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선율 속에서 과학을 읽는다
상태바
음악 선율 속에서 과학을 읽는다
  • 원준식 대전대학교·미학
  • 승인 2022.11.06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음악과 과학: 피타고라스에서 뉴턴까지』 (원준식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408쪽, 2022.09)

 

오늘날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음악과 과학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음악은 주관적 원리에 근거한 미적(감성적) 영역에 속하는 데 반해, 과학은 수학적 합리성에 입각한 객관적 탐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의 재료인 소리가 음향과학의 물리적 대상이기는 하지만, 음악 자체는 과학과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대 이후에 형성된 관념이다. 음악은 오랫동안 자연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과학의 한 분과로서 산술, 기하, 천문과 함께 4과(quadrivium)에 속해 있었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 비롯된 이런 관념은 과학혁명이 한창이던 17세기까지 지속되었고, 그 오랜 전통 속에서 음악은 자연철학의 중요한 주제였을 뿐만 아니라 근대과학의 주요 탐구영역이었다. 

이 책은 음악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고대부터 근대까지 음악과 과학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역사적 과정을 다룬다. 여기에는 하모니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과, 그 내용이 음악사와 과학사의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되는지, 특히 과학혁명의 과정에서 전통적인 이론이 어떻게 수용되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전통을 관통하는 세계관 등이 포함되는데, 이를 통해 음악과 과학의 관계에 관한 역사적 지형도를 그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음악과 과학의 관계는 기원 전 6세기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음악적 하모니는 두 가지 고유한 특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 중 하나는 그것이 수와 수적 관계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타고라스는 진동하는 현의 길이가 간단한 정수비(1:2, 2:3, 3:4)를 이룰 때 협화음정(옥타브, 5도, 4도)이 산출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음악과 과학을 연관시킨 첫 번째 사례이자 수학적으로 정식화된 최초의 자연법칙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수적 비율이 현의 길이라는 물리적 속성을 넘어 협화음정의 궁극적인 원인으로서 수 자체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즉, 협화음정의 비율을 구성하는 수들이 자연의 원리를 내포한 신성한 수로 간주되고, 그런 수들의 관계가 음악적 하모니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처럼 수-신비주의와 혼합된 과학적 발견이 서양 음악이론의 출발점을 구성했다.

                     피타고라스의 발견

하모니의 또 다른 특성은 그것이 음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보편적인 원리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즉, 하모니는 음악의 고유한 원리라기보다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이고, 음악은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소우주라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피타고라스학파는 음악에서 발견한 하모니의 원리를 천체들의 운동에 적용했다. 그들은 천구들이 회전하면서 소리를 산출하고 그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룬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천체들이 ‘조화롭게’ 운동한다는 막연한 진술을 넘어 실제적인 음악적 연관을 갖고 있었다. 즉,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7개의 행성천구들의 거리와 속력이 협화음정과 동일한 비율을 이루고, 그 결과로서 온음계의 7개 음에 상응하는 소리들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천구들의 음악(Music of the spheres)’은 천체들이 음악에서와 동일한 수적 비율을 이루면서 운동하고, 그것이 음악적 하모니의 원형이라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천체들의 운동은 음악의 하모니를 통해 파악될 수 있고, 역으로 음악적 하모니는 천체들의 ‘조화로운’ 운동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렇듯 피타고라스학파의 협화음정 체계와 ‘천구들의 음악’ 교리는 별개의 독립적인 이론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것으로서, 음악과 천문학의 공통된 전제를 구성했다.

이처럼 ‘보편적 하모니’를 통해 음악과 천문학을 연결시킨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은 이후 오랫동안 서양음악의 이론과 실천을 지배했고, 천문학의 기본 전제로서 자연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특히 음악적 하모니의 형이상학적 근거로서 ‘천구들의 음악’은 플라톤에 의해 재해석되어 다음 세대로 전해졌는데, 플라톤이 천체 하모니의 수학적 원리를 해명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면, 이후 세대는 그것이 지상의 음악과 어떻게 연관되는가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피타고라스학파에 의해 정립된 기본 원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천체운동의 요소들(거리 또는 속력)을 지상음악과 어떻게 연관시키는가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했다. 플리니우스와 켄소리노스, 니코마코스, 키케로와 마크로비우스, 프톨레마이오스, 보에티우스, 플러드 등을 통해 음악적 우주론의 다양한 모델들을 확인할 수 있다.

                플러드의 신적 모노코드

이러한 피타고라스적 전통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17세기까지 이어지지만, 음악사와 과학사의 근대적 발전 속에서 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중세 이후 다성음악의 발전은 협화음정의 피타고라스적 체계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고, 근대 과학혁명은 ‘천구들의 음악’ 교리가 전제했던 지구중심체계와 행성들의 원운동을 전복시켰다. 17세기 과학자들은 이처럼 음악사와 과학사의 새로운 지평 위에 서 있었고, 새로운 과학적 정신과 방법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이론은 이들에 의해 새로운 과학적 탐구와 결합되었고, 이는 음악사와 과학사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졌다. 

케플러는 “음악적 하모니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라는 피타고라스적 관념의 열렬한 옹호자로서, 음악사와 과학사의 새로운 지평에서 – 태양중심체계에서 행성들의 타원운동이 다성음악의 하모니에 부합되도록 - ‘천구들의 음악’을 재구성했다. 그는 그것이 행성들의 타원운동을 입증할 증거로서 자신의 천문학을 정당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행성운동의 세 번째 법칙인 하모니법칙(harmonic law)을 발견했다. 케플러가 음악적 우주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그 교리를 재구성했다면, 뉴턴은 그것에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다. 그는 ‘천구들의 음악’을 중력 법칙의 알레고리로 재해석하는 한편,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보편적 하모니’ 개념을 전제로 빛의 스펙트럼과 음계 사이의 유비를 제시했다. 이것이 - 실제로는 주황색과 남색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 빛의 스펙트럼이 – 온음계가 7개의 음으로 구성된 것처럼 - 7개 색채로 규정된 이유였다. 

케플러와 뉴턴이 형이상학적 전제를 고수하면서 음악적 우주론을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결합시켜 새롭게 해석한 데 반해, 갈릴레이 부자와 메르센 등은 새로운 과학적 관점에서 음악을 수-신비주의와 형이상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실험적 방법을 사용했는데, 실험은 근대과학의 고유한 방법으로서 완고한 이론에 맞서 신비주의와 형이상학적 전제를 해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갈릴레오의 일치이론(coincidence theory)은 - 비록 과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모두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 일체의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적 전제 없이 음악적 하모니의 본성을 해명하려는 시도였다.

이처럼 17세기를 거치면서 음악은 과학혁명에 중요한 동인을 제공하는 한편, 과학은 음악의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적 토대를 해체함으로써 음악의 합리화를 이끌었다. 이와 함께 음악과 과학의 전통적인 관계는 와해되고, 대신 ‘합리적인’ 음향과학으로 나아갔다. 결국 과학혁명은 음악과 과학의 직접적 관계가 유지된 마지막 시기이자 음악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시작된 첫 번째 시기였다. 이후 음악과 과학이 미적(감성적) 영역과 합리적(이성적) 영역으로 분리되고 각기 고유한 원리에 따라 발전함에 따라, 양자 사이에는 – 소리에 대한 음향학적 설명이외에는 - 어떤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보편적 하모니’를 전제로 음악과 과학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해 온 오랜 전통은 허무맹랑한 낡은 관념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서로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 그들의 통합적 세계관은 여전히 흥미로우며, 그것이 음악사와 과학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역사적 전망이 미적인(감성적)인 것과 합리적(이성적)인 것의 분리를 넘어 예술과 과학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려는 시도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원준식 대전대학교·미학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학을 공부하면서 주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현대미학과 예술사회학이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 ‘예술과 과학’의 관계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지금까지 그에 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이와 관련된 논문으로는 「근대 과학혁명과 음악의 합리화」, 「근대 과학혁명과 천구의 음악」, 「뉴턴의 통합적 자연관과 음악적 유비」, 「입체주의와 상대성이론」, 「과학의 미학적 차원」, 「라모의 과학적 음악이론」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