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하는 세계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재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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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세계는 어떻게 부의 질서를 재편하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1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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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트 임팩트: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 4개의 축이 뒤흔드는 지금부터의 세계 | 박종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352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평화롭던 세계의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고, 세계화(Globalization)의 기치를 내걸었던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CHIP4’ 동맹 등을 통해 노골적인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지난 30여 년간 자취를 감췄던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내밀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이하 연준)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자이언트스텝(Giant Step, 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을 이례적으로 연속 단행했다. 게다가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유럽, 중동 등 각 지역 패권 경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패권 경쟁의 새로운 무기라 일컫는 반도체·배터리·신재생 에너지 등의 자원 경쟁으로 선진국을 비롯해 우리나라까지 거대한 파급 효과가 밀어닥치고 있다.

저자는 이 급격한 변화의 원인을 보려면, 이전의 시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1991년 소련 해체를 기점으로 미국에 의한 고효율의 ‘세계화’가 새로운 국제 질서로 떠오르면서 “물가, 임금, 금리,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지난 30년은 세계경제에 유례없이 특별한 상황이 펼쳐졌”던 것에 가깝다. 그러나 미중 간 본격적인 패권 경쟁과 무역 전쟁,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이제 치열한 패권전쟁의 서막,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계 혹은 ‘탈세계화(Deglobalization)’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역사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유례없는 변화를 약 45억 년 전 지구를 향해 날아온 거대한 행성과의 충돌과 그로 인한 달의 탄생을 설명하는 가설인 ‘자이언트 임팩트(Giant Impact)’에 비유하며 그 예측 불가능성과 혼돈의 파급력을 설명한다. “그야말로 과거 수십 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대변동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경제와 패권 질서를 뒤흔드는 핵심적인 축이자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요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4가지는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다.

먼저, 인플레이션은 실로 오랜만에 세계경제의 이슈가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의 저물가 기조는 ‘세계화의 산물’로 역사적으로 희귀한 행운을 누린 것에 가깝다.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효율적인 생산과 자유무역 환경 속에서 물가가 고도의 안정성을 갖춘 덕이다. 그러나 경기부양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연준(Fed)이 거침없이 양적완화에 나서 유동성이 넘치자, 전 세계 자산 가격에 거품이 쌓여갔다. 세계는 결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공급망에 타격을 입자 즉각 인플레이션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 책은 미국 주도 세계화가 균열을 일으키면서 탈세계화는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지, 장기불황을 겪는 일본의 경우 어떤 위험에 직면해있는지, 향후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 4가지 시나리오 예측 등을 담았다.

현재 세간의 이목이 가장 집중되는 변화의 팩터는 금리일 것이다. 금리는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번영과 직결되어왔고, 강력한 패권 국가가 등장했을 때 하락 안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세계 공급망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지난 40여 년간 ‘0(제로)’ 수준까지 하락하던 ‘저렴한 돈값’은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다. 전 세계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자산의 상승이 멈췄고, 실물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가시화되는 중이다. 저자는 그간의 저금리를 가능케 했던 주요 원인으로 중국 등 이머징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과잉 저축 현상(Global Saving Glut)’, 선진국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저금리 정책,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대변되는 미국 중심의 세계 등을 지목했다. 더불어 금리 상승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벌어질 일들과 금리인상기의 투자 전략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야말로 시대의 뉴 챕터를 여는 ‘거대한 충돌’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인한 양국의 정치적 갈등이 표면적인 원인이었지만, 저자는 여기에 미국의 신재생 에너지 가속화 전략이 러시아 경제에 위협을 가했다는 점,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이란 핵 합의 복원이 원유 가격을 하락시킬 우려가 있었다는 점, 러시아-독일을 잇는 새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 2(Nord Stream 2) 개통 계획 등이 미국을 자극했다는 점 등 전쟁의 경제적 배경에도 주목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세계 질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짚어본다. WTO 가입 이후 미국의 패권을 넘보게 된 중국의 성장을 견인해온 미국의 역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재편 중인 미국 중심의 안보·경제 공동체들과 나토(NATO)의 부상, 중국 반도체 시장을 압박하기 위해 결성 중인 반도체 동맹 칩4(CHIP4)에 이르는 동맹 체제의 변화과 그 영향도 살펴본다.

끝으로, 이러한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새로운 무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다. 패권 전쟁과 탈세계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예전처럼 경제적 효율성만 놓고 자원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재생 에너지 전환도 그리 수월해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이제 산유국이나 원유 회사가 굳이 많은 돈을 들여서 기술혁신이나 유전 탐사에 나설 이유가 없고, 오히려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기존 유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모순을 지적한다. 게다가 미국은 ‘셰일 혁명’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으로 성급하게 중동에서 발을 빼려다 불리한 정치 지형을 만들어놓았다.

여기에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미국산 전기차·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시행을 앞두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서 만든 자유무역의 규범을 스스로 깨면서까지 자국산 전기차·배터리에만 세액공제를 해주는 것은, 그만큼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차세대 에너지 패권 구도에서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이 법안에 대해 유럽과 중국이 각자의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와중에 유독 한국의 대응이 미진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무역, 기술, 군사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중동 등을 중심으로 세계는 본격적인 패권 전쟁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30여 년 만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충격이 ‘자이언트 임팩트’가 되어 세계경제를 예측 불가능한 혼돈의 시대로 이끌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한번 흔들린 세계경제와 정치의 패권 구도는 한쪽이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기 전에는 과거의 값싸고 평화로웠던 세계화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투키디데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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