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문제…보다 합리적인 새 연구윤리 가이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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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문제…보다 합리적인 새 연구윤리 가이드 필요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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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 연구 부정행위이자 사회문제화
- 연구윤리 위반자 강력 처벌하는 연구문화 만들어야
▲ 교육부는 작년 10월 제14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미성년 공저자 논문 및 부실학회 실태조사 관련 서울대 등 14개 대학 특별감사 및 강원대 사안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출처=교육부
▲ 교육부는 작년 10월 제14차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서 미성년 공저자 논문 및 부실학회 실태조사 관련 서울대 등 14개 대학 특별감사 및 강원대 사안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출처=교육부

지난달 20일 한국연구재단(NRF) 정책혁신팀은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표시 예방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NRF 이슈리포트>로 발표했다.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연구윤리 분야의 뜨거운 이슈임과 동시에 사회문제화 되어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한 연구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미성년자 등 이해관계자의 연구 참여와 저자 표시’를 위한 새로운 합리적 가이드가 필요하며, 연구 윤리 위반 연구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연구문화 조성이 긴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미성년 자녀 ‘진학’ 위해 공동저자로

정부 차원에서 미성년자의 논문 저자 실태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은 2018년 1월 교육부가 처음이다. 그 후 2018년 교육부의 전수조사 실시 및 2019년도 교육부의 16개 대학 특별감사 결과 추가 확인된 미성년 공저자 논문을 포함하여 총 794건의 미성년이 공저자로 기재되어 있는 논문을 확인했다.

교육부 발표자료에 따르면 연구부정으로 판정 난 논문의 미성년 공동저자 발생 이유는 대부분 ‘진학’을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0월 17일 발표된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15개 대학 가운데 현재까지 연구부정 판정을 받은 논문이 있는 대학은 7개교이며, 관련된 11명의 교원에 대한 징계 및 관련 미성년자 명의 대입활용 여부 조사 현황은 다음과 같다.

과학연구에 있어서 “저자됨(authorship)은 창조성과 독창성의 증거이며, 특히 젊은 연구원의 경우에는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미래의 연구경력을 위한 중요한 학문적 화폐(academic currency)”이다(L. S. Kwok).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 역량 증명서이며, 이런 증명서가 누적되어 연구자의 현재와 미래의 위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 역시 부당저자 중 ‘선물저자(gift author)’ 또는 ‘손님저자(guest author)’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연구 부정행위’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입시 비리 의혹으로 이어진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논문 공동저자’ 논란에 이어 지난 1월에도 정부 출연연구소 지원으로 국제 저명 학술지에 실린 공학 분야 논문에 교수 지인의 딸인 서울의 한 중학생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소 25곳에서 수행한 연구 논문에서 미성년자가 공동 저자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100여 편에 대해 올해 상반기 안으로 연구 윤리 위반 여부와 대학 입시 악용 가능성을 검증한 후 엄정 조치할 예정임을 밝혔다.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가 사회문제화되면서, 2015년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SciON이 BRIC 회원 중 ‘과학기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최근 3년간 불합리한 저자 순서 바꾸기, 참여하지 않은 저자 끼워 넣기 등 저자권(authorship) 관련 연구부정행위를 직접 경험하였거나 주변 연구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설문에 총 응답자 1,164명 중 969명(66%)이 “예”라고 답변했고, 395명(34%)이 “아니오”라고 답변했다. “예”라고 답변한 응답자 중 84%(641명)는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자가 저자로 등록(끼워넣기)”되는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 ‘논문 공동저자’ 관행…수저계급론의 고착화

이처럼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가 사회문제화되는 것은 이것이 ‘교육’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 즉,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방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끊어진 사회적 엘리베이터, 사회적 이동성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 것인가>(A Broken Social Elevator? How to Promote Social Mobility)”라는 OECD 보고서의 한국어판에 따르면 최상위 소득계층의 고착화는 우리나라가 57%로서 OECD 평균인 67%보다 크게 낮아 사회적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의해야 할 사실은 ‘굳어진 바닥(sticky floor)’이 고착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이동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교육에 있어서도 부모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저계급론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임을 의미한다.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지도 작년 11월 '한국의 많은 학자들이 미성년자를 공동저자로 지명하다 적발됐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논문 공동저자' 관행을 집중 조명했다. 네이처지는 이 보도에서 “이런 관행은 아마도 부유하고 연줄이 있는 한국 엘리트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됐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 학문후속세대가 가장 큰 피해

사회적 문제로서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바로 석·박사 대학원생이다. 부모를 대학 등의 연구자로 두지 않은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석·박사 대학원생들은 ‘부당한 미성년 공동저자’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및 박사후과정 연구자(Post-Doc.)의 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2019년에 6개 전문연구센터와 공동으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이공계 대학원생 처우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지시(암묵적인 지시 포함)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1,330명 중 73%인 974명은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대학 현장에서 연구윤리에 대해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일한 질문에 대해 “연구 기여도가 적은 사람을 저자에 추가하는 행위 혹은 그 반대 행위”에 대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대학원생도 22%(286명)에 달하고 있다. 2015년 BRIC의 설문조사 결과(66%)에 비해 많이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학원생 5명 중 1명은 이와 같은 부당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에 정당한 기여를 하지 않은 미성년자를 공동저자로 기재하고 이를 대학 및 대학원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입시부정에 해당한다. 아울러 이러한 행위는 연구실에서 묵묵히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생, Post-doc. 등 주니어 연구자들의 연구 공적을 빼앗아 가는 행위이다.

◇ 연구관련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문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국연구재단에서 2018년에 한국연구재단 과제를 수행 중인 대학교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연구윤리의 부적절행위 유형별 심각성’ 항목에서 부당저자표시(51.1%)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고, 연구부정행위 제보 방해/제보자 위해도 심각하다는 의견이 18.2%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작년 10월 1일 한국연구재단은 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 협의회와 공동으로 부당저자표시예방가이드(연구논문의 부당한 저자 표시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를 만들어 전국 대학 등에 배포한 바가 있다.

이번 보고서는 이 가이드에서 제시한 내용만으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으로 떠오른 저자표시 관련 공정 이슈를 장기적·근원적 관점에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2000년 초반부터 영재교육 차원에서 중·고등학생의 교과서 밖 학술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R&E(Research & Education) 프로그램을 지원해 왔는데, 중·고등학생 등 미성년자가 대학교수와 논문의 공저가가 되었다고 해서 무작정 연구부정 여부를 조사하게 되면, 좋은 의미에서 시작한 R&E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방관하면 계속해서 기회의 공정과 관련된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우리 사회의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중·고등학생의 교과서 밖 학술활동을 장려와 부당저자표기 예방이라는 2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등 연구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새로운 가이드에는 미성년자 및 이해관계자(가족이나 지인)의 ‘연구 참여’, ‘연구노트 등 연구기록’, ‘논문 공저자 표기’ 등의 과정을 명확히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대학 교수 등이 이해관계자를 연구에 참여시킬 때 소속 기관에 사전에 신고를 하게 하고, 시설사용이나 논문저자표시 등 중요한 사안은 사전에 심의를 받도록 함으로써 연구와 관련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교대 이인재 교수의 지적처럼 ‘미성년 자녀의 공저자 문제’는 “공동 저자가 교수의 중·고등학생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연 중·고등학생이 해당 논문에서 저자로서의 중요하고도 실질적인 역할을 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결론으로 대학 등 연구기관이 보다 합리적인 새로운 연구윤리 가이드를 제시하고, 이에 따르지 않은 연구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연구문화의 조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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