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 세상을 놀라게 한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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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 세상을 놀라게 한 사기극
  • 기초과학연구원
  • 승인 2022.11.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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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과학리포트]

건강검진을 할 때 빠지지 않는 검사가 있습니다. 바로 혈액 검사인데요. 팔에 있는 정맥에 뾰족하고 긴 바늘을 꽂아 약 10ml의 혈액을 뽑는 이 검사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무서워하는 검사입니다. 그런데 만약 손가락 끝에서 몇 방울을 혈액을 채취해 약 25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2014년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진단키트가 등장했습니다. 젊은 여성 창업가 엘리자베스 홈스가 이끄는 기업 ‘테라노스’가 만든 에디슨키트입니다. 당시 이 키트는 일반적인 혈액 검사보다 간단하고, 비용도 단 50달러로 매우 저렴한 획기적인 기술로 실리콘밸리를 흥분시켰습니다.

당시엔 어린 여성 창업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엘리자베스 홈스를 ‘여자 스티븐 잡스’라 부르며 연일 보도했습니다. 홈스가 스티븐 잡스의 상징인 검은 터틀넥 셔츠를 입고 다녀서 더욱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죠. 약 1년 만에 ‘테라노스’는 100억 달러의 가치의 기업이 됐습니다. 미국의 유명 비즈니스 잡지인 ‘포브스’에서는 홈스를 가장 젊고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지명하며 표지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학계와 생명과학계 관계자들은 이 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채취하는 혈액의 양이 매우 소량이라 그 안에 질병 세포가 들어있을 확률이 적어 표본의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죠. 또 오염될 가능성이 커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학계의 반응에도 홈스는 “에디슨의 기술을 외부에 유출시킬 수 없다”는 태도로 에디슨키트와 관련된 논문을 단 한 개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 존 커레이루는 테라노스의 연구에 의구심을 갖고 테라노스의 에디슨 키트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테라노스의 전 직원에게 폭로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에디슨키트가 진단할 수 있는 것은 10여 개의 질병이며, 그 외의 질병은 다른 키트를 사용해 진단해 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실험 결과 조작으로 덮고 넘어간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이 희대의 사기극은 아직까지도 가장 충격적인 실리콘 밸리의 사기극으로 남았습니다. 홈스를 가장 젊은 억만장자로 소개했던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지도자 19인’으로 그를 뽑기도 했죠. 올해 4월, 미국에서는 홈스의 사기극을 다룬 드라마 ‘드롭 아웃’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수 억 달러가 공중분해 된 이 사건은 여전히 재판 중입니다. 올해 1월 투자자 사기, 사기 공모 등 4건에 대해 유죄로 판결났지만 홈스는 이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추가 재판을 요청한 상태랍니다.


우리 주변의 현장진단 기기

테라노스의 에디슨키트처럼 소량의 체액으로 즉시 다양한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현장진단 기술(Point of care testing, POCT)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진단 키트, 소변 검사지, 혈당 측정기 등이 있죠. 현장 진단 기술은 기존의 진단검사 기술을 소형화, 간편화, 자동화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개발도상국 같은 곳에서 현장진단 기기는 빛을 발휘합니다. 큰 병원에서 오랜 시간이 걸려 할 수 있는 검사를 손쉽게 하고 스스로 치료, 예방함으로써 나라의 보건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더 정확하고 간편한 현장진단기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장진단 기기 개발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2020년 5월, 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은 손가락으로 장난감 돌리듯 간단히 세균성 감염을 100%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기구를 개발했습니다.

세균성 감염은 주로 항생제로 치료하는데요, 항생제는 내성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어 정확한 진단 후 필요에 따라 양을 조절해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균성 감염을 진단하는 검사는 큰 병원에서만 가능하고 검사 기간도 1~7일 정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은 증상만으로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곤 하지요.

조윤경 그룹리더가 이끈 연구팀은 이런 상황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미세유체칩’ 연구를 활용했습니다. 미세유체칩이란 마이크로미터 규모 구조물에 시료를 흘려 여러 실험을 한 번에 처리하는 기술로, 진단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 과학자들이 내놓은 연구입니다. 하지만 미세유체칩을 구동하기 위해선 칩 내 액체 시료 이동을 위해 복잡한 펌프나 회전장치 등 제어장비가 필요했고, 개발도상국이나 오지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연구팀은 베어링을 중심으로 본체를 돌리는 손바닥 크기의 장난감인 ‘피젯 스피너’ 장난감에 착안해 손으로 돌리는 미세유체칩을 구상했습니다. 일반 미세유체칩은 시료를 거르는 필터 아래쪽에 공기가 있어 시료를 통과시키는 데 높은 압력이 필요한 반면, 필터 아래쪽에 물을 채우는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압력으로 시료를 통과시킬 수 있어 손힘으로도 충분한 거지요.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ml를 넣고 1~2회 돌리면 필터 속 병원균이 100배 이상 농축됩니다. 이 필터 위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눈으로 판별할 수 있고, 추가로 세균의 종류도 알아낼 수 있지요. 세균 검출 후에는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이끈 조윤경 그룹리더는 “항생제 내성검사는 고난도인데다 현대적인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로 빠르고 정확한 세균 검출이 가능해져 오지에서 의료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짜로 가능할지도 몰라!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이상의 질병을 검사할 수 있던 테라노스의 에디슨키트는 가짜였지만 실제로 이런 현장진단기기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요? 올해 5월 조윤경 그룹리더 연구진이 혈액과 소변을 이용해 전립선암 진단에 성공했습니다. 혈액과 소변을 이용해 암과 같은 질병을 현장에서 바로 진단할 수 있는 다공성 금 나노전극 기반 바이오센서를 개발한 거죠.

소변이나 혈액에는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바이오마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이오마커란 일반적으로 단백질이나 DNA, RNA, 대사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합니다. 이 바이오마커는 주로 대형의료시설이나 실험실에서 샘플 분석이 가능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죠.

또 대부분의 현장진단기기는 암이나 감염성 질환을 진단하기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암이나 감염성 질환 관련 바이오마커는 혈액 등 생체시료에 매우 소량만 존재해 극도로 민감한 탐지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선 전극의 표면적을 늘리면 되지만 이는 오염도 역시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그래서 연구진은 민감도와 정확도가 높은 바이오센서 제작을 위해 ‘다공성 금 나노 전극’을 개발했습니다. 다공성 금 나노전극은 ‘미셀’이 있는 염화나트륨 용액에 평평한 금 표면을 넣고 반복적인 전기를 가해 만들었습니다. 미셀은 머리는 물과 친하고 꼬리를 기름과 친한 민들레 씨 같은 계면활성제가 구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미셀이 있는 염화나트륨 용액에 전기를 가하면 전기화학적 산화환원 반응을 통해 평평한 금 전극 표면에서 금을 부식하고, 다시 흡착시킴으로써 나노구조를 성장시키고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을 형성하는 반응을 유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셀은 부식돼 떨어져 나온 금 입자가 용액 속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다시 금 전극 표면에 흡착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넓은 표면적을 만들어내 센서의 민감도를 높이는 한편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을 형성해 샘플의 오염을 방지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소변과 혈장에서 암세포 유래 엑소좀에 붙어있는 단백질을 검출하며 전립선암 환자 그룹과 건강한 기증자 그룹을 구별했습니다.

조윤경 그룹리더는 “이번 기술은 현장진단기기의 미래 기술 개발에 핵심 발판을 제공할 것”이라며 “앞으로 다공성 금나노 구조의 잠재력을 활용해 혈액·타액 샘플을 분석하는 진단 칩 개발 등으로 연구를 확대할 예정이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에디슨키트. 그 결말은 비참했지만 여전히 제2의 에디슨키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약 8년이 지난 지금, 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하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인데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국내에서 제 2의 에디슨키트. 아니 그보다 더 좋은 현장진단 기기가 개발되지 않을까요?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과학지식백과 | “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 세상을 놀라게 한 사기극” | 2022.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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