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학의 눈으로 역사의 한 조각을 찾다
상태바
보존과학의 눈으로 역사의 한 조각을 찾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2 0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과학으로 보는 문화유산: 유물의 표정을 밝히는 보존과학의 세계 | 신은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325쪽

 

역사책을 읽다 보면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그리고 그 뒤로는 나라 이름이 나온다. 도구의 재료에서 나라 이름으로 시대 구분이 바뀐다. 그렇다면 현시대를 재료의 이름으로 구분해본다면 우리는 무슨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후기 철기시대? 플라스틱 시대? 인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우리가 플라스틱으로 물건을 만들고 반도체 기술이 들어간 스마트폰을 사용하듯이, 고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와 나무, 때로는 기술의 집약체인 금속으로 도구를 만들어온 것이다. 그 수많은 고민과 실패와 성공이 모여 문화유산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보는 수많은 문화유산, 우리는 그 기술과 규모에 놀라 가치를 찾아보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보지만 막상 그 유물이 어떤 상태로 발견되어 어떤 처리를 거쳐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한 채 전시되어있는지는 잘 모른다. 이 책은 과학적 분석과 조사를 통해 바라본 문화유산을 역사와 함께 이야기하며 역사는 재미있게, 문화유산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과연 우리는 미래에 어떤 문화유산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책은 발견된 유물이 박물관의 전시실 또는 제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거치는 보존처리실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유물에 숨겨진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오랜 시간 박물관 보존 처리 업무를 담당하며 문화재에 담긴 삶의 흔적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역사’의 한 조각을 찾아내는 일을 해왔다. 또 과학은 역사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이며 이를 통해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고 한다. 

‘보존과학’이란 발굴된 유물의 보존과 복원을 위해 과학지식과 기술을 응용하여 유물의 제작 기술과 그 역사 등을 알아내는 작업이며 그 원형을 보존함과 동시에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이 문화재도 X-선, CT 촬영을 통해 구조를 알아내고 현미경을 통해 성분을 분석한다. 지하 투하 레이더를 이용하여 발굴 조사를 하며 3D 스캐닝 기술을 도입해 원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기술 발전으로 플라스틱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고 반도체를 개발하여 스마트폰을 만들었듯이, 선조들도 흙, 돌, 구리, 주석, 철을 이용하여 토기, 주먹도끼, 상감청자, 철제 마구, 비격진천뢰를 만들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충실하게 이용하면서 생활에 도구를 만들어 썼던 그들의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의 기술 발전 또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총 6부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의 1부 금속 - 권력의 상징이면서 영향력을 보여주는 금제품과 청동기,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철기 기술을 이야기한다. 신라의 눈부신 금세공 기술이 담긴 〈경주 보문동합장분 출토 금귀걸이〉, 어린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성덕대왕신종〉의 과학적 분석으로 금속을 다루는 정교한 기술, 눈부신 철기 기술은 있었지만 연맹국가에 머물렀던 가야의 철기 제작과 유통, 조선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의 구조를 분석한 이야기를 담았다.

2부 토기, 도자기, 유리 - 쓸모를 위해 탄생한 토기가 천하 비색 〈상감 청자〉와 숨 쉬는 그릇 ‘옹기’에 이르기까지, 흙을 다루고 가마에 굽는 과정에서 기술을 발전시키고 아름다움까지 놓치지 않은 그 비밀을 파헤쳐본다. 산산이 부서진 채 발견된 경주 황남대총 〈봉수형 유리병〉은 그 원형을 찾아 고민하며 보존 처리에 재보존 처리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3부 목재 - 살아서는 천년을 살 수 있다지만 베어져 도구로 쓰인 후에도 어떻게 지금껏 남아있을 수 있는지 목재의 비밀을 알아본다. 종이가 없던 때에 기록의 수단으로 쓰인 〈쌍북리 출토 구구표 목간〉으로 구구단의 전래 과정을 증명하고,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만든 〈팔만대장경〉,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 앞선 자랑스러운 〈직지〉까지, 썩지 않고 살아남은 목재 문화재를 알아보자.

4부 지류, 직물, 회화, 벽화, 보존환경 - 적외선 촬영으로 지류, 직물, 회화를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밑그림과 지워진 묵서의 기록을 찾아낼 수 있다. 신라인의 기상을 담았던 〈천마도〉와 종이를 발명한 중국으로 수출까지 이루었던 우리 전통 종이 ‘한지의 제작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전통 재료와 방법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를 통해서는 보존 처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훼손을 방지하는 것 또한 보존과학의 역할임을 알 수 있다.

5부 석조 - 질 좋은 암석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석조 문화재가 많다. 1,300년 넘게 제자리를 지켜온 〈첨성대〉가 지진을 버텨낼 수 있었던 비결을 과학적 분석으로 풀어내고 훼손지도와 풍화 단계를 확인하고 긴급보존처리에 들어간 〈삼전도비〉의 인위적인 훼손 지우기 과정을 함께한다. 세계적 문화유산에 버금가는 〈반구대 암각화〉를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보존에 머무르지 않고 차후를 약속하는 일 또한 보존과학의 일임을 알 수 있다.

6부 미래에 남겨줄 우리의 유산 - 우리가 일상을 SNS에 남기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선조들의 DNA에서 왔을지 모르겠다. 이런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토대로 우리 또한 현실에서의 위기를 극복해왔다. 문화재의 훼손과 파손을 예방하는 시스템 구축에서부터 전통 재료와 방법을 연구하여 문화재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일, 3D 스캐닝과 3D 프린트 기술 등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문화유산을 더 깊게 볼 수 있게 하는 실감콘텐츠의 개발 등 보존과학의 할 일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한 어떤 문화유산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무리한다.

문화유산이란, 미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에게 이어질 만한 가치를 지닌 과학, 기술, 관습, 규범 등이며 정신적·물질적 문화재를 포함한 인류 사회의 문화적 소산이다. ‘보존과학’은 이런 문화유산을 보존·복원·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문화유산들. 보존과학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라지게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