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없는 융합, 지속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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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없는 융합, 지속가능한가?
  • 조헌국 단국대학교·물리교육
  • 승인 2022.11.0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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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21세기 대학에 불고 있는 바람 중 하나는 융합이다. 과학기술 내 세부 분야 간 융합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각광을 받으면서 인문, 경영, 예술 등 과학기술 외의 전통 분야에까지 결합이 확산되어 있다. 이로 인해 대학에서는 새로운 융합학과들이 빠르게 신설되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융합공학 분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변화는 전통적인 학문에 대한 수요를 잠식한다는 우려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던져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점점 심화되어 실제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계열 전공의 폐지와 정원 축소를 단행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통적인 기초과학 분야로 여겨지는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전공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있어 응용과 융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초분야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사회적 흐름과 분위기에 따라서 적응할 수 있도록 기초 학문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대학이 지나치게 취업과 경제적 논리에 잠식되어 지적 탐구에 대한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한편, 모든 학문의 가치를 본질적인 관점에서 통합해 해석하려는 입장도 존재한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의미 있고 타당한지 논의하기 위해서는 융합이 가진 의미를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융합은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주제는 아니며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개념이자 철학이다. 그리스 철학의 대부였던 플라톤(Plato)은 근원적이고 본질적 세계인 이데아(Idea)와 감각적이고 불완전한,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계의 둘로 나눠진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이데아로부터 모방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된 다양한 현상과 지식의 모습들은 근원적인 측면에서 통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과학, 수학, 음악, 건축 등 다양한 학문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학문들은 모두 아름다움이라는 덕(virtue)을 추구하며, 하나의 원리와 가치로 결국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근대 유럽의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미쳤고 당시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과학과 예술의 연결을 통해 창의적인 발견과 창작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후 산업혁명과 현대 과학의 발전을 통해 20세기 무렵부터 점점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학문과 지식, 산업은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갈라져서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방향을 전환해 다시 여러 종류의 분야들을 서로 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식을 고안하는 것들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전의 융합과 다른 점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보편적이고 단일한 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생명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바이오아트, 수학과 생물학, 컴퓨터 과학 등이 결합하여 탄생되는 인공지능, 그리고 관련된 영역들이다. 전통적인 학문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이전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수많은 융합 분야들은 모체가 되는 학문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나름의 지위와 가치를 획득하려 노력하고 있다. 즉, 과거의 융합은 여러 다른 모습을 한 여러 종류의 꽃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융합은 여러 종류의 꽃을 교배해 새로운 꽃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기초 없이 끝없는 융합과 창조, 생성은 가능한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지만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가 강했던 대부분의 제조업(조선, 철강, 화학 등)들은 이미 중국과 경쟁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으며, 첨단 반도체 및 인공지능 등의 기술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주요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메모리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나라도 미국의 램 리서치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네덜란드의 ASML의 장비 없이는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으며, ARM과 인텔, 퀄컴의 승인 없이는 컴퓨터와 휴대폰의 판매도 불가능하다. 

실제 대학의 경쟁력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2022년 QS 세계 대학 랭킹을 살펴보면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서울대학교 29위, KAIST 47위, 고려대학교 90위, POSTECH 96위에 불과하다. 도쿄대학교(10위), 난양공과대학교(13위), 북경대학교(21위) 등 아시아 주요 대학에 비해서도 낮다. 국내외 많은 특허와 우수한 연구를 쏟아내고 있지만 세계를 뒤흔드는 원천적인 기술과 연구는 여전히 영미권의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아니더라도 경제나 심리, 정치, 철학, 예술 역시 새로운 사상적 발견과 논의 역시 우리는 아직 미국과 유럽의 사조를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산업에서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놀라운 성과들을 이뤄내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지속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작가나 감독, 어떤 예술가들이 주목받지만 그것은 뛰어난 한 개인의 능력과 헌신에 의한 것이지 수많은 천재와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 되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최근 수학계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주목받으면서 그가 한국의 입시 위주 수학교육과 경쟁이 치열한 영재교육에서 낙오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에 대한 여러 탄식과 자성의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분야의 창출과 선도를 위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결합을 통해 창의성을 갖는 것은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과 이해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과 연구소들이 달려들고 있는 인공지능만 하더라도 기초 분야의 지식과 이해로부터 이뤄진 성과들이 매우 많다. 딥러닝의 기본이 되는 퍼셉트론과 인공신경망은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과 대뇌에서의 다층적 네트워크의 연결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들이며, 오늘날 이미지 추출이나 분석 등에 주로 쓰이는 컨볼루션 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 역시 시각적 지각과 인식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각피질의 구조와 현상을 탐구하면서 나타난 것들이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 Text-to-Image 등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확산 모델(Diffusion Model) 역시 비평형 열역학(Non-equilibrium Thermodynamics)이 적용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 외에도 인공지능의 연산과 모델에서 쓰이는 수많은 개념과 원리들은 수학과 물리학, 생명과학, 언어학 등 수많은 학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도입된 것들이다.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조차도 과연 인간의 지능, 학습, 의식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이고도 본질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즉,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러한 관심으로부터 새로운 현상과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새로운 생성과 융합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미래의 먹거리 창출과 미래의 지식과 학문 분야 선도를 위해 수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정부와 민간단체에서 인력 양성 차원에서 많은 돈을 투자해 인공지능 및 이와 관련된 융합대학원을 만들고 있지만 과연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학문적 통찰력을 갖추도록 하는지, 아니면 단지 최근에 유행하는 기술과 능력을 위주로 교육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가 생겨나고 소멸되는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생존하려면 수많은 종류의 과업을 배워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개를 배우더라도 그 속에서 본질적인 능력을 습득해 적은 경험으로도 빠르게 성숙할 수 있는 일종의 메타러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과 본질에 대한 이해는 기초적인 학문에 대한 이해 없이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다.

신생 학문과 분야에 대한 투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 학문 영역에서의 발전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며, 기초와 응용의 조화와 균형이 이뤄져야 계속적인 생산과 창조가 가능하다. 결국 현재 아무리 새로운 상황과 환경 속에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자연 현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찰스 스노우가 <두 문화>를 통해서 지적한 것처럼 과학기술과 인문학은 함께 걸어가야 하며, 인간의 이해는 결국 인지와 정서의 결합을 통해 이뤄진다. 융합 이전에 융합을 위해 필요한 기초 능력과 지식 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높고 화려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터 닦기이며, 깊이 뿌리박지 않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넘어지고 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헌국 단국대학교·물리교육

단국대학교 AI융합교육전공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물리학회 교육 실무이사와 평의원, 한국과학교육학회 및 학습자중심교과교육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 제4차 과학영재 발굴·육성 종합계획, 2022 개정 과학과 교육과정 개발 등 국가 주요 계획과 과제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한 뒤, 물리학을 중심으로 역사와 철학, 예술 등을 엮은 새로운 해석과 통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학습을 재평가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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