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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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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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생명현상과 연기 그리고 공 | 유선경·홍창성 지음 | 운주사 | 336쪽
 

생물학을 창시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천 년 동안 서구에서는 고정불변한 자성自性의 존재를 주장하는 본질주의를 바탕으로 생명현상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연기하기 때문에 무상無常하여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생명 세계를, 불변하는 본질(自性)의 존재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생명과학은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20세기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관에 직면해 왔다. 그것은 다분히 서구의 본질주의라는 철학적 토대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해 이 책은 불교의 연기법과 공의 관점으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재해석함으로서 이런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본질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존재하는 어느 것도 아무 원인과 조건 없이 무無로부터 나온 것은 없다. 사물은 조건이 모이고 흩어지는 데 따라 생겨나고 소멸한다. 즉 사물은 조건에 의존해서(緣) 생겨난다(起).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이다. 필자들은, 연기와 공의 관점이 단순히 기존 방법론과 양립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연기와 공의 관점으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해야만 제대로 된 생명과학 연구가 가능하고, 따라서 생명현상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이 책은 존재 세계를 꿰뚫는 연기법과 그것의 대승불교적 해석인 공의 관점으로 서구적 본질주의와 실재론이 직면한 난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생명과학과 불교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크게 여섯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첫 주제인 ‘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에서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연기, 무상, 공, 깨달음, 그리고 자비의 가르침을 설명하면서 이 가르침들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를 논의하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연기법과 그로부터 도출된 불교의 가르침이 존재 세계를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일부인 생명현상도 꿰뚫는 가르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주제인 ‘생명과학과 깨달음’에서는 과학이론의 교체가 마치 정치체제의 근본적 교체와 같이 혁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생명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서구적인 본질주의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연기와 공의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 주제인 ‘개체’에서는 생로병사의 실존적 문제를 생명과학 안에서 구체적인 예를 통해 논의한다. 생로병사라는 현상을 생명과학적으로 고찰하다 보면 결국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관조해 보면, 생로병사가 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계의 변화 과정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불교적 생명과학이 주는 통찰로도 우리가 생사生死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넷째 주제는 ‘종種’이다. 여기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소개하면서 생명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어져 온 고유한 본질을 가졌다는 종의 존재에 대해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다윈 스스로도 종에 대한 본질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명과학자들이 보고해 온 종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종과 관련한 생명현상도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해해야만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섯째 주제인 ‘유전자’에서는 먼저 유전자 개념이 역사상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분자생명과학이 전제하는 DNA 분자로서의 유전자 개념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논의한다. DNA 분자들이 생명현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에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현재의 유전자 중심 결정론은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수정 보완되거나 새로운 이론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섯째 주제는 ‘진화’로서, 먼저 진화란 향상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라는 다윈의 주장을 설명하면서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불식시킨다. 그리고 진화와 관련된 섬세하고 진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다윈이 해결하지 않고 과제로 남겨 놓은 두 가지의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불교가 지난 2,500년 동안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보여주면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이 책은 본질주의라는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자성을 가진 인과법칙의 존재를 전제한 채 발전해 오면서 난관에 부딪힌 서구의 과학, 특히 생명과학의 문제에 대해, 불교의 연기와 공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형이상학으로 이런 문제들을 조명하고 새로운 해결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은 생명현상에 대한 불교철학적 연구를 통해 생명과학과 불교철학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시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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