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대안적 ‘실격의 페다고지’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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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대안적 ‘실격의 페다고지’를 상상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1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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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격의 페다고지: 감염병 시대, 실패에 대한 다른 상상 | 임옥희·김미연·김은하 지음 | 여이연(여성문화이론연구소) | 235쪽

 

팬데믹이라는 위기의 시대 서구 남성 이성애 비장애 주체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혹여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를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의심하고, 다수의 ‘건강한’ 면역 주체가 보일 수 있는 폭력에 맞설 수 있도록 비평적 대응을 탐색하는 일은 현재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동시대적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인간의 취약성, 의존성, 상호(불)연결성을 체감하는 시대에 기존의 ‘건강한’ 면역 주체 중심의 사회가 처한 위기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을 고찰하는 작업으로서, 현저한 동시대성을 포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 장애학, 문학 사이를 가로지르고 횡단하고 교차함으로써 독자적 학문의 경계와 벽을 허무는 상호학제적 탐색이라는 특징이 있다. 내용의 측면에서 페미니즘과 장애학의 여러 다양한 이슈를 포괄하고, 형식의 측면에서는 다양한 문학 장르를 다룸으로써 주제와 형식 모두 동시대 분석을 위해 좀 더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 사이에서 발생하는 ‘실격’의 의미와 의의를 탐색한다.

필자들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취약성, 상호의존, 불구의 시간성, ‘난잡한’ 돌봄을 키워드로 대안적 ‘실격의 페다고지’를 상상하고자 했다. 취약성, 불구의 시간성, 난잡한 돌봄을 긍정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 지금과 같은 경쟁, 혐오, 경멸, 수치심을 자극하는 환경에서부터 공존, 공감, 공생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실격의 페다고지를 페미니즘의 기본가로 삼아 다음과 같은 논의를 개진했다.

먼저 코로나 비상사태는 인간의 취약성과 각자도생의 불가능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간은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해 상호의존적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감염되고 변이되는 혼종적 존재다. 근대가 주장한 ‘완전한 인간’은 없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적이다.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에 의존하여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완전성, 불멸성, 자율성에 바탕한 오만한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취약성, 상실, 필멸성, 불완전성을 기본가로 하는 ‘다른’ 상상력의 차원에서 SF서사에 주목했다.

두 번째로, 진보적 시간관에 대한 대안으로서 ‘불구의 시간성’에 주목했다. 그것은 장애와 질병을 둘러싼 일련의 담론에 담겨있는 생산, 건강, 젊음에 대한 강박에 주목함으로써 어떤 사람이든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규범적 시간성’이 아닌 각각의 개인들이 경험과 환경에 따라 고유한 시간성을 가진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해피크라시 담론에 균열을 내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획일적 속도전에서 탈락, 낙오, 배제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은 물질적 인프라로서 자신의 몸에 축적된다. 불확실한 미래는 불안과 불편(dis-ease), 아픔과 곤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건강함을 입증하기 위해 불건강하고 아픈 삶을 살아내야 한다. ‘행복하라’가 정언명령이 된 사회에서 조울증, 우울감, 만성피로, 탈진, 불안과 초조로 인해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과 소수자들의 자기해방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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