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품 ‘인종’…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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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품 ‘인종’…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을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22 0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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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이라는 신화: 인류를 현혹한 최악의 거짓말 | 로버트 월드 서스먼 지음 | 김승진 옮김 | 지와사랑 | 432쪽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인종혐오 범죄가 더욱 빈번해졌다. 인류 역사에서 자주 ‘피지배 계층’이 되고 말았던 몇 인종들을 향한 날선 비난과 무분별한 배제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 그런데 우리가 의심해 보지 못했던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인종’이다. 백인, 흑인, 황인 등의 인종 구분은 과연 과학적인가? 그렇다면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여기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1950년에 유네스코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은 마치 과학적 분류인 양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인종’과 ‘인종주의’의 역사를 낱낱이 해부하고 그 안에 숨겨진 가짜 과학의 실체를 끄집어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인종’은 누가, 왜,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왜 이 개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 사회를 혐오와 차별로 물들이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생물학적 토대에 따라 인종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함께 미국과 서유럽에는 아직도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가 그토록 많은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인종이 실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수반되는 ‘인종주의’의 편견과 혐오가 너무나 오랫동안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우리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머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그냥 사실일 게 틀림없다고 가정해 버리는 건 아닐까?

인종주의는 우리 일상에 속속들이 스며 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를 가는지, 어떤 직장이나 직업에 종사하는지, 누구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사람들이 나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의료 시스템과 사법 시스템이 어떻게 나를 대하는지 등 모두가 내 인종이 무엇인지에 영향을 받는다. 지난 500년 동안 우리는 인종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을 학습해 왔다. 이를테면, 우리는 지능, 성적인 행동, 출산율, 영유아 돌봄, 노동 윤리와 노동 역량, 개인적인 절제, 수명, 법 준수 성향, 공격성, 이타심, 경제 및 기업 행위, 가족의 응집, 심지어는 뇌의 크기까지 우리의 구체적인 특질 상당수가 인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누누이 들어왔다. 또한 우리는 인종에 위계가 있어서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배워왔다. 인종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삶도 이러한 방식으로 질서 지워진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인종주의적인 사회에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은, 그러한 인종주의적 구조가 실재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미 꽤 한참 전에 인종이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 실체가 아님을 입증했다. 복잡성이 높은 인간 행동 중 ‘인종적’ 특성이라고 흔히 여겨지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밝혀진 행동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지난 500년 동안 우리는 지식인, 정치인, 행정가, 기업인의 비공식적이고 상호 강화적인 연합에 의해,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수많은 문헌을 통해, 생물학적 인종이 실재이며 생물학적으로 어떤 인종은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개념을 보고 듣고 학습해 왔다. 이러한 가르침은 스페인 종교재판 시절의 유대인과 비非그리스도교인, 식민지 시대의 비非유럽인과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노예제 시기의 미국 흑인, 나치 독일 시기의 유대인과 일부 유럽인,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 출신 사람들(과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행된 막대한 불의의 요인이었다.

이 책은 인종 및 인종주의의 ‘신화’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이 역사를 통해, 왜 우리 사회의 많은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가 우리가 인종주의적인 오류를 믿도록 오도하고 미혹해 왔는지, 또한 어떻게 해서 그 오류가 중세 말부터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올 수 있었는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인종 및 인종주의의 역사 상당 부분이 스페인 종교재판, 식민주의, 노예제, 나치즘, 인종 분리와 인종차별, 반反이민 정책 등을 촉발하거나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노골적인 인종주의 정책은 차차 완화되어 온 듯 보이지만, 인종에 대한 신화는 미국과 서유럽 전역에 아직도 건재하다. 저자는 인종주의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또한 프란츠 보아스의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이 인종주의의 정당성에 어떻게 도전하고 어떻게 그것의 부당성을 밝힐 수 있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인종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만연해 있는지를 더 명료히 이해할 수 있게 돕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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