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식의 파편화 - 동아시아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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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식의 파편화 - 동아시아 시각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11.0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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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빈 칼럼]

근래 동아시아에서 중국인식이 최악을 달리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싶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우리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파편화 되어 있으며 각자의 위치와 취향에 따라 유동적이고 다면적이다. 중국인식은 감정만 앞세운 파편화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하나로 관통하는 대일통의 평가 기준은 없다.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중국관은 없다. 생물학적으로 중국의 DNA를 추적하는 게 아니라면, 추상적인 ‘중국인식’은 유동한다. 이렇게 유동적이고 다양한 중국관이 생성되는 출처를 상세히 추적해보자.

우선, 중국에 대해 말할 때, 고전시대의 고전중국인가 아니면 근현대중국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고전시대의 중국을 고전지식을 활용하여 평가하는 인문주의적 비평은 가장 역사가 길다. 여기서 ‘고전시대’의 함의는 ‘유교 경전적 사고체계’가 주도하던 시대이다. 즉, 정치경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도덕주의’로 접근한다. 대체로 공자와 맹자 이래 3-1운동, 5-4운동, 메이지유신까지이며, 이후 동아시아는 탈고전의 서구 근대적 사고체계의 시대로 접어든다. 동아시아에서 고전시대는 의식과 사조의 변화가 느렸으며 시간도 천천히 흘렀다. 근현대는 오늘날까지 정치경제, 사회의 변화가 빠르고 그만큼 의식과 사조도 빨리 변하였다. 

고전시대의 중국인식은 단순명료하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제자백가의 위대한 나라이다. 즉, 우리의 소싯적 제삿집 어른들은 공자의 위대함, 손자병법, 삼국지, 이태백과 두보의 고전 작품으로 중국을 경외의 감정으로 평가해 왔다. 물론 비단, 도자기, 서화 등 고전시대의 유물을 감상하는 정서로 비평하는 이들도 있다. 

둘째, 그러나, 고전중국의 인식에서도 한족 왕조인 진한당송명대의 중국을 존숭하면서 이민족인 원청대의 중국을 폄하하고 문화적 암흑기로 평하기도 한다. 중국이라면 ‘짱꼴라 혹은 오랑캐’라고 하면서 혐오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선진국인 미국과 적대국이라는 현실, 북한 편에 서서 한반도통일을 방해하는 ‘죽의 장막’의 공산국가라는 이미지와 융합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 중국의 억압적인 후진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탈고전시대인 근현대 중국에서 등장한 손문의 삼민주의를 높게 평가하면서 후계자인 장개석의 대만 천도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도 이러한 인식에는 백범과 상해임시정부를 도와준 장개석의 우정을 되새기며 중국을 큰형님 정도로 생각하고, 동시에 공산화한 중국을 ‘중공’이라고 천시하는 냉전적 사고를 내재화한다.

넷째, 근현대의 중국인식으로 모택동 시대의 중국통일을 위대한 업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들은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장구한 역사를 경외의 눈으로 보는 고전과 근현대를 분리하지 않는 모호한 복합적인 경향을 대표한다.

다섯째, 동양 고전사상의 인도주의와 민본주의를 존숭하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한 후진적 공산체제라는 적대감에서 보는 이들도 있다. 특히, 모택동 사상과 문화대혁명이 일으킨 홍위병의 광신적인 문화재 파괴와 집단주의적 폭력은 위대한 고전문화를 파괴한 자해행위였다는 논리로 비판하는 시각이다. 물론, 중국 지식인 중에는 ‘유토피아적 평등주의’ 열정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 지식인들에 국한된다.

여섯째, 문화대혁명 시대를 청산한 등소평 개혁의 밝은 이미지를 중국인식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개혁 이후 중국의 개방과 고속 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이다. 등소평의 실용주의를 나타내는 ‘흑묘백묘론’에 감탄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곱째, 국제정치적 시각으로서 등소평 이후 나날이 발전하는 국가주도의 자본주의경제, 시진핑 일인 독재의 ‘중국몽’을 ‘제국몽’과 연결하여 막연하게 미래의 대국주의 지향을 감지하면서 미-중 대결의 결과를 이리저리 예견하려는 이들도 있다. 

상기에서 제시한 중국인식의 근거들을 종합하면, 고전시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중국인식은 파편화되어 하나의 총체적인 정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을 인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로써 다음을 제안한다. 

우선, 중국인식을 고전과 근현대로 나누어, 고전시대 중국의 고전문화에 대한 경외감으로 근현대 중국을 동일시하여 바라보는 ‘시간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양도 기독교 중세와 근현대는 확연히 후진과 선진이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탈고전시대 근현대 중국문화는 동아시아에서 상대적 후진성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현대 중국을 좌우이념 대립의 관점에서 혐오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편협하다. 이념적 시각 밖의 중국을 놓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가쓰라-태프트 조약으로 한반도를 일본에 식민지로 넘겨버린 미국은 악마이고, 한국전쟁기에 남한을 도와준 미국은 천사라는 양극단 인식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천사와 악마 양극단의 우리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하듯, 고전중국의 경외감과 근현대 중국의 혐오감으로 양극단 인식으로 장막을 치는 것 모두 어리석은 것이다. 

다음으로 국가적 외교관계의 시각에서 보는가, 아니면 개인 경험에 대한 주관적 인식인가를 구분해야 한다. 어느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추상적인 전반적 중국인식, 아니면 유무형의 특정적인 측면에 관련한 중국인식이 생성된다. 예를 들어, 북경에서 택시요금 바가지를 썼든지, 한복과 김치 분쟁에서처럼 특정 사건만을 고려한다면 감정적인 적대 인식만 판치게 된다. 

21세기 우리가 중국(러시아)을 인식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의식을 영-미국 주도의 문화-지식패권에 종속시켜 이들이 조종하는 중국(러시아)혐오증 확산전략에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주의 전략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듯이 영-미 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도나 프랑스처럼 자신의 세계인식으로 미국-중국을 바라보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서구중심주의와 냉전시대 잔재인 친미-반중의식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개인적 상호인식은 상기 서술대로 다양하고 파편화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일관적일 수 있는 시각은 실용주의적 국익의 관점이다. 미국도 중국도 국가적 차원에서 실용주의적 국익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와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즉, 국가주의 정치경제 영역에서는 실용적 국익의 관점에서 보고, 시민사회의 문화적 관점에서는 우호적인 교류 상대이자 경쟁자로서의 미국과 중국인식이 바람직하다. 

탈국가적인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균형 잡힌 중국인식의 출발점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사회주의혁명이 자주성에 의한 탈봉건주의, 탈제국주의 혁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당시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착취당하던 중국에서 서구적 시민혁명을 수행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장개석은 상당히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어서 신중국을 원하는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중국이 뿌리 깊었던 봉건성과 서양 제국주의를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 급진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승인해야 균형 잡힌 중국인식이 가능하다. 

즉, ‘내가 보고 싶은 중국’이 아니라고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은 편파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진핑은 왜 이태백이 아니고, 푸틴은 왜 톨스토이가 아니냐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 베트남은 영원히 ‘독립’한 게 아니라 ‘공산화’로 바라보아야 한다. 

타자의 존재근거를 혐오하면서 자신은 인정해 달라는 이기적인 태도로는 정당한 상호인식을 교환하지 못한다. 동아시아 바둑판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우는데, 우습게도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희로애락을 자기화하여 중국을 쳐다보면서 같이 미워하는 게 과연 정당한 인식일까. 바둑판 위에서 미중 양국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게 자주적인 인식의 출발점이다. 21세기 동아시아의 개명된 시민-지식인이 자각해야 할 것은 동아시아에서 서양 중심주의 역사관을 성찰하는 것이며, 또한 중국 중심주의 역사와 문화공정에도 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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