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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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1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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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의 사회정치학 | 파블로 세르비뉴·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 강현주 옮김 | 에코리브르 | 1,656쪽

 

최근 카카오 사태를 보면서 현대의 시스템적 생활이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다.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 몇몇 재앙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지구 차원의 위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 문명의 붕괴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우리 문명이 붕괴한다면? 수 세기 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세대. 마야의 종말론이나 천년지복설의 말세론과 거리가 먼 수많은 저자, 연구소, 기관들이 우리 산업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 암울한 예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는 것이 왜 힘들어졌을까? 붕괴는 세상의 종말이나 묵시록이 아니다.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주택, 의복,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서 이것은 세상의 종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과정이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뿐 어떻게 진행될지 알 방법도 없다.

어디까지 이어질까? 누가 영향을 받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들? 부유한 나라? 선진국? 서구 문명? 인류 전체? 아니면 일부 과학자가 예고한 것처럼 대다수 생물 종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들’은 이 모든 범주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석유의 고갈은 산업화한 세계 전체와 관련이 있지만,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살아 있는 종을 위협한다.

인류세는 현재를 특징짓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 인류는 약 1만 2000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농업과 문명을 출현시킨 충적세라는 대단히 안정적인 기후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인간은 지구 시스템의 거대한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을 방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변화한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세계적 차원의 냉정한 과학적 선언 그리고 예기치 못한 혼란스러운 사건과 감정으로 정신없는 일상의 삶, 이 둘 사이의 거대한 공백을 채우거나 이 둘을 이어줄 가교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공백을 채우고자 한다. 그리고 인류세와 우리의 용기를 연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붕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이 개념은 다양한 분야, 즉 생물 다양성의 감소 속도뿐만 아니라 재앙과 관련한 감정, 기근의 위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류세의 개념을 생생하고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붕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미디어와 지식인 사회에서는 붕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이 주제, 붕괴(또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논쟁은 실질적 근거가 없다는 결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상상이나 철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거나, 본질적으로 ‘공중’에 붕 떠 있다. 붕괴를 다루는 저서들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관점이나 분야(고고학, 경제학, 생태학 등)에 국한되어 있어 붕괴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부족하다.

지구의 경제 상황 및 생물물리학적 상황에 대한 실질적 현황과 체계적 분석이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붕괴가 무엇과 유사한지,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현세대에 심리학적·사회학적·정치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개요도 빠져 있다. 붕괴를 다루는 관련 분야 및 학제 간 연구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 책은 ‘붕괴론’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붕괴라는 단어의 의미를 파헤치고, 그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환상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붕괴론의 목표 중 하나다. 붕괴의 개념을 명확히 밝히고, 다양한 시간대에 적용해보고, 미묘한 차이나 세부 사항을 찾아내는 것, 한마디로 붕괴를 생생하고 작동 가능한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게다가 세상은 획일적이지 않다. ‘남북 관계’라는 문제는 새로운 각도에서 재고해야 한다. 평균적 미국인은 평균적 아프리카인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는 적도에 가까운 국가, 정확히는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적게 한 국가에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붕괴의 시간성과 지리학은 선형적이지도 균질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룬다. 즉 이 세기의 가장 나쁜 소식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미 ‘탄소 이후’ 세계에 직면해 급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모든 작은 시도들에 대해 듣고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러나 합리성만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저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주제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경험, 특히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수치만으로는 상황을 적절히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 직관·감정·특정 윤리를 추가하고자 한다. 붕괴론은 연구 대상과 분리된 중립적 학문이 아니다. ‘붕괴론자’는 그들이 연구하는 것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중립적 태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붕괴라는 주제는 우리의 내면 가장 깊숙이 해를 끼치는 유독한 주제다. 우리의 꿈을 죽이는 큰 충격일 것이다. 붕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게 아무리 비합리적일지라도 우리에게 소중하고 위안을 주던 미래가 죽어간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붕괴에 대해 논의하되 차분해야 한다. 확실히, 붕괴 가능성은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폭력적으로 닫아버린다. 하지만 다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며, 그중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유쾌하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의 도전 과제는 이러한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고, 그 미래를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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