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시대에서 회복력 시대로,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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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시대에서 회복력 시대로,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8 0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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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복력 시대: 재야생화되는 지구에서 생존을 다시 상상하다 | 제러미 리프킨 지음 |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432쪽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고 기후는 따뜻해지고 있으며 지구는 야생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우리 인간 종은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혼란에 대책이 없는 상태다. 산업 발전을 이끈 효율성의 원칙이 우리를 지구의 지배적인 종으로 두었지만 결국 자연계의 파멸을 이끌었다. 어떻게 대멸종을 피하고 삶을 지속할 것인가? 미래학자이자 경제·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이 책에서 죽어 가는 진보의 시대를 해체하고 부상하는 새로운 문명의 서사를 제시한다. 

진보의 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효율성은 시간을 조직하는 최적 표준이 되었고, 그에 따라 인간 종은 사회의 풍요를 향상한다는 목표하에 점점 더 빠른 속도와 점점 줄어드는 시간 간격으로 천연자원의 수탈과 상품화, 소비를 최적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연이 고갈되는 과정에서 공간은 수동적 천연자원과 동의어가 되었고 정치와 경제의 주요 역할은 자연을 재산으로 관리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지향성은 인류를 지구상의 지배적인 종으로 올려놓은 동시에 자연 세계를 파멸로 이끌었다.

리프킨은 진보의 시대가 효율성에 발맞춰 행진했다면, 새롭게 부상하는 회복력 시대는 적응성에 발을 맞춘다고 말한다.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의 이행은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판매자-구매자 시장에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로, 선형 프로세스에서 인공두뇌 프로세스로, 수직 통합형 규모의 경제에서 수평 통합형 규모의 경제로, 중앙 집중형 가치사슬에서 분산형 가치사슬로, 거대 복합기업에서 유동적인 공유로 블록체인을 형성하고 민첩한 첨단기술 중소기업으로, 지식재산권에서 오픈소스 지식 공유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삶의 질 지수(QLI)로, 부정적인 외부 효과에서 순환성으로, 지정학에서 생명권 정치학으로의 전환을 포함한 경제 및 사회의 전면적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젊은 세대는 이미 성장에서 번영으로, 금융자본에서 생태자본으로, 소비자주권주의에서 환경책임주의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대의 민주주의에서 시민 의회와 분산형 동료 시민 정치로 전환하고 있다. 동일선상에서 공감과 생명애가 새로운 규범이 되면서 냉정하고 무심한 이성은 약화하고 있다. 인간 종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 오늘날, 리프킨은 근본적으로 다른 미래에 대한 창을 열어 주며 지구에서 다시 생명이 번성할 두 번째 기회를 위한 대담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인간이 화석연료에 의존하며 일으킨 기후변화가 우리를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이끌고 있다는 경고 속에 새삼스럽게 깨닫는 진실은, 우리 자신과 동료 생물들의 삶이 과정과 패턴과 흐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지구 권역의 확장체다. 대륙권의 미네랄과 영양소, 수권의 물, 대기권의 산소가 원자와 분자의 형태로 우리를 통해 끊임없이 순환하며 우리의 DNA가 규정한 대로 세포와 조직, 기관 등에 거주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동안 다양한 간격으로 교체를 지속할 뿐이다. 

우리 몸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원생생물, 고세균, 균류 등 다양한 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체의 세포 절반 이상과 우리를 구성하는 DNA 대부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나머지 생물에 속한다. 지구의 종과 생태계가 우리 몸의 가장자리에만 있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몸 안팎으로 흐른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행성 그 자체다. 결국 지구 생명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지구온난화 배출의 형태로 엔트로피 청구서가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 종은 동료 생물들과 다르게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연계를 약탈하고 망치는 종이면서 치유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경 회로에 공감 충동이라는 특별한 자질이 연결된 축복받은 종이다. 공감 충동은 유연하고 무한한 확장성을 자랑한다. 이 희귀하고 소중한 속성은 진화하고 후퇴하고 다시 부상하기를 거듭했다. 최근 젊은 세대가 공감 충동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인간 종을 넘어 우리 진화 가족의 일부인 동료 생명체를 모두 포함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이 생명애 의식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새로운 길을 향한 희망적인 신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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