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 폐지 놓고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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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폐지 놓고 갑론을박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1.0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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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기 출연연 25곳 중 18곳이 개선 요구…“연구 실적, 논문 등 능력 파악 어려워”
- 과기자문회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과기정통부 "지침 개정 추진 중"
- 정부 “공정가치보다 인재 확보 더 중요”…업계 “인맥, 학연 등 불공정 채용 문제”
- (재)교육의봄,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 전면 철회 요구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출연硏, 블라인드 채용 개선·폐지 요구…"지원자 전문성 파악 어려워"

정부의 공공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폐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입사지원자가 입사원서에 사진, 출신지역, 학력, 가족관계 등을 적지 못하게 한 뒤 채용담당자들이 직무능력만으로 인재를 뽑는 형태의 채용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가 채용 과정의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지난 2017년부터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계속 나왔다. 채용 지원자의 학력, 지도교수, 논문, 참여 과제 등이 전문성을 판단한 핵심 요인인데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이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이루려는 공정이라는 가치보다 인재 확보를 통한 과학기술 혁신이 더 중요하다며, 폐지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차 전원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우수연구자 확보를 가로막았던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은 연구기관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전면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 세계 연구기관은 연구원을 채용할 때 연구 분야와 성과 등을 파악하기 위해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학교와 추천서 등을 중시한다”면서 “이 때문에 과학기술강국을 만들기 위한 국책연구기관의 제1민원이 블라인드 채용 폐지였다”고 말했다.

실제 대다수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인력 보강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2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관 출연연 25곳에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18개 기관이 ‘지원자의 전문성 확인이 어렵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출연연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직, 기술직 인력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블라인드 채용으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 의원이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등 여러 연구기관이 “블라인드 채용으로는 지원자 전공 적합성, 전문성, 연구역량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했다. 녹색기술센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등은 “전반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여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연구직에 대해 블라인드 채용 제도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구기관 사이에는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과거처럼 인맥이나 학연 등 불공정 채용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출연연 관계자는 “현장에서의 혼란은 이해가 가지만 취업시장에서 학벌 등이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도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인맥 및 학연 채용 불공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도교수 추천서도 부활할 수 있는데 이는 채용 시 절대적 요소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 블라인드 채용제도로 인해 우수 인재 채용이 어렵다는 개선 건의는 지속돼 왔다"며 "관계부처와 함께 관련 지침 및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 폐지는 ‘우수 인재’ 놓치는 국가적 손해 초래

한편, 재단법인 ‘교육의봄’은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움직임에 대해 ‘우수 인재’를 놓치는 국가적 손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교육의봄’에 의하면, 학벌 스펙을 초월한 ‘역량 중심의 채용’은 정권의 성향과 상관없이 추진되어온 국가적 정책으로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는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철회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8, 2019, 2020년 세 차례에 걸쳐 조사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효과성에 관한 분석에서 매우 높은 공정성의 효과가 인정되었을 뿐 아니라, 블라인드 채용으로 입사한 사원들의 성과나 만족도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그럼에도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을 시작으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폐지하려는 현 정부의 움직임은, 단순히 ‘전 정권의 성과지우기’를 위한 무책임한 발표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교육의봄은 밝혔다. 

사실, 학벌 스펙을 초월하여 역량 중심으로 채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학벌이 아닌 역량 중심의 채용으로 우수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한, 국내 민간기업들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채용 문화를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정부의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는 다시 학벌과 기타 직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배경을 채용에 반영하겠다는 것으로 세계적 채용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교육의봄’은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이 우수 인재를 막고 있다는 타당한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며, 언론 보도 역시 블라인드 채용의 정확한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몇 가지의 문제적 사례를 블라인드 채용 전반의 문제로 확대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교육의봄’은 블라인드 채용에 관한 일부 언론의 심각한 왜곡 보도와 그에 따른 시민들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핵심 쟁점과 왜곡 보도의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 핵심 쟁점 ① ‘우수 인재’는 어떠한 사람인가? ⇒ 연구직 우수 인재는 연구성과(논문, 특허, 기술 등)가 높은 연구력이 좋은 사람이며 블라인드 채용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음.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폐지의 이유로 우수 인재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거론했다. 연구직으로서 우수 인재란 해당 기관에서 연구성과가 높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정부 출연연에서 개인의 직무성과는 3P(논문, 특허, 기술) 지표를 토대로 질적 평가와 양적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연구원으로서의 실력은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해도 충분히 검증이 가능하다. 

한 예로 최근 있었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직 채용 공고에서 필수제출 서류로 “최근 5년간 연구실적 증빙 자료”가 명시되어 있다. 단, “본인의 성명, 사진, 출신학교, 성별, 주소, 가족 및 친인척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와 같은 직무와 무관한 정보만 배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 핵심 쟁점 ② 블라인드 채용으로 우수 인재 확보가 어려워졌는가? ⇒ 오히려 블라인드 채용은 우수 인재가 탈락하는 ‘적격자 탈락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것. 블라인드 채용 후 출신학교 수의 증가가 이를 보여줌. 

블라인드 채용은 정보를 가리는 것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실력만을 잘 보기 위한 것에 강조점이 있다. 즉, 개인의 업무 실력을 제대로 보기 위해, 그것을 방해하는 정보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학벌과 스펙 위주로 채용을 하는 경우, 실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만, 학벌 스펙이 부족한 사람들이 서류 단계에서 떨어져(알파 오류), 자신의 실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최근 기업들은 뛰어난 인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알파의 오류’를 줄여가는, 즉 실력이 있지만, 학벌이나 스펙 부족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만약 학벌과 여러 배경 스펙(출신학교, 지도교수,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서류를 검토한다면, 연구 실력이 충분함에도 스펙이 부족하여 채용과정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블라인드 채용은 우수한 인재가 스펙 배경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떨어지는 ‘적격자 탈락의 오류(알파 오류)’를 막고 실력 위주로 경쟁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 시행 후 공공, 민간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관에서 나타난 눈에 띄는 변화는 합격자들의 출신학교 수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 출신학교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채용했을 때는 특정 대학 출신 위주로 합격했지만, 이후 그러한 정보를 배제했을 때 더 다양한 학교 출신의 지원자들이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그 분야에서 출신학교 스펙이 약해 놓칠 뻔했던 인재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알파 오류’를 방지한 효과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정부의 주장처럼 블라인드 채용이 우수 인재 확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놓칠 뻔한 우수 인재 탈락을 막고 있는 것이다.
 

❏ 핵심 쟁점 ③ ‘출신학교,’ ‘지도 교수,’ ‘연구소’ 등이 곧 실력인가? ⇒ 블라인드 채용은 이러한 스펙 배경이 약하지만, 실력 있는 연구자들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임.

정부를 포함하여 블라인드 채용을 폐지하자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연구직은 출신학교, 지도 교수, 연구소 이름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직이기 때문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 그리고 유명 교수나 연구소 등의 배경을 가진 사람 중에 실력 있는 연구자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가 곧 연구원으로서 그 개인의 실력은 아니며 ‘배경’이다. 그러한 배경(스펙)이 없어도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우수 인재는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러한 배경을 제외하고, 해당 업무를 잘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평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 왜곡 보도 ① 블라인드 채용 때문에, 중국 국적 지원자가 입사했다? ⇒ 기관 스스로 블라인드 채용과 상관없다고 밝혔음에도 일부 언론이 왜곡하여 블라인드 채용 폐지를 위해 활용하고 있음.

블라인드 채용 폐지에 대한 발표가 나오기 전후로 여러 언론이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며 다양한 여러 보도를 쏟아냈다. 문제는 이러한 보도들 역시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대부분 개별 사례를 왜곡하여 확산하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가령 2019년 12월,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한국원연)의 채용과정에서 중국 국적자가 최종 단계에 통과되어 채용을 보류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언론이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같이 등장시키는 사례다. 하지만, 이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원연은 당시에 이 사건은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이미 밝힌 바 있다. 

❏ 왜곡 보도 ② 전공 등의 정보를 가려서 해당 분야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 블라인드 채용은 직무와 관련 있는 ‘전공,’ ‘전문지식’까지 더 상세하게 확인하고 있음.

또 하나의 보도 유형은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으로 전공과 관련이 없거나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지원자들이 입사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이다. 특히 많이 활용되는 것으로, 입자가속기에 숙달된 물리학 박사 2명을 뽑는데 최종 면접에 올라온 6명 중 3명이 가속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례다(조선, 2021. 12. 23/ 중앙, 2022. 2. 12). 블라인드 채용으로 전공도 볼 수 없고, 특정 지식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어 이러한 사례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가리는 게 목적이 아니고, 적격자를 능력 위주로 뽑기 위해 업무에 불필요한 요소를 가리는 것이다. 따라서 업무에 필요하다면, ‘전공,’ ‘학력’을 기관 재량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과학 기술계 연구직 채용에서는 전공, 학력에 대한 정보를 자격란에 명시하고 있다. 

게다가, 공공기관은 매우 상세한 직무기술서를 지원자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직무기술서에는 ‘직무수행내용’, ‘필요지식’, ‘필요기술’ 등 기관이 어떠한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가 일반적인 채용 공고보다 더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연구직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최종 단계에 뽑혔다면, 그것은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기관에서 채용을 잘못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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