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를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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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를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22 0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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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루스트그래픽: 마르셀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 기념 | 니콜라 라고뉴 지음 | 니콜라 보주앙 그림 | 정재곤 옮김 | 민음사 | 208쪽

 

프루스트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책으로, 리드미컬한 서체와 금색과 먹과 백이 조화로운 그래픽 이미지로 연출한 ‘프루스트 백과사전’이다. 100여 가지 인포그래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모든 것을 한눈에 읽고 ‘볼’ 수 있다. 

프루스트는 침대에 누운 채 철필로 글을 썼다. 그는 원고지의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가필을 하고 분량을 늘려 나갔는데, 라고뉴가 전시실에서 본 길고 긴 원고 뭉치는 프루스트가 ‘가필법’이라고 표현한, 새로 쓰고 고쳐 쓴 기나긴 가필 종이 뭉치였다. 라고뉴는 생각한다.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이 넘쳐 나고, 수백만의 데이터를 구할 수 있고, 이미지에 누구나 매료되어 있는 오늘날, 수많은 데이터를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비평의 활력을 포괄적으로 활용한다면 “프루스트에 관해 축적된 모든 지식을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이 책에 담긴 각각의 주제는 이미지로 표현된 인용처럼, 또는 정보들이 압축된 알약처럼 고안되었다. 기발한 발상과 유머로 가득한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문학관에 반하는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소설 속 ‘가상 현실’(프루스트는 이를 ‘창조적 현실’이라 부를 터이다.)뿐 아니라, 자연인 마르셀 프루스트를 주요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연도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보유한 재산 정도며 보유 주식 종류, 그가 살았던 거처들의 주소, 그가 접했던 (사교계) 인사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 그가 살았던 당시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 그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 그가 복용했던 마약 종류, 특정 시기에 그가 길렀던 수염의 종류 등등 이제껏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엉뚱하지만 대단히 시사적일 법한 정보들을 잔뜩 담고 있다. 예컨대 ‘마르셀 프루스트의 콧수염’은 다양하게 변했다.

“셀레스트 알바레가 『나의 프루스트 씨』에서 증언하길, 그가 전후 찰리 채플린풍 콧수염을 기르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프루스트는 의심쩍어했다. “셀레스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들이 나더러 찰리 채플린풍 콧수염을 깎아 버리라고 하던데요?”(46쪽)

프루스트가 복용한 마약은?

“천식, 불면증, 위장병, 소화 장애…… 프루스트는 평생토록 자신의 건강 문제로 전전긍긍했다. 그의 아버지도, 진료했던 그 어떤 의사도 당시만 하더라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질병인 천식을 고쳐 주지는 못했다. 수면, 망각, 안정 내지는 활력 사이를 차례로 오갔던 작가는 신경 안정제와 흥분제를 번갈아 가며 복용하는 자가 약 처방이란 지옥에 빠져 있었다. 그는 사실상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심각한 마약 중독자 중 하나였다.”(51쪽)

한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다. ‘우로보로스’가 그것이다.

“여러 고대 문명에 걸쳐 시간과 영원의 상징이었던 ‘우로보로스’. 문학적 우로보로스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완벽한 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단어인 ‘시간(temps)’은 정확히 1,023,170단어 앞에 등장하는 소설의 첫 단어인 ‘오랫동안(longtemps)’에 호응한다. 자신이 환자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프루스트는 이미 죽기 한참 전에 자기 소설에 끝이란 단어를 적어 넣었다. 물론 그 안에서부터 분량을 엄청나게 늘려갔지만 말이다.”(68쪽)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장 짧은 문장과 가장 긴 문장, ‘잃시찾’을 거리로 환산하면 몇 미터? 소설 속 쉼표와 마침표, 콜론은 몇 번 들어갔을까? 등장인물 속에는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 각각 몇 퍼센트로 자리할까? 소설 속 동물들과 식물 등 등등 알면 신기하고 몰라도 무방한 각종 정보뿐 아니라,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손꼽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각종 수치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선별한 『프루스트그래픽』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주창한 문학관과는 별개로, 그야말로 흥미로운 어느 특정 자연인에 관한 진기한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문학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이 영영 사라지기는 힘들다는 점을 웅변해 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문학 작품과 작가, 문학 작품과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천착해 봐야 할 본질적인 문학적 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는 과연 무엇을 읽는 걸까?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 현실? 작품 안에 투영된 작가의 삶? 아니면 문학 작품이란 우회로를 택한 독자들의 내면 세계? 이 또한 앞으로 두고두고 밝혀 내야 할 문학적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소설을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작가 자신이라기보다,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해 읽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옮긴이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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