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애도 기간 동안의 문화예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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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애도 기간 동안의 문화예술 공연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11.0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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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지난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너무나 큰 참사가 일어났다. 유족과 지인들의 슬픔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겠고, 희생자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사람들 또한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큰 충격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정부에서도 참사 다음 날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애도를 명목으로 수많은 문화예술 공연들이 취소되었다.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 활동하는 필자의 지인들도 얼마 전 ‘희망’과 ‘나눔’을 주제로 한 음악회를 열 계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공연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참사가 일어나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취소했다고 한다. 애당초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자리였던 만큼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남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주제로 연주회를 개최할 수도 있었지만, 이 시기에 어떤 주제로든 공연을 하는 것 자체를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취소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이야기를 공연 관계자에게서 전해 들었다.

하지만 국가 애도 기간이라고 해서 이와 같이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는 것만이 과연 답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1주일에 걸친 애도 기간 중에도 전국의 모든 공연이 취소된 것은 아니어서 필자 또한 안타까운 마음을 안은 채로 이미 가기로 계획해 두었던 연주회에 다녀왔다. 하나는 10월 30일에 열린 2022 서울국제음악제 폐막 연주회였고, 다른 하나는 11월 4일에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었다. 서울국제음악제는 애당초 주제부터가 ‘우리와 지금의 시대를 위한 기도, 음악으로 전하는 위로’였고, 폐막 연주회에서 연주된 곡들 또한 미얀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에게 헌정한 류재준의 현악 사중주 협주곡과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전쟁이 멈추기를 기도하는 뜻을 담은 펜데레츠키의 <카디시(기도)> 등 이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들이었다. 이날은 10.29 참사 바로 다음 날이었던 까닭에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이 음악제 전체를 기획하고 감독한 류재준 예술감독이 무대에 나와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관객과 연주자들이 함께 묵념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11월 4일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는 연주자들이 본래 연주하기로 한 브람스와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곡들에 앞서 바흐의 <지(G) 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면서 ‘10.29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음악’이라고 밝히고, 연주 후에 서울국제음악제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묵념을 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권력자를 규탄하는 방식은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다를 수 있어도, 아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연주회를 준비해 온 음악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애도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해야 했던 나라 안팎의 연주자들은 이처럼 큰 아픔을 겪은 우리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음악을 통해, 예술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전하고자 했다. 음악이 위안과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애도 기간 동안 진행된 연주회들을 통해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어떤 주제로든 공연을 하는 것 자체를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다녀온 연주회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애도’와 ‘공연’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애도를 이유로 공연 예술 활동에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그들이 애당초 예술의 가치와 의의를 유희나 여흥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단순히 유희나 여흥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였다면 애도 기간에는 자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했겠지만, 문화예술 활동 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애도와 추모의 의미 또한 더욱 깊이 되새길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0.29 참사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을 애도하며 유가족들께 부족한 말로나마 위로를 드린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치신 분들도 어서 치유되시기를 기원한다. 이 슬프고 아프고 안타까운 시기에 여러 예술가들의 온 정성을 다한 활동이 많은 분들께 작은 위안이나마 될 수 있었기를 바란다. 예술 작품을 통해 위로를 전하고자 했던 이들도, 여러 날 동안 공들여 준비한 공연을 급작스럽게 취소해야만 했던 이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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