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소설의 수용과 개작 … 중국과 한국 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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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의 수용과 개작 … 중국과 한국 ⑰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11.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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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중국소설 사대기서(四大奇書)는 최상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문문명권 각국에서 아무 거리감 없이 읽고 즐기는 공유재산이 되었다. 그러면서 나라마다 특히 애독하고 적극 개작하고 하는 작품이 달라, 문명의 양상을 다채롭게 했다. 

이것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를 산스크리트문명권에 포함된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받아들여 번역하고 개작해 자국의 작품으로 만든 내력과 같으면서 달랐다. <라마야나>는 단일 작품이어서 동질성을, 사대기서는 각기 달라 이질성을 확인하도록 했다. 산스크리트문명권보다 후진이었던 한문문명권이 선진인 작품을 내놓았다. 

사대기서 가운데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은 용력과 무예가 뛰어난 무사들의 활약상을 다루었으므로, 무사의 나라 일본에서 특히 환영했다. 거듭 번역하고, 무대를 일본으로 바꾼 <본조수호전>(本朝水滸傳)이라는 것들을 여럿 내놓았다가 대장편 <<남총이견팔견전>>(南總里見八犬傳)을 이룩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犬’자 성씨를 지닌 여덟 무사가 주군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을 그려, 반역의 주제를 충성으로 바꾸어놓았다.   

사대기서 가운데 또 하나인 <서유기>(西遊記)는 월남에서 특히 좋아했다. 삼장법사(三藏法師)는 월남 승려와 행적이 유사하다고 여기고, 손오공(孫悟空) 이야기는 남쪽의 경로로 받아들인 인도 하누만(Hanuman) 전승과 겹쳐 특별한 흥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유기연전>(西遊記演傳) 같은 전면 개작, <불파관음전>(佛婆觀音傳) 같은 부분 개작이 여럿 이루어졌다. 개작본을 68조의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연극 공연에서 즐겨 이용하기도 했다. 

사대기서 가운데 또 하나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한국에서 가장 좋아했다. 국가의 운명을 유학의 가치관에 입각해 다룬 내용이 한국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덕(德)ㆍ지(智)ㆍ용(勇)의 관계 논란에 참여해 식견을 향상하는 데 아주 적합한 작품이기도 해서 더욱 선호했다. 

다른 셋은 떠나보내고, 중국의 독자는 사대기서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금병매>>(金甁梅)를 특히 애독하면서, 남녀의 색정 관계를 은밀하게 즐겼다. 그러다가 늦게 나타나 사대기서에 들어가지 못한 <홍루몽>(紅樓夢)에 관심이 온통 쏠렸다.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이 부귀를 누리다가 나약하게 된 모습을 <홍루몽>에서 보고 즐겼다. 

색정의 화신인 여인과는 정반대가 되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몸에 병이 있는 창백한 미인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선진이 활력을 잃고 후진으로 주저앉는 변화를 말해준다. 작품에 나타난 사회경제사적 변화에 대한 연구인 홍학(紅學)의 유행이, 작품의 가치를 입증한다고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착각한다. 

동시대의 한국은 밑에서 올라오는 활력으로 선진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삼국지연의>를 거듭 번역하고, <관운장실기>(關雲長實記), <공명선생실기>(孔明先生實記) 등으로 주요인물 위주의 단일체로 개작하기만 하지 않고, 내용을 온통 뒤집기도 했다. 적벽대전(赤壁大戰) 대목을 판소리로 개작한 <적벽가>(赤壁歌)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원작과 개작을 원문을 들어 비교해보자.

신하들이 “願得早奏凱歌 我等終身皆賴丞相福蔭”(원컨대 개선가를 일찍 울려, 저희들 모두 평생 승상 덕분에 복을 받고 도움을 누리기를 바라나이다)이라고 하니, “操大喜 命左右行酒”(조조가 아주 기뻐, 좌우에 명해 술을 가져오라)하라고 했다. 군사들에게도 술을 주고 즐기라고 한 말은 없는데 <적벽가>에서 보태 넣고, 원통하게 잡혀 싸움터까지 끌려온 것이 서럽다는 신세타령을 늘어놓았다. 

“여봐라 군사들아, 니 내 설움을 들어라“, ”너희 내 설움을 들어봐라”라고 하면서 여러 말을 한다. “부디 이 자식을 잘 길러 나의 후사를 전해주오.” “생이별 하직허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나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던 자식을 품안에 안고 ‘아가 응아’ 어루어 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험준한 숲속으로 도망가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있다. “於馬上仰面大笑不止”(말에서 고개를 들고 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 웃는가 물으니, 그런 곳에 매복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웃는다고 했다. 말을 마치기 전에 무서운 적장이 나타나 “驚得曹操幾乎墜馬”(놀라서 조조가 말에서 떨어졌다.) <적벽가>에서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말을 거푸 했다.

조조가 겁 짐에 말을 거꾸로 잡어타고, “아이고 여봐라 정욱아, 어찌 이 놈 의 말이 오늘은 퇴불여전(退不如前)허여 적벽강으로만 그저 뿌두둥뿌두둥 들어가니 이것이 웬일이냐?”.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이 말을 거꾸로 탔소.” “언제 옳게 타겄 느냐? 말 목아지만 쑥 빼다가 얼른 돌려 뒤에다 꽂아라. 나 죽겄다. 어서가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조조가 목을 늘여 사면을 살펴보니, 그 새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이 원조 (寃鳥)라는 새가 되어 모도 조승상을 원망을 허며 우는디. 고향 이별이 몇 해런고? 귀촉도(歸蜀道)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 슬피 우는 저 초혼조(招魂鳥). 여산군량(如 山軍糧)이 소진(消盡)헌디, 촌비노략(村匪擄掠)이 한 때로구나. 소텡소텡 저 흉년새. 백만군사를 자랑터니, 금일 패군이 어인 일고? 입 삣죽 입 삣죽 저 삣죽새.

“귀촉도(歸蜀道)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고 슬피 우는 새의 오랜 전설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촌비노략”(村匪擄掠)이라는 말은 “촌사람들을 잡고 터는 도적”이라는 말이다. 산과 같이 많은 군량 다 불태우고 그 지경이 되었으니, 전쟁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 만하다고 했다.

<삼국지>는 영웅소설이다. 불의의 영웅을 정의의 영웅이 물리치는 싸움을 핍진하게 그렸다. 차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적벽가>는 풍자를 일삼은 판소리이다. 영웅을 싸워서 물리치지 않고 웃음거리로 만들어, 허망한 내막을 폭로했다. 차등을 뒤엎고 대등을 이룩해야 한다고 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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