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삶의 역사와 환경에 녹아든 한국적 미의식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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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삶의 역사와 환경에 녹아든 한국적 미의식의 보편성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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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의식에 대하여 | 이주영 지음 | 미술문화 | 332쪽
 

어느 민족의 예술에서든 공통으로 수렴되는 중심점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것을 토대로 형성된 미의식은 그들의 삶의 역사와 환경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한국 예술에는 어떤 미의식이 담겨 있을까? 한국 작가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다양한 예술세계를 표현했지만, 그 중심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미의식”이 존재한다. 이 책의 목표는 그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미의식은 개인의 체험과 정서가 다르듯이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라서 한 민족의 삶의 체험이 비슷하게 공유되는 부분이 있다면 미의식도 유사하게 공유되고 이로부터 공통감이 생겨난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공통감을 미적 보편성이자 객관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미술 작가마다 다양한 미의식이 어떤 공통감으로 수렴된다면 그것은 결코 어떤 획일적인 개념으로 고착되지 않는 한국적 미의식의 보편성으로 상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연구 결과는 한국적 아름다움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수렴되는 중심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이 자연과 인간을 보는 관점이다. 어느 민족의 예술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중요한 소재이지만 한국인들의 자연을 대하는 정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관점은 한국인들의 삶의 역사와 환경을 특징적으로 반영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예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을 보는 관점은 작가마다 다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획일적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러기에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작품 의미를 불확정하게 만든다. 즉, 무수히 많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떤 공통의 의미체로 수렴되면서 불확정적 확정성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예술작품의 진정한 의미 기반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그 범위와 대상을 한국 근현대미술로 한정하고, 20세기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모 과정을 겪는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먼저 작품들의 특징과 소재, 기법 등을 구상과 추상, 새로운 형상미술 등 미술의 유형에 따라 차례로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궁극적으로 한국적 미의식을 탐구한다. 즉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시대별로 선별하고 작품의 내용적 특징을 인간, 자연, 문화에 대한 견해로 구분한 후에 그들의 작품세계 속에서 한국적 미의식을 추출하는 것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20세기 한국미술의 미의식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탐구해야 할 핵심문제들을 논의한다. 한국 근대미술 논의에서 중요하게 거론되어 온 ‘향토색’에 대해 재고하고, 근대미술의 용어와 시기 구분, 그리고 재현의 관점에서 근대 구상미술을 파악한다. 2부는 한국 구상미술에 대한 논의와 주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여기에는 사실적인 재현기법부터 반추상의 실험적 기법까지 활용한 다양한 작가들이 포함된다. 3부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전개된 한국 추상미술의 미의식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앵포르멜과 단색조회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마지막 4부는 1980년대 전반기를 중심으로 부각된 리얼리즘미술과 신형상미술의 미의식을 탐구한다. 여기에서는 비판적 리얼리즘미술과 극사실회화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한국 구상작가들은 대체로 충실한 회화적 기량과 밝고 신선한 색채 처리, 화면 전체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특히 소재를 배치함에 있어서 구성적 균형감과 안정감, 조형적인 통일성을 중시한다. 또한 이들은 세부적인 형태를 생략하고 과감한 색채 대비를 통해 스스로 체험하고 자기화한 삶의 정서를 표현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외적인 삶의 모습과 내면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인간 삶의 온갖 정서를 포괄하는 다양한 미의식을 보여준다.

추상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추상작가들은 순수한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미의식으로 실재를 추구하는 모더니즘 정신을 구현하면서도 한국적 미의식을 다각적으로 접목시키고자 했다. 그들이 추구했던 내적 실재의 내용을 보편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 자연과 정신이다. 자연과 정신은 삶 속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추구되고 표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간주된다. 추상작가들은 이러한 ‘의미’를 찾기 위한 과정의 어려움을 기록하고, 의미를 무화하거나 부정하는 몸짓, 의미의 반대명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1980년대 한국의 비판적 리얼리즘 미술경향을 대표하는 ‘현실과 발언’의 작가들은 작품에 사회적 삶의 이야기를 담는데, 이것은 미술에 나타난 서사성의 발로다. 저자는 그 미학적 의의를 루카치의 후기미학에 기반한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극사실회화는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신형상미술의 중심을 이룬다. 극사실회화에 내재된 미의식은 인간의 자유, 원초적 자연,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로 수렴된다. 작가들이 활용했던 시각기호의 상징은 그들이 갈망하는 유토피아적 가상현실과 연관된다. 극사실회화의 주된 모티프 중 하나인 일상적 환경의 묘사는 물질로 둘러싸인 일상의 삶에서 도약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근현대 예술작품들을 살펴보면 시대별 상황이나 특정 미술운동의 이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세기 한국인들의 삶의 모습과 내용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게 표현된 한국적 미의식이 우리 민족의 미에 대한 정서적 핵심을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한국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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