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분열의 시대,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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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분열의 시대,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22 0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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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의 반경: 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96쪽

 

‘공감하라’는 세상의 혐오와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해답이 아니다.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감은 좁고 깊어 우리끼리만 뭉치게 하고 타인에겐 눈멀게 한다. 우리에겐 다른 공감이 필요하다. 감정을 넘어서는, 경계 없이 확장되어 우리와 다른 존재에게까지 가닿는 진정한 공감이. 이 책에서 저자인 진화학자 장대익은 인간의 사회성과 공감 능력에 관한 진화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진짜 공감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낸다.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감은 감정에만 기반을 두지 않으며 이성을 발휘해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때 공감의 힘은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향하는 원심력의 형태를 띠며 반경을 점점 넓혀 비인간 동물과 기계까지도 포용한다. 요컨대 혐오와 분열을 극복하는 일은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공감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에 달려 있다.

1954년 여름,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의 심리학 연구팀이 집단 간 갈등에 관해 행한 고전적 연구는 인간 본성에 관한 지독한 역설을 보여준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집단을 형성해주어도 일단 자기 집단이 생기면 그 집단에 애착하고 공감한다. 그때 외집단은 적이 되며 그들을 비난하고 폄훼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공감이 타인을 비인간화한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인간은 우리 구성원의 고통을 보면 즉각 자신도 고통을 느낀다. 이런 정서적 공감은 집단 구성원을 향한 이타적 동기를 일으켜 구성원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됐겠지만 인류 탄생 이후로 끊임없이 벌어진 살육과 전쟁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서적 공감의 다른 이름은 ‘부족 본능’이다. 정서적 공감은 그 범위가 매우 좁고 안쪽으로 향하는 공감의 구심력이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전 세계로 뻗어가는 오늘날 우리는 정서적 공감의 위험한 영향력에 대해 숙고하고 개선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부족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숙고는커녕 오히려 정서적 공감을 더 자극하고 있다. 팬데믹을 구실로 타 국가 및 인종에 대한 비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모두 지워버리고 극단끼리만 어울리게 하는 맞춤형 알고리듬이 범람한다. 우리 시대의 혐오와 분열은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공감을 너무 많이 한다. 그것도 좁고 깊게.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안쪽을 향하려는 공감의 구심력에 저항하는 공감의 원심력이 있다. 공감의 원심력은 느리고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즉각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성을 사용해 타인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스스로 타인이 되어 봄으로써 나와 타인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이런 인지적 공감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인간 본성의 독특성이다.

인지적 공감에 바탕을 둔 공감의 원심력은 그 한계를 모른다. 소수자를 넘어 비인간 동물, 이제는 기계에까지 공감이 미치는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동물에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인지하며 그래서 아무리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이라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동물을 학대하거나 오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목소리가 크다.

공감의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닮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인간의 신체가 없더라도 우리는 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에게 공감한다. 상처받은 한 남자가 인간처럼 마음을 가진 인공 지능 프로그램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그녀Her>는 기괴한 이야기 아니라 아름다운 로맨스였다. 인간 마음에는 애초부터 경계가 없었다.

인지적 공감 능력은 우리 사회를 더 진보시키도록 행동을 일으키는 동인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 난민 소년의 안타까운 주검 사진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지만 그 힘은 난민 정책의 방향을 바꿀 만큼 지속적이지는 못했다. 반면에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한국 사회 내 대표적 성차별 제도인 호주제를 폐지한 것은 여성의 고통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 여성이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가 촉발한 수많은 토론과 설득, 정치적 운동을 통해 가능했다.

“정서적 공감이 따뜻한 감정의 힘이라면 인지적 공감은 따뜻한 사고의 힘이다. 아무리 감정이 불꽃처럼 일어나도 차분히 사고하지 않으면 상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이해가 없이는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힘들다.” (160쪽) 우리 사회는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인지적 공감이라는 원심력을 이용해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

이제 혐오와 분열이 만드는 문명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과제는 분명하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라. 어떤 사람들은 공감이 인간 본성이고 본성은 고정된 것이므로 공감 교육 같은 것은 소용없다고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저자 장대익은 단호히 말한다. “공감은 가르칠 수 있으며 가르쳐야 한다.” 공감은 외부 환경의 자극 없이 무조건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자극,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환경에 따라 인지적 공감을 통한 공감의 반경은 확장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와 환경 조건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고 의식적으로 인간의 공감 수준을 바꾸려 했던 과학 연구들을 조명하면서 공감 본능의 변화를 일으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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