일부 우익 작가들이 바라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은 생물학의 법칙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주로 생물학으로 남성에게 유리한 권력 역학을 합리화시켜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이 완전히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며, 각 성의 선천적 선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질문은 ‘동물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동물은 협력보다는 생존경쟁을 우선시하는 존재일까’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입각해 동물들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라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통상적인 오해와는 달리, 자연 세계에서 알파의 지위는 단순히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공격적이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알파라는 지위는 탁월한 조정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에 가깝다. 

그렇다면 동물을 통해 관찰한 사실을 어디까지 인간에 적용할 수 있을까? 매우 합의되기 어려운 문제이고, 불분명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동물 관찰이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제시하며 명쾌하게 그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란 바로 동물이 문화라는 관성에서 벗어난 인간 본능을 말해주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이 선천적이고 생물학의 법칙에 의해 결정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행동의 보편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인간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문화인류학). 두 번째는 아직 배양되지 않은 유아와 어린이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다(발달 심리학). 세 번째는 인간의 행동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진화적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와 비교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요소들이 문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분명히 마지막 접근법을 선호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이 세 가지 방법 모두를 어느 정도 활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생물학에 의해 결정되는 여성과 남성간의 성별 사이에 사실 몇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이 책은 우리가 젠더와 관련하여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을 바로잡아준다.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생존 투쟁을 지나치게 과장했으며, 많은 남성 과학자들은 잘못된 접근법으로 가부장제를 지나치게 과장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비롯한 현대의 이론가들은 성차에 끼치는 문화의 영향을 확대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저자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해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분법이라는 틀의 한계 또한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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