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만에게 학문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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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만에게 학문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1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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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지그문트 바우만의 마지막 인터뷰 | 페터 하프너 지음 | 지그문트 바우만 원저 | 김상준 옮김 | 마르코폴로 | 184쪽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난 2017년 1월 9일에 사망한 소식에 전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폴란드계 영국인 사회학자가 사망했을 때 91세였지만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그의 사회학적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위스의 저널리스트인 페터 하프너가 2016년, 영국 리즈의 자택으로 찾아가서 그와 함께 지내면서 바우만의 내면에서 출렁이는 인식의 파도를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이켜본다. 이 책에서 주제의 다양성은 무척이나 폭넓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사랑과 젠더, 유대교와 양면성, 권력과 정체성, 종교와 근본주의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바우만에게 학문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철학적 사고에는 한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말이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1925년 폴란드의 포즈난에서 태어난 바우만은 전체주의적 공포가 반영된 이곳에서의 삶을 되돌아본다. 스탈린 전후 폴란드의 정보 장교로, 1953년 아버지의 ‘서방’과의 접촉으로 인해 해고되었고 마침내 1968년 반유대주의 ‘숙청’ 과정에서 바르샤바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강제 추방되었다. 이스라엘에 잠시 머물던 바우만은 1971년에 영국 리즈 대학교에서 자리를 제안 받았다. 여기서 그는 〈모더니즘과 홀로코스트〉처럼 우리시대의 고전이 된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이 대담집은 바우만이 죽기 직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삶에서 죽음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요컨대 바우만은 계몽적인 언어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관심이 실패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톤이 우울과 몽상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맑스의 11번째 테제를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세계를 해석하기보다는 세계를 ‘변화’시키기를 원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삶의 마지막에도 “세상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바우만은 모더니즘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페허 위에서 여전히 희망의 깃발을 휘두르고 있다.

바우만은 무엇보다도 덧없는 근대성(Fleeting Modernity)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다. 많은 이들에게 ‘세계화 반대자들의 머리’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예언자’로 묘사된 학자는 인문학 세계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였다.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능력을 잊어버리거나 도덕적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그 자신의 삶을 날줄로 그리고 타인들의 삶을 씨줄로 해서 의미의 그물망을 만든다.

그는 하프너와의 대화에서 자본가와 노동조합(산업) 노동자 간의 고정된 관계가 사라진 지 오래인 오늘날의 종속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주저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모호한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세계와 세계 사이의 그 작은 틈새를 낮게 비행했던 바우만은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기쁨”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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