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합원의 편지: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악의 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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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합원의 편지: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악의 편이 되었다
  • 전국교수노동조합
  • 승인 2022.11.0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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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인 일들은 그냥 지나치는 편이다. 비록 한동안은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편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이라는 조직의 불편함과 부당함도 대충 넘어가기를 원했다. 이번에도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해주겠지 또는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직장의 속성이 이익추구라 하던데, 눈감고 지내면 되는 일. 적당한 이익이라도 보장되면 그냥 넘어가려 했다. 

비리를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것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때로는 두려움이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때로는 같은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한 동지들과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굳이 이렇게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고 개인적인 다른 일을 더 하고 싶을 때도 많다. 이 과정이 언제 끝날지,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이겨낼 수 있을지 등등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게 천성적으로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참는 게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 또는 여러 인생사 중 이번에는 내가 희생타가 되어야 하는 순번임을 수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면 그동안 인생 선배들의 희생의 결과들을 누려왔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안타까운 것은 긴 시간 남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눈감아 온 대학의 비리와 불평등은 이제 대학이라는 조직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리의 범위가 더 커지고 지방 사립대학의 재정은 고갈상태에 이르고 있다. 나만 큰 손해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다 보니 소속 조직이 마비되어 가고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깨어나 움직여야 한다. 천성적으로 먼저 움직여주는 사람이 나오고, 자신의 순번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 대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면서 지역과 연합하고 본조의 도움을 받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렇게 우리 지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작 깨어나 ‘행동하는 양심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 수많은 세월 우리의 몸속에 녹아있는 ‘선생’이라는 유전자는 우리를 머뭇거리게 한다. 구호도 힘들고 피켓도 낯설다. 이미 적지 않은 대학들이 과거의 위상은 고사하고 존립 자체가 도전받고 있음에도 현재를 사는 우리 교수사회는 행동이 최선이 아니라며 불편부당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나를 대신해서 나서주길 바라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이런 대학의 ‘선생’들에게 속 시원히 외치고 행동할 안전 지지대가 필요하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산별노조 조직으로 지회마다 실컷 싸우고 돌아와도 본조에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향후 더 많은 지회가 설립되고 이점이 더 부각되어 진정한 연대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마음껏 투쟁하고 행동하는 정의로운 조직으로 발전되기를 희망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재해예방 시스템 부재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수많은 우리의 학생과 자녀들이 희생되었다. 어디 재해뿐이랴, 다음은 어느 부문에서 터질지 모른다. 그것이 경제가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경제나 교육은 이미 그 지경을 넘어섰을 수도 있으나 이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참담한 마음을 추슬러 선생으로서의 양심을 돌아보고 외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진정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면 역으로 지금은 우리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이다. 

최근 김포의 한 건물에 게시된 현수막은 내가 아는 한, 매우 용감한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태원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담아 현 정부에 격한 일갈을 가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이름으로, 그것도 날 선 이 시국에 그토록 통렬한 비판을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우리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으로 악의 편’이 되고 말았다. 개인적인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구는 우리를 쉽게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악의 편’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는 더 ‘악의 편’이 되지 말자. 행동을 미루고 고민하다가 마음속 울분만 가득한 ‘악의 편’이 되지는 말자.

 

2022년  11월  8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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