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를 통해 본 지도자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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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를 통해 본 지도자의 책무
  • 김용휘 대구대학교·한국철학
  • 승인 2022.11.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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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비자』를 왕조 시대의 철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한비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핵심이 무엇인지, 특히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자리인지, 또 그 역할은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는 책이다. 사실 요즘 정치를 보고 있자면,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이전의 군주제에 비해 과연 획기적으로 발전한 체제인지 의문이다. 군주제를 옹호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정말 국민이 주인인 나라인지 잘 모르겠다. 선거 때만 잠시 주인의 권한을 행사할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권한을 대신 행사한다. 그마저도 제대로 국민의 뜻이 거의 대의(代議) 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공화’란 국민의 대표를 국민이 직접 뽑는다는 의미이지만, 국민이 직접 뽑는다고 해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투표율이 70% 안팎인 상황에서 50프로만 넘으면 당선되는 구조라면 사실상은 전체 국민의 35%만 획득해도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구조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분단체제의 현실에다가 거대양당의 정당 구조에서는 이념적인 이슈가 실제 정책적 능력이나 자질보다 우선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나라는 국회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삼권분립이 있긴 하지만 국회와 감사원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은 조선시대 왕의 권한보다도 더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 (조선의 왕은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서 매일 최고의 학자와 공부를 하는 경연經筵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신하와 나눈 모든 대화는 사관에 의해 기록되었다. 오늘날 CCTV보다 더 엄격한 장치였던 셈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왕들은 밤늦게까지 그날 올라온 상소문을 읽고 그에 대한 답장을 적는 일을 해야 했다.)  
 
예로부터 국가의 존재 이유는, 그 첫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고, 둘째가 민생을 보살피는 데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 극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는 부(富)를 덜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이를 ‘부의 재분배’ 역할이라고 한다. 따라서 왕조시대에도 군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력을 사용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한편, 권문세가와 지방호족들이 독점한 토지를 회수하고, 적절한 세금 정책을 통해서 민생을 살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결국 기득권에 맞서 백성의 편에 서야 하는 것이기에 과감한 ‘개혁정치’가 요구되었다. 이 과정에서 격렬한 권력투쟁, 정쟁(政爭)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쟁의 쟁점은 기득권이 자기들을 비호해 줄 인물을 옹립하는 시도를 두고 벌어지는데, 대개의 경우는 기득권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간혹 개혁군주가 나타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기득권의 저항으로 쫓겨나거나 독살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비자의 주된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흔히 한비자를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던 법을 관료와 황제에까지 적용하게끔 함으로써 엄정한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한비자』의 핵심은 신하(간신)를 제압하는 술(術), 간교한 기득권에 맞서는 방법을 강조한 데 있다. 즉 자신들의 권력과 부만을 생각하는 간교한 신하들의 저항을 어떻게 잘 다스림으로써 정치가 실제 백성들의 삶을 보살필 수 있는가에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비자는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을 주의하면서, 두 가지의 칼자루, 즉 덕(德)과 형(刑)으로써 신하들을 다스려야 하며, 특히 여덟 가지 간사한 행동을 잘 살펴서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중에서 첫 번째가 동상(同床)인데 동상은 신하가 정실부인과 총애하는 후궁들을 이용해 군주를 현혹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비자는 특히 군주가 잠시라도 방심하면 나라가 곧 망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나라가 망할 징조, 즉 「망징(亡徵)」이란 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군주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의 의견만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삼는다면 망할 것이다. 군주의 성격이 매우 강해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며, 사직은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자신만을 위한다면 망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지도자가 어느 한 사람의 의견만을 창구로 삼다가 망한 일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군주의 성격이 매우 강해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는” 지도자의 끝이 어떻게 될지를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는 개혁 정치는 혁명보다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본인의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다. 지도자가 나라를 개혁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은 비록 진정성이 있더라도 참으로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반대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잠깐의 사이에도 너무도 쉽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바른 정치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하다.

『장자』의 주석서 중 하나인 『장자집해莊子集解』의 「인간세」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폭군을 모시고 힘겨운 세상을 살며, 사람들과 사귈 때 명예를 다투지 않고 덕을 감추는 것이 곧 올바른 처세의 길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묘하게 위안을 받았다. “그래, 역사적으로 성군보다는 폭군이 훨씬 많았지, 태평성세보다는 힘겨운 세상이 절대적으로 많았지!” 우리의 삶의 풍경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을 감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부자들의 곳간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도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를 우리는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대학의 지성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할 때이다! 


김용휘 대구대학교·한국철학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고려대 HK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년간 인도 오로빌에서 공동체를 경험하고 돌아와 지금은 방정환의 정신을 계승하는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 『최제우의 철학』, 『손병희의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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