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키워드로 톺아본 질그릇 손잡이잔의 매력…기형, 구연부, 손잡이, 문양, 색채
상태바
다섯 가지 키워드로 톺아본 질그릇 손잡이잔의 매력…기형, 구연부, 손잡이, 문양, 색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31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삼국시대 손잡이잔의 아름다움: 미적 오브제로 본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 75점 | 박영택 지음 | 아트북스 | 408쪽

 

미술평론가 컬렉터 박영택 교수가 자신의 수집품인 가야·신라시대 손잡이잔들의 조형적인 매력을 곱씹으며 한국미의 특성까지 톺아본 책이다. 

가야와 신라시대의 손잡이잔은 흑색의 경질토기를 말한다. 굴가마(등요)에서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만큼 강하고, 색상은 회청색을 띈다. 현재 우리가 만나는 손잡이잔은 모두 부장용 껴묻거리로 컴컴한 무덤에서 나왔다. 

저자가 추려낸 손잡이잔은 75점. 이들 손잡이잔을 다시 다섯 가지 키워드로 나눠서 각각의 특징에 주목하며 당시 가야·신라인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은 물론 손잡이잔에 투영된 한국미의 특질까지 짚어준다. 따라서 이 책은 손잡이잔을 통해 당대인의 생활과 생각, 미의식까지 추출한 ‘손잡이잔 인문학’이다.

저자는 손잡이잔의 오묘한 매력을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눠서 소개한다. ‘기형(器形)’ ‘구연부(口緣部)’ ‘손잡이’ ‘문양(文樣)’ ‘색채’가 그것인데, 사실 이들은 하나의 손잡이잔을 이루고 있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뛰어난 손잡이잔은 이들 요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75점의 잔에서 각 키워드가 두드러진 것을 중심으로 분류했다. 다양한 체형을 지닌 손잡이잔 기형의 독특한 매력, 잔의 구연부(아가리)의 미묘한 모양과 표정, 몸통에 붙은 손잡이의 다채로운 생김새, 잔의 피부에 새겨진 문양의 형태와 의미, 그리고 기기묘묘한 색채의 낯빛을 깊이 탐색한다. 

먼저, 에스프레소잔 같기도 하고 머그잔 같기도 한 손잡이잔의 ‘기형’이다.

“손잡이가 달린 가야와 신라시대 잔은 오늘날 머그와 형태가 거의 같다. 오히려 더욱 세련되고 아름다우며 직접 만들어 구워낸 개별성과 고유성에서 우러난 각기 범접하기 힘든 매력이 짙게 배어 있다. 가야 지역에서는 전체적으로 납작한 항아리를 선호했다면, 신라 지역에서는 둥근 항아리를 선호했다. 그것들은 손으로 직접 빚어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저마다 만든 이의 손맛에 의한 변형과 차이를 간직할 수밖에 없다. 그 질그릇들은 대부분 매우 단순하고 정직한 형태를 추구하며,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조형미를 두르고 있다. 특히나 단순한 기형을 지탱하는 ‘선의 맛’이 대단한데, 이것은 우리나라 질그릇 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선사시대 토기부터 이후 도기, 자기, 그리고 조선 후기의 옹기에까지 유장하게 이어지고 있다.”(22쪽)

다음은 손잡이잔에서 사용자의 입술이 닿는 ‘구연부’다.

“구연부란 손잡이잔의 아가리 부분을 말한다. ‘아가리’는 입의 비속어. (중략) 손잡이잔의 맨 윗부분이자 원형의 내부 공간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상층부를 이루는 영역인데, 잔의 하단부에서 위로 솟아올라 꺾여 내부로 들어가기 직전의 절정이자 잔의 최종적인 형태를 완료하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잔의 형태는 결국 구연부가 최종적으로 마감한다. 그것이 외부로 어느 정도 벌어졌는지, 몇 도의 각도로 경사면을 갖는지, 구연부의 면이 어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등이 잔의 전체적인 기형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손잡이잔에서 가장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지점이 바로 구연부일 것이다.”(91쪽)

동일한 형태가 하나도 없는 잔의 ‘손잡이’는 가야와 신라가 차이를 보이는 점도 흥미롭다.

“회색조의 여린 신라 손잡이잔이 상당히 소박하고 여성적이라면, 가야 손잡이잔은 섬세하고 세련되면서도 무척 강렬하고 무거운 남성미가 느껴진다. 또한 신라 손잡이잔의 기형은 활달하고 양감이 넘치는 가야의 것과 달리 다소 옹색한 점이 있다. 다양한 기형의 가야 토기에 비하여 다양성이 제한된 편이고, 변형태나 이형적인 맛도 드물다. 그래서 신라의 손잡이잔은 비교적 획일적인 느낌이 짙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손잡이들을 하나같이 지극히 무심하고 소박하게 빚어서 잔의 옆구리에 정성껏 밀착시켜놓았다는 점이다. 더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으며, 과하게 빚거나 유난스럽게 장식하지 않았다. 손잡이는 잔의 핵심이다.”(50~51쪽)

손잡이잔의 일부 손잡이 형태도 그렇지만 잔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에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내세관이 집약되어 있다.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에 빈번하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양은 직선의 줄무늬, 물결무늬다. 한편 그릇 표면을 예리한 돌기줄로 등분한 것은 고식이고, 돌기 줄이 부드러워지거나 없어지고 측면 곡선이 아름다운 것은 후기에 속한다. 가야의 것은 점선으로 된 톱니바퀴나 파선 무늬가 주로 나타나고, 신라의 것은 예리한 직선 위주가 우선한다.”(234~235쪽)

저자는 잔의 ‘색채’마저 허투루 보지 않는다. 이 색채를 인문학적으로 읽어서 당시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보는 텍스트로 활용한다.

“가야와 신라시대 손잡이잔의 색채는 흙과 불의 만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지향했던 무한한 대상에 대한 숭고의 감정과 간절한 염원을 가시화하려는 목적으로 채색되었을 것이다. 결코 이름 지을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난해한 손잡이잔의 색채는 분명 당시 가야와 신라인들이 추구하던 문화적·종교적·이데올로기적 영향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손잡이잔의 색은 당시 사람들이 지닌 미의식의 반영이자 자연에 대한 기호를 반영하는 텍스트가 된다.”(303쪽)

‘보론’ 「질그릇 손잡이잔의 조형 유전자와 아름다움」은 손잡이잔 감상에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여기서 저자는 질그릇 손잡이잔의 장구한 흐름을 명료하게 서술한다. 그리스·로마에서 한반도의 가야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또 국제정세의 변화와 불교의 유입으로 손잡이잔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역사를 통해 본문을 보충하며 감상의 지평을 확장한다.

손잡이잔의 유입과 소멸에는 국제적인 교류와 무덤의 형식, 불교의 유입에 따른 세계관의 변화 등이 함께한다. 손잡이잔 하나가 당시 국제 관계의 변동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당시 가야·신라인이 지녔던 세계관은 삶과 죽음이 서로 무관한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긴밀히 연결된 세계, 이른바 ‘직선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래서 망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을 무덤의 부장품으로 넣었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서고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직선적인 세계관에 금이 간다. 윤회론에 따른 새로운 세계관에서는 내세보다 현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했다. 무덤의 부장품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