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정신현상학’, 최신 표준 연구에 충실한 새 번역으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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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 최신 표준 연구에 충실한 새 번역으로 탄생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1.07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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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 헤겔의 대표작이자 서양 철학의 최고 문제작
- 시대가 요청하는 원본성에 충실하고 안정감 있는 번역
- 판본 상이한 번역 고증, 번역어도 원점에서 재검토

■ 책을 말하다_ 『정신현상학 1 & 2』 (G. W. F. 헤겔 지음 | 김준수 옮김 | 아카넷 | 각 444쪽, 420쪽 | 2022.09)

 

『정신현상학』은 청년기 헤겔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자들도 헤겔의 전체 저작들 가운데 으뜸가는 주저로 내세운다. 이 책은 독일 관념론의 당당한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저서의 출판을 통해서 헤겔은 피히테나 쉘링을 넘어서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나아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서양 철학의 긴 역사에서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으면서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과 함께 사상적 성취물의 최고 반열에 올라 있다. 

『정신현상학』은 19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완역된 이래로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대적 상황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문적 담론이 축적되어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번역서가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헤겔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는 새로운 번역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왔다. 옮긴이 김준수 교수(부산대)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번역을 위해 기존의 번역어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했으며 판본을 달리하는 기존 번역의 대본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구절이나 문장을 주석에서 일일이 점검했다.

『정신현상학』 원문의 복잡함과 난삽함 그리고 구조의 애매함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더욱이 시간에 쫓기며 집필이 이루어지고 출판 과정에서 제목과 차례가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이 겹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한국어판은 원 저작의 형식과 구조를 때로는 그것이 불완전한 경우에도 반영하였는데, 이는 “헤겔 역시 독자의 사유를 뒤흔들고 일깨우기 위해서 구문의 난해함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역은 헤겔 철학의 해석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데, 곧 행위자 관점의 내재적 시각에서 텍스트를 번역함으로써 절대적 정신의 구성 과정을 부각하는 데에 역점을 둔 것이다. 

이 한국어판은 『정신현상학』의 원본성을 충실히 구현하여 헤겔 연구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펠릭스 마이너판(1980)을 저본으로 삼아 기존 번역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도했다. 펠릭스 마이너판은 헤겔 자신에 의해 출간된 유일한 판본(1807년판)을 원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헤겔 사후의 편집본(1832년판)으로 출간된 기존 번역서들과 차이를 보인다. 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출간되고 있는 새로운 비판본 전집은 최신 연구 동향의 표준이 되고 있으며 영미권에서도 핀카드(Pincard)판이 이 비판본에 기초하여 새롭게 출간됐다.

헤겔(Hegel, Georg Wilhelm Friedrich: 1770~1831). 위키미디어 코먼스

『정신현상학』은 청년기 헤겔의 주저일 뿐만 아니라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최대의 문제작이다. 이 책에서 헤겔은 의식이론과 역사철학, 변증법 논리, 자연철학, 철학사, 정치경제학, 시민사회론, 국가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철학적 반성, 윤리학, 종교철학 등을 집약하여 개별적 의식의 경험 과정을 통한 총체적 정신의 발전과 완성의 운동을 서술한다. 자신이 출판한 이 최초의 단행본을 통해 헤겔은 피히테와 쉘링을 넘어서서 독일 관념론을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다.

그뿐 아니라 『정신현상학』은 정신사적 관점에서도 전통 형이상학은 물론 근대 철학이 여전히 고수하던 실체 철학에서 탈피하여 주체의 철학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룬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저서는 난삽하고 한없이 길고 불친절한 문체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과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도 늘 자기 참조적으로 회귀하는 복잡한 논변 구조로 악명이 높은가 하면, 체계의 엄밀성과 논변의 치밀성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내용의 풍요로움과 심오함으로 철학만이 아니라 문학, 심리학, 역사학, 정치학, 예술학, 종교학 등 수많은 학문과 예술의 영역에서 지금까지도 풍부한 영감과 화두를 제공해 주는 보고(寶庫)로 칭송받고 있다. ‘전도된 세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불행한 의식’, ‘도덕과 절대악’, ‘안티고네의 비극’, ‘계몽과 소외’, ‘프랑스 혁명에서의 자유와 공포’, ‘종교와 화해’ 등 『정신현상학』에서 다루어지는 수많은 주제들은 철학 담론뿐 아니라 예술 영역에서도 여전히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튀빙겐 대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본격적인 학문 활동을 모색하던 헤겔은 1800년 11월 초에 절친한 대학 동기이자 이미 예나 대학교에 교수로 자리를 잡고서 신성(新星) 철학자로서 일약 명성을 얻고 있는 쉘링에게 자신의 학문 구상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여기서 헤겔은 자신이 인간의 하위 욕구에서 출발하여 반성 형식을 통해 학문 체계로 전개된 후에 인간의 구체적인 삶으로 되돌아가 관여하는 학적 구조물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후 예나 대학교의 강사로 공식적인 학문 활동을 시작하는 예나 시기 헤겔의 저작들은 모두 바로 이 구상을 실현하려는 시도이다. 1802~03년의 『인륜성의 체계』, 1803~04년의 『체계 기획 I』, 1804~05년의 『체계 기획 II』, 1805~06년의 『체계 기획 III』이 모두 이런 시도의 잔여물이다. 그러나 이 기획들은 초고 형태로만 남고 헤겔 생전에 완성된 저서로 출간되지는 못한다. 원고 자체가 강의용 초고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 시기에 헤겔의 근본 사상과 체계 구상 및 학문 방법론이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점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예나 초기 쉘링과 더불어 스피노자의 실체 철학에 경도되어 있든 헤겔은 예나 중기부터 피히테의 의식 철학을 적극적으로 재수용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신 철학과 그 방법론인 변증법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1800년에 밝힌 구상은 여러 차례의 시도와 시행착오와 재출발 끝에 마침내 1807년의 『정신현상학』으로 그 결실을 보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통해서 훨씬 더 원대한 철학 체계의 완성을 위한 대장정의 첫 기착지에 도달하여 탄탄한 베이스캠프를 구출하게 된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집필하고 출판한 시기는 혁명과 전쟁 그리고 그로 인한 극심한 혼란과 참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역사적 변혁기였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부분 원고를 예나 전투의 혼란 속에서 분실할 것을 염려하여 품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뒤늦게야 출판사에 보낼 수 있었다. 『정신현상학』의 탄생을 둘러싼 환경의 열악함은 이런 정치적 혼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헤겔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정신현상학』은 이렇게 지극히 불안하고 곤궁한 상황 속에서 탄생했으며,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더라도 이 저서의 집필은 매우 다급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현상학』의 구조와 문장이 혼란스럽고 편집 상태가 매끄럽지 못한 이유의 일부를 이런 발생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태어난 각고의 산물은 고전 명저로 영원히 남게 된다.

1807년에 『정신현상학』 초판이 출간된 직후부터 이미 헤겔은 개정된 제2판을 계획했다. 초판의 형식과 내용과 구문 모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의 실행은 무려 24년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1829년에 초판이 절판되고 나서 헤겔은 제2판의 필요성을 다시 절감했고, 1831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수정 작업에 착수했다. 수정은 결국 「서문」의 앞부분까지만 진행될 수 있었는데, 이는 헤겔이 사망하기 전에 수행한 마지막 저작 활동이었다. 1831년 10월에 그는 베를린에 소재한 둔커 운트 훔블로트(Duncker & Humblot) 출판사에서 『정신현상학』의 개정 제2판을 출판하기로 결정하고서 출판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1831년 11월 14일 헤겔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더 이상 개정 작업이 진행될 수 없었고 제2판의 출간도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서문」의 맨 마지막 구절이자 『정신현상학』을 집필하면서 가장 나중에 쓴 문구에서 헤겔은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남기는데, 옮긴이 김준수 교수 역시 독자들에게 똑같은 부탁의 말을 남긴다.

“정신의 보편성이 자신의 범위 전체와 충분히 계발된 풍요로움을 견지하고 또 이를 요구하는 시대에는 정신의 작업 전체에서 개인의 활동이 담당하는 몫이 그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학문의 본성이 이런 결과를 수반하듯이 개인은 더욱더 자신을 망각해야 하며, 설사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또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개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고 또 자신을 위해 요구해서도 안 되듯이 또한 개인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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