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 걸친 일제의 침탈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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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 걸친 일제의 침탈 규명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1.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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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동북아역사재단,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 개최
           도야마현(富山縣) 후지코시(不二越)강재(주)에 동원된 소녀.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동북아역사재단은 18일(금) 재단 대회의실에서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본 회의에서는 2020년부터 재단에서 추진해 온 일제침탈사 편찬사업(편찬위원장 한양대 박찬승 교수)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쳐 되짚어봤다.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은 해방 이후 근 80년 만에 처음으로 학계의 역량을 총 망라하여 일제의 한반도 침탈사를 종합 편찬하고자 한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 사업은 연구총서, 자료총서, 교양총서(바로알기) 등으로 나누어 추진되어 왔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연구총서로 발간된 정치⋅경제⋅전시동원 관련 발간물 6권에 대한 성과를 중심으로 발표하고 이에 대해 종합적으로 토론을 했다.

학술대회는 박찬승 편찬위원장의 기조강연을 비롯하여 정치분야, 경제분야, 전시동원분야 총서를 집필한 총 6명의 발표자가 일제 침탈의 특징과 향후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박찬승 위원장은 기조강연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조감했다. 정치분야를 담당한 광운대 전상숙 교수는 일제 식민지배가 총독정치와 식민지 지배정책, 그리고 일본 내 정치 변동이라는 세 축이 한데 묶여 추진되었음을 밝혔고, 성공회대 신주백 교수는 일본군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 지배, 침략전쟁 수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발표했다. 

경제분야에서는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가 일제의 농업 침탈정책과 그로 인한 피해 실상을 통시대적으로 조망했고, 동의대 김인호 교수는 일제의 공업정책이 증산과 개발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제는 조선인의 희생을 담보로 한 수탈이었다는 점을 발표했다. 전시동원분야에서는 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허광무 연구위원이 일제 강제동원 관련 법령과 제도, 동원 대상 및 지역, 현안과 향후 과제에 대한 내용을 종합하여 발표했으며, 고려대 이송순 교수는 일제 말 전시체제기에 자행된 군수물자 동원과 생필품 통제 실상에 대해 규명한 내용을 발표했다. 

한일간의 역사문제는 ‘식민지배’라는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과거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면서 평화로운 얘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단은 이번 학술회의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이 침탈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하고, 나아가 미래지향적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각 발표자의 주요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기조강연: 박찬승(편찬위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의 과제’

2000년대 이후 식민지 지배정책사 연구가 상당히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연구 내지 연구자가 크게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는 2000년대 이후의 ‘식민지근대성론’의 유행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식민성보다는 근대성에 더 관심이 있는 ‘식민지근대성론’에 의지하다 보니, 식민성 내지는 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약해졌고, 이는 식민지 지배정책사 연구의 약화로 이어졌다고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식민지시기 연구는 근대성보다는 식민성에 더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고, 또 식민주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종전 후의 ‘일본제국주의 비판론’에서 계승할 부분이 있다면 계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 제1발표: 전상숙(광운대) - ‘조선 총독의 지배정책’

한국을 병합을 단행한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의 조선총독정치체제 구축에 서부터 1920년대 사이토총독의 문화정치, 1930년대 우가키총독의 농공병진정책과 이후 1940년대로 이어진 미나미총독의 대륙전진병참기지정책의 전시공업화, 그리고 1940년대 조선식민지총동원정책을 통시적으로 일제의 조선지배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본천황에 직예한 조선총독의 상대적 자율통치권이 조선총독정치체제의 특질을 형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제 조선지배정책의 기본입장이 ‘일시동인’주의→내지연장주의→내선융화→내선일체→황국신민화로 이어지며 한국인에 대한 ‘일본국민화’, 일본국민의식을 강제한 민족말살정책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민족을 일본국민화하여 말살하는 통치이데올로기정책은 일본천황에 직예하여 형성된 조선총독정치체제의 특질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천황에 직예한 조선총독의 상대적 자율통치권은 대륙정책과 총력전체제의 조선교두보관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일제 무관 총독의 조선통치에서 ‘국방’과 ‘경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국방’과 ‘국민화 통치이데올로기’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선산업화를 실시한 우가키의 총력전체제 구상은 한국을 병합한 일본육군 군부의 국방관에 입각한 북진대륙정책의 연장에 있었다. 이에 비해서 대표적인 우가키군벌로 평가되는 미나미총독의 조선공업화는 우가키를 ‘혁신’의 대상으로 본 혁신 청년장교들의 통제파와 제휴하여 북수남진정책의 연장에 있었다. 1930년대 이래 일본정치변동을 배경으로 조선총독들의 일본총력전체제 구상에는 차이가 있어도 조선총독정치의 조선교두보관에는 차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근대 일본천황제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쟁에 조선은 최후의 물자동원지로 기능하며 남김없이 동원되는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총독정치를 총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식민지시기에 일어난 양적 경제지표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그 성과가 근원적으로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경제적 성장의 목적과 이익의 주체의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식민지시기 양적 경제지표의 성과를 낸 식민지배자의 정책 목표와 이를 이루기 위하여 동원된 피지배 식민지 ‘조선인’들의 삶과 생활조건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조선총독정치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라는 ‘본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제2발표: 신주백(성공회대) - ‘일본군 연구와 지배정책: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 운영과 관련지어’

o 연구총서의 특징

• ‘군’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사를 접근
=> 일본의 침략방식과 침략과정, 일본군의 본질적 특징으로 서 제노사이드, 군수동원 구조와 병력동원을 해명

• ‘편제’의 변화를 종횡의 관계(규정과 역규정) 측면에서 정리 
=> 군과 공사관, 통감부, 총독부와의 관계
=> 군과 본국 및 피지배지역(관동군)과의 관계에도 주목 

• 제국의 대외정책과 조선군의 위상 및 역할에 주목
=> 대륙침략 거점 마련 -> 상대적 협조외교 -> 고립외교 및 전쟁 
=> ‘隊’ -> ‘軍’(주차->주둔) -> 上肥下弱 구조 -> 작전군과 군정군

o 연구과제

<군>
• 실증 연구: 인물, 편제
• 미세 연구: 저항과 군사 작전,  광폭 연구: 전쟁과 기능 
• 횡적 연구: 군과 통치(기구)

<지배정책>
• 통치체제의 구축과 주차군
• 대외정책, 특히 對中政策(戰略)과 조선군 
• 군수동원과 조선군
• 1945년과 군


▶ 제3발표: 이영학(한국외대) - ‘일제의 농업생산정책’

o 총서 『일제의 농업생산정책』의 특징 및 의의

• 첫째, 일제의 농업생산정책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그 특징을 정리하였다.
• 둘째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식민 지배의 목적이 식량·원료의 공급기지 구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 셋째, 조선총독부의 농업생산정책은 명목적으로 조선인의 식량 수급과 농촌의 생활 안정을 위해 실시한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일본 본국의 정치적·경제적 안정과 이익을 위해 추진하였다는 점을 밝히려고 하였다. 

o 앞으로의 과제

• 조선 농업의 내재적 발전이 어떠한 변화를 거치면서 전개되었는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 조선총독부의 농업정책 담당자들은 일본의 개량농법이 조선의 재래농법보다 매우 우수하므로 일본의 선진적 농업기술을 조선에 그대로 이식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이 되어 벼농사의 생산력이 더 이상 제고되지 못하고 수확량이 정체되면서 일본 농업기술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 원인과 실상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 산미증식계획에 의해 농업생산력이 발달하고,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증가하 였다고 하는데, 왜 농촌의 수지는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는가를 규명하는 일이다.
• 일제하 식민지 시기에 조선 재래의 한전농법체계와 농업기술의 변화 양상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 조선총독부가 조선에 적용하려고 하였던 일본식 근대농법이 조선의 재래농법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를 고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 제4발표: 김인호(동의대) - ‘조선총독부의 공업정책’

o 『조선총독부의 공업정책』의 결론 : 총독부의 공업정책은 ....

① 조선독자 공업화 가능성을 배제한 본토 위주 공업화
② 민족 별 우열이 분명히 드러난 민족 차별의 공업화
③ 분절적이고 지역 할거적인 전쟁 편승 공업화
④ 산업연관이 결여된 대체재 생산과 조악한 대용품 대체자원 중심의 공업화
⑤ 투자와 노동의 주체여야 할 조선인의 능력 신장보다 노동자 희생과 시장 질서의 희생 위에 군림하는 ‘내핍과 복종’의 공업화

o 향후 과제

• 단위 지역사, 기업사, 경영사 등의 심화 축적
• 공산품 시장 동향과 물가 변동 이해 폭 확대
• 정책 동향에 더하여 공업화 실상 규명
• 조선인 자본의 형성과 지역 네트워크(연고) 이해
• 조선에서의 물자수급구조와 그 변동상 확인


▶ 제5발표: 허광무(강평연) - ‘일제의 전시 조선인 노동력 동원’

o 미해결 과제, 중단된 진상규명 

전시 조선인 노무자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서는 추진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강제동원·강제노동에 대한 진상조사이다. 한국정부위원회가 강제동원 피해조사와 지원을 담당하던 당시 정리한 진상조사과제만도 300여 개를 훌쩍 넘었다. 나머지 규명되지 않은 과제에 대한 조사개시가 우선 중요하다.
둘째, 희생자 유골 봉환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 일본 유텐사에 안치 중이던 한인 군인·군속의 유골은 일본정부 책임 하에 한국측에 봉환된 바가 있다. 그후 한·일 양국은 일본 각지 사찰에 안치했던 노무자 유골의 국내 봉환을 준비해 왔다. 군인·군속 유골 봉환과 동일한 조건하에 일본 지역 노무자 유골의 봉환이 성사되어야 한다. 물론 한인 사망·행방불명자에 대한 진상규명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강제노동의 대가로 응당 받았어야 할 미수금문제이다. 자료부재로 미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관련자료를 발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넷째, 해방 후 소련의 강제억류로 귀환할 수 없었던 사할린 피해자 문제이다. 1992년부터 영주귀국이 실현되지만 순차적 귀환이라는 굴레 때문에 한국정부지원에서 소외된 유족들이 있다.
다섯째, 일본의 산업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일련의 역사왜곡 문제와 같이, 강제동원 피해를 은폐, 혹은 부정하는 움직임에 일관성 있는 태도로 문제제기하며 대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내 강제동원·강제노동 피해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문제도 금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제6발표: 이송순(고려대) - ‘일제말 전시 총동원과 물자 통제’

o 연구 내용

본 연구에서는 전시 총동원체제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에서 행한 군수물자 동원의 실태와 생필품에 대한 통제를 중심으로 전시체제기 조선 식민지배의 실상과 의미를 분석했다.

1장에서는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총력전’이라는 근대전쟁의 양상을 체득하고 자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대외 팽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을 준비하는 논리를 정리했다. 
2장에서는 일본제국주의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전쟁을 확대하면서 생산력 확충과 물자동원을 축으로 전개된 전시 총동원체제의 실상과 파탄 상황을 살펴보았다.
3장은 조선의 지하자원〔광물〕과 자금 동원·수탈의 메커니즘과 그 실상, 그에 대한 조선인의 대응과 일상을 살펴보았다.
4장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량공급기지인 조선의 역할이 전시 하에서 강화되어 군수 식량 확보를 위한 전시 증산정책이 실시되는 과정과 내용, 그 한계를 살펴보았다.
5장은 식량 증산이 한계를 보이자 결국 유통과 소비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동원이 실시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6장은 식량 생산의 한계, 강제 공출된 식량의 군수로의 이용을 위해 민간 소비를 극도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고, 소비통제를 위해 실시된 식량 및 주요 생필품의 배급 실태를 살펴보았다.

막대한 소비행위인 전쟁을 위한 동원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일본 본국과 식민지 사회는 단순 재생산도 불가능한 축소 재생산 과정에 빠져들면서 일본제국주의의 몰락은 단지 시간 싸움에 불과했다. 마침내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과 함께 조선은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 식민지배의 제도와 모든 결과를 봉인시키고 청산케 하지 못했다. 전시 물자동원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제도와 시스템, 인식은 해방 이후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o 향후 과제

일제 전시 총동원체제기의 역사적 경험은 해방 후 분단과 전쟁, 독재체제 수립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지배계층 및 특정 집단들에 의해 다시 이용되며 한국 사회의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파생시켰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빈곤과 정치적 미숙함,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심화되면서 일제 전시 총동원체제기의 파시즘적 사회질서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滅私奉公’ ‘公益優先’의 이데올로기- 가 여전히 힘을 얻게 되었다. 식민유제 청산의 핵심은 이러한 일제의 전시 총동원체제의 파시즘적 인식과 사회질서를 해체하고 자유·평등·인권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뿌리내리는 법적·제도적 정비와 사회인식의 변화라 할 것이다. 해방과 함께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의 인적 청산 기회를 잃고, 70여 년이 지나 국가적 차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적극적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에 대한 국가 귀속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역사적 평가의 엄중함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사회시스템과 인식에 남아있는 식민지배의 부정적 유산은 그 뿌리인 전시 총동원체제의 실상을 명확히 하여 청산해 가야 할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 각 분야에 남아있는 전시 총동원체제의 유제를 하나하나 철저히 분석하는 작업이 추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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