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뉴미디어 이용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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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뉴미디어 이용의 역설
  • 이재신 중앙대·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2.11.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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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다양성 그리고 편향』 (이재신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04쪽, 2022.10)

 

최근 인공지능이 우리 삶 속에 성큼 다가왔다. 특히 미디어 이용과 관련된 인공지능의 이용은 급속하게 늘고 있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플랫폼들은 사용자에 대한 분석과 콘텐츠 추천을 위해 앞 다투어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효과적인 ‘개인화’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공지능의 도입을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알파고 같은 학습형 인공지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적인 컴퓨터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가령 일반적인 컴퓨터는 일정한 규칙에 의한 계산을 바탕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따라서 인간이 미리 특정 규칙들을 올바르게 잘 설정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인공지능은 미리 설정된 규칙에 의해 작동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공하는 자료들을 학습하여 다양한 계산 방식을 스스로 구성해 간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은 미리 정해진 방식이 아니라 학습에 근거하여 설정되는 가변적인 계산 방식을 통해 정보처리를 수행한다. 

학습에 의해 변화되는 계산 방식을 지니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할 것인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특히 어떤 자료를 통해 학습했는가에 따라 정보처리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때로는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작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을 올바로 학습시키는 것은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이 된다. 만약 학습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의 이용은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TV나 라디오, 신문처럼 과거부터 존재해 온 아날로그 대중 미디어는 획일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대중 미디어가 전해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만 있었을 뿐 자신의 의견을 미디어에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이와 달리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디지털 뉴미디어는 양방향적이며 개인화된 미디어 이용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거의 미디어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뉴미디어 이용자는 획일적인 방식으로만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전통적 미디어 이용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심과 선호도에 따라 개인화된 미디어 이용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은 웹사이트의 초기 화면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의 메뉴 구성 등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이른바 개인화된 미디어 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개인화된 이용 환경을 통해 사람들은 이제 다른 사용자들과 차별화된, 나의 미디어 이용 경험을 쌓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해 사용자의 미디어 이용 방식에서 다양성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며 뉴미디어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어떤 콘텐츠를 이용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어떤 정보를 이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이 콘텐츠를 엄선하여 사용자들에게 추천하는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가 등장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전문가들이 엄선한 상품들을 사용자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곧바로 한계에 봉착했다. 모든 사용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이들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일은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를 정교한 수준으로 수행하여 각 사용자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시스템이다. 대표적으로 유튜브(Youtube) 같은 영상 플랫폼은 인공지능을 통해 각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이용하여 콘텐츠를 추천하고 있다. 포털사의 뉴스 서비스도 사용자의 뉴스 소비 성향을 분석하여 개인에게 맞춤화된 기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유사한 콘텐츠를 소비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 나만을 위한 콘텐츠 목록에서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골라 소비하고 있다. 현재의 미디어 이용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화된 방식으로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나의 미디어 이용 방식을 분석하여 나에게 최적화된 미디어 환경을 꾸며주고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디지털 뉴미디어와 결합한 인공지능은 분명 미디어 이용의 다양성 증가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게 해준다. 

문제는 빅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처럼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도입된 기술들이 오히려 미디어 이용의 다양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디어 생산자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을 만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 스스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사용자들은 자신의 선호에 맞추어 인공지능이 추천한 한정된 종류의 콘텐츠 목록 속에서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속에 갇혀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filter bubble

필터버블에 갇힌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만을 소비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옳으며 남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코로나19 상황에서 극보수의 유튜버 콘텐츠만을 소비하며 광화문에서 집단 시위를 벌인 태극기 부대가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개인화된 미디어 이용 환경이 제공됨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은 오히려 필터버블 속에 갇혀 단순화되고 획일화된 신념을 형성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대중 미디어 시대에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비슷한 미디어 이용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뉴미디어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사회 구성원 개인별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사회적 수준의 다양성은 증가했다. 하지만 개인 한명 한명의 수준에서 보자면, 자신이 선호하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추천받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만을 이용하며 결과적으로 획일화되고 편향된 미디어 이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화된 획일성(diversified uniformity)’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양화된 획일성이란 사회적 수준에서는 개인화되고 다양화된 미디어 이용이 이루어지지만 개인적 수준에서는 오히려 획일적이고 편향된 방식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역설적인 현상을 의미한다. 이용자들이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하기 때문에 언뜻 사회 전체적으로는 미디어 이용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용자들 모두 저마다의 방법만을 고수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각 개인 별로는 획일화된 미디어 이용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미디어 이용이 다양화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별로 획일화된 ‘다양화된 획일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관점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을 골라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람들은 저마다의 필터버블 속에 갇혀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보는 확증편향에 의지하며 세상을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때, 특정 방향으로 편향된 미디어 이용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획일적이고 왜곡된 신념을 형성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차별, 혐오, 증오 등의 문제가 계속 심해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나만의 좁은 신념 속에서 타인을 바라보며 그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다름’을 ‘틀림’으로 잘못 이해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의 편향된 미디어 이용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결합된 뉴미디어의 이용이 나 자신을 필터버블 속에 가두어 한쪽으로 편향된 시각을 지니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재신 중앙대·커뮤니케이션학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공업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학 석사, 코넬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R&I 멀티미디어 대표, 싱가포르 난양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스쿨 교수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감정과 느낌으로서의 위험: 뇌 과학과 생물학적 접근』, 『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기술영향평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인터넷자율규제기구(KISO)에서 정책위원, 검색어검증위원장, 인공지능 신기술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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