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중심적 시각을 탈피한 한니발 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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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심적 시각을 탈피한 한니발 전쟁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08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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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니발: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 필립 프리먼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88쪽

 

2천여 년 전,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 심장부를 겨누고, 로마의 운명을 손아귀에 틀어쥘 뻔했던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 로마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한니발의 알프스 횡단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추켜세우는 역사가들을 비판했으며, 리비우스는 한니발이 잔혹한 야만인에 탐욕스러운 인물이라며 폄하했다. 칸나이 전투의 대승 이후 로마로 진격하지 않은 그의 선택이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의 부하 마하르발이 로마 진격을 반대한 한니발에 대해 “싸워 이기는 법은 알지만, 승리를 활용할 줄은 모른다”고 탄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온당한 평가인가? 저자 필립 프리먼은 로마 역사가들의 폄하와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을 길어올려 로마를 상대로 한 한니발의 투쟁을 재현했다. 그가 도박과도 같은 알프스 횡단을 감행해야 했던 국내외적 상황, 칸나이 전투 이후 로마로 진격할 수 없었던 혹은 하지 않은 필연적 이유, 휘하 병사들과 고통을 같이 나눈 헌신적이고 인간적인 면모 등을 유려하게 펼쳐낸다.

책은 한니발이 유년 시절에 카르타고 사원의 모든 신 앞에서 로마에 대한 영원한 증오를 맹세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 군대에 의해 학살당하고 짓밟힌 조국의 비극을 똑똑히 목격했던 열 살 소년 한니발은 복수를 다짐하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스페인으로 떠난다. 이후 34년 만에 조국 카르타고로 돌아와 스키피오와 최후의 전투를 치르기까지 그의 생애는 전쟁사에서 손꼽을 만한 전설로 남았다.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거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2차 포에니 전쟁에서도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때 로마는 카르타고에 한니발이라는 천재 전략가가 있음을 간과했다. 한니발은 당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변수와도 같았다. 로마인들은 한니발이 우뚝 솟은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심장부를 저격하는 과감한 정복전을 펼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적의 영토 깊숙이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 한니발은 티키누스강, 트레비아강, 트라시메네 호수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칸나이에서 5만 명 이상의 로마인들을 몰살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로마인들은 성문 앞에 다가온 야만인의 공포에 치를 떨었다. 한니발은 로마와 동맹을 은 이탈리아 도시들을 포섭하여 로마를 포위 공격하고자 했지만, 로마 연합의 고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15년간 본국의 지원 없이 이탈리아에서 고독한 전투를 벌이던 한니발은 결국 스키피오와의 전투를 치르기 위해 카르타고로 돌아가야 했고, 2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한니발은 패장이었지만 후대 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전쟁 지휘관으로서 한니발에 견줄 만한 역사적 인물은 몇 없으며, 그의 전략과 전술의 천재성은 오랜 세월 높이 평가되어왔다. 군사지도자로서 그는 휘하 병사들의 마음을 잘 알았고, 적의 보이지 않는 약점을 간파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프리먼은 로마 역사가들의 서술 이면에 감춰진 노련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며 헌신적인 애국자였던 한니발의 인간적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니발의 생애와 포에니 전쟁을 다룬 고대의 대표적 역사서로는 폴리비오스의 『역사』와 리비우스의 『로마사』가 있다. 그렇지만 두 역사가의 저서는 승자인 로마의 시각에서 본 한니발 전쟁사다. 프리먼의 이 책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폴리비오스도 리비우스도 아닌 제3의 객관적 관점에서 한니발의 생애를 기술하고자 했다. 기울어진 전쟁 서사에서 균형추를 바로잡기 위해 가능하면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한니발 전쟁의 전모를 밝힌다.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에서 거둔 압승 이후 왜 로마로 진군하지 않았는가는 2천 년 넘게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든다. 먼저, 로마를 둘러싼 튼튼한 성벽을 공격하는 공성전은 훨씬 많은 병력과 물자가 필요한 소모적인 싸움이 될 것이 뻔했고, 한니발로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근본적으로 한니발은 로마 점령이 불필요하다고 믿었다. 고대의 전통적인 규칙에 따른다면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연전에서 수만 명의 장병을 잃은 뒤 항복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로마는 모두가 지키는 규칙을 따라가지 않았고, 절대 포기하지도 항복하지도 않았다. 한니발의 패착이라면 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본국의 증원군 없이 자력으로만 로마 군단을 상대로 버텨야 했다. 이 사실을 간파한 로마의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장기적인 소모전을 펼쳐서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는 지연작전을 펼쳤는데, 결과적으로 전쟁 중반기에 로마에 아주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었다. 그 후 젊은 장군 스키피오가 아예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본거지를 침공하여 한니발의 군대를 이탈리아에서 북아프리카로 철수시키겠다고 제안하자, 로마 공화국은 스키피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카르타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로마는 국가의 상황에 따라 지연 작전이 필요한 때에는 파비우스를, 그리고 과감한 침공 작전이 필요한 때에는 스키피오를 내세우며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저자는 한니발과 로마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를 객관적 상황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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