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원인은 이데올로기 차이가 아닌 자본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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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신냉전’…원인은 이데올로기 차이가 아닌 자본간 경쟁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1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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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 훙호펑 지음 |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24쪽

 

모든 사안에서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관계의 역학을 분석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의 원인은 이데올로기 대립에 있지 않다. 이는 명확히 자본 간 경쟁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지정학적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 저자는 이전에도 미중 관계는 오바마 정부를 기점으로 밀월관계에서 좀더 경쟁적인 관계로 변해왔다고 분석했다. 이 책에서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 사이의 변화가 두 나라의 정치적 관계 변화의 기저에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세간에 나오는 다수의 설명이 미중 관계 악화를 민주주의 체제-권위주의 체제의 대립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베버주의적 관점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어떤 행위자들이 각각 더 중요한지 다면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미국은 세계 권력과 국제적 위신을 유지하려는 베버주의적 강박에 따라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여기는 반면, 재무부·국가경제위원회·의회 등은 거대 기업의 영향력에 대해 더 개방적인 편이라고 바라본다. 하지만 2010년에 들어 미국에서 국가와 기업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중국에 공동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저자는 향후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그리기 위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힘의 변화를 파악하며 제국 충돌의 최악을 피할 방법을 전망한다.

미중 관계를 살펴보는 데 있어 이 책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의 주요 분기점에 따라 두 행위자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분석한다. 중국은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개방 정책을 취했고, 미국은 1993년 10년 만에 빌 클린턴의 당선으로 민주당이 집권당이 됐다. 따라서 미국 외교가에서는 인권 이상주의자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는데, 이들은 중국이 인권 문제를 개선해야만 자신들과의 무역에서 최혜국대우MFN를 갱신해주겠다는 단서를 달았다(여기엔 노동조합을 의식해 보호무역을 펼치려는 미국의 감춰진 속내도 있었다). 이러한 단서 조항은 민주당의 주요 대선 공약이기도 했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MFN 지위를 갱신해주지 않는다면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이 보복당할 우려가 컸고, 다른 한편 중국 정부도 1992~1994년 경제위기를 맞아 수출 지향 성장을 택해 두 국가 모두 상대와의 자유무역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 중국 국가는 미국 기업들을 대리 로비스트로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조정했다. 미국 쪽 자료로는 이 당시 중국이 백악관과 의회에 로비하도록 미국 기업들을 끌어들인 구체적인 단서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몇몇 보고서를 보면 중국 관료들이 어떻게 강압적 수단으로 지시해 미국 기업이 중국을 대신하여 워싱턴에 로비하도록 요구했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중국 관료들은 보잉이 중국에 유리한 정책을 펴도록 로비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중국 국영 항공사들이 항공기 주문을 중단하겠노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중국 국가와 미국의 정치·경제 엘리트 간의 계속된 상호작용 속에서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 상대로 보는 미국의 충동은 억제되었다.

하지만 미중 무역 자유화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2008년 경제 대침체 이후 과잉축적의 위기를 맞은 중국 공산당과 국유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압박해 수익성을 회복하려 했다. 세계무대에서 이러한 자본 간 경쟁은 중국 국가로 하여금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서 그 세력권을 개척하도록 유도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을 심화시켰다. 이러한 대립에 직면하자 우호적인 미중 관계를 보장하는 데 앞섰던 미국 기업들은 뒤로 한발 물러섰고, 미중 외교 정책 엘리트들 간의 갈등이 벌어져도 특별히 손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도움을 달라며 오히려 정부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이 같은 성향 변화는 2010년경 이후 거의 모든 문제에 걸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으로서 두 나라의 비중을 합치면 GDP에서는 세계 전체의 거의 40퍼센트, 국방비에서는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 향후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며, 21세기에 미래의 세계질서 또는 혼돈을 결정짓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통계 자료들을 근거로 하건대, 중국이 성공적인 경제체인 것은 맞으나 많은 영역에서 미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물론 시진핑 체제에 들어서서 중국 공산당의 자신감은 크게 올랐는데, 가령 미국 지도자들을 직접 모욕하도록 외교관들을 풀어준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현재 문제는 좀더 구조적인 것으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많은 국유 기업에서 발생한 과잉생산 및 부채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 위해 시진핑 정부는 외국 기업과의 더 공격적인 경쟁을 개시했지만, 이는 사실 중국의 불안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8세기부터의 중국 경제사를 훑으면서 국가의 통제와 불안을 읽어낸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자본 간 경쟁은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앞으로 몇 년간 지정학적 경쟁은 불가피하게 심해질 것이다. 다만 저자는 낙관론을 잃지 않을 근거도 있다고 본다. 비교하건대 지금 두 제국의 대립은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의 경쟁관계와 굉장히 유사한데, 다행인 점은 중국이 점점 군사화되고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해도 당시의 독일보다는 훨씬 덜 군국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중 간의 관계는 악화될 게 분명하지만,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는 WHO, WTO, UN과 같은 글로벌 통치 기구에서의 경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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