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세계를 장악했나
상태바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세계를 장악했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8 0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제학자의 시대: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 김진원 옮김 | 부키 | 752쪽

 

혁명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닌 한 무리의 학자들이 불과 4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경제적 처지와 노동 조건, 사회복지와 생활상, 심지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심대하게 바꾸어 놓았다.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앞 세대 혹은 우리 세대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일대 격변이었다. 이 책은 어떤 혁명보다 파장이 광범했고 어느 종교보다 사람들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 격동의 시대를 정밀하게 조명한 동적인 경제 역사서이다.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Economists’ Hour)’라고 규정한다. 1969년은 닉슨 대통령이 보수파 경제학의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권고에 따라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지원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꾸린 해이다.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듯 시카고 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한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점차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여 세계를 뒤흔든다. 이로부터 40년 후인 2008년 10월 13일은 세계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미국 9개 대형 은행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서던 날이다.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설파하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백기투항일이었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정치권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그들이 약속했던 말은 어디까지 실현되었거나 실패했을까. 한마디로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이 책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동부터 패배까지의 40년을 정밀 지도처럼 입체 추적했다.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산업계, 법조계, 정치권과 공공 영역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경제학자는 각종 기관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나 만들어 내던 골방의 학자들에 불과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이 같은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1965년 말 즈음부터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더니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것이다. 온도 조절 장치로 온도를 맞추듯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케인스주의의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니 통화 정책 외의 모든 것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주장이 점차 정부 운영에 자신감을 상실한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내내 케인스주의에 밀려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프리드먼은 대학에 둥지를 틀고 통화와 금융을 주제로 한 연수회를 25년간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신념을 계승할 통화주의자 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태동이다.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케인스의 이론이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넓게 나눈 번영”을 가져왔다며 칭찬했던 『타임』 지는 1969년 정반대의 이론을 개진하는 밀턴 프리드먼을 표지 인물로 올렸다. 이렇게 막이 오른 경제학자의 전성시대는 40년간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프리드먼을 선두로 시장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는 정치인들을 설득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했다. 그들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렸다. 기업과 시장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전 세계의 경제를 자신들의 신념대로 통합하고 변형시켰다. 또한 이들 경제학자는 제3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시카고 대학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쳤다. 시카고보이즈라고 불린 이 유학생들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에서 시카고학파의 경제 정책을 전파했다. 후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전 세계의 거대한 변화는 이렇게 퍼져 나갔다.

경제학자들의 활약상과 모험, 부침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이론서보다는 유장한 흐름의 역사서에 더 가깝다. 1929년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백척간두에 선 자본주의를 구한 케인스주의 시대가 저물고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의 보수적 경제학이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 그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세계를 장악했지만 숱한 문제를 남기고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대결과 반전의 역사가 현장감 넘치는 일화와 생생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책에는 보수주의 경제학계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예컨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해 조지 스티글러, 조지 슐츠, 아론 디렉터, 로버트 루카스 같은 보수파의 거두들부터 칵테일 냅킨에 아이디어를 그려 세금 감면을 보수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만든 아서 라퍼, 닉슨 대통령에게 군 징집 종식을 설득한 시각장애인 경제학자 월터 오이,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달러 가치로 평가한 토마스 셸링 등 숱한 자유 시장 경제학 전도사들이 그들이다.

이들 학자의 역할을 씨줄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날줄로 삼아 저자 애펠바움이 직조해 낸 40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상찬과는 거리가 멀다. 애펠바움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쌓여 한 시대가 만들어졌음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경제학자의 시대’가 이룬 성과와 함께 역사적 한계를 면밀하게 살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