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문학·문화·지성사의 복원과 새로운 문화정치/지식사회학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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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문학·문화·지성사의 복원과 새로운 문화정치/지식사회학 프레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31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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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금을 넘어서 복원과 공존으로: 평화체제와 월북 작가 해금의 문화정치 | 김성수·천정환·이봉범·이철호·정종현 외 10명 지음 | 역락 | 608쪽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한반도적 관점에서 볼 때 분단·냉전체제의 완강한 구심력과 평화체제를 염원하는 미래지향적 활력이 날로 부딪치는 형국이다. 이에 평화체제 도정의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문화사적 의제를 우리 사회, 학계에 선도적으로 제시할 때이다. 특히 1948년의 분단과 1950년의 전쟁 이후 한반도 지성사의 인위적 분단과 지역적 재편에 대한 발본적 재조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를테면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월북’ 작가의 ‘해금’(1988)과 이후 30여 년간 전개된 우리 사회와 학계의 지성사·문화사적 변모를 정리할 수 있다. 이제는 누구누구가 월북했고 누구누구는 월북자 아닌 납북, 재북이니 구별해야 하고 누구누구는 숙청되었더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월북이란 단죄, 연좌제 같은 낙인찍기 식의 공안통치 개념을 해체, 극복하고 ‘분단 피해자의 정치적 복권 및 문화적 해원(解冤), 신원(伸冤)’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요컨대, 이 책은 70년 냉전 문화사, 문학사를 해체하고 대안을 찾는 중간 이정표이다. 우리 학계가 1988년 이후 30년 동안 이룩된 지적 성과를 근현대 문학·문화·지성사의 복원과 새로운 문화정치/지식사회학 프레임으로 포착한 셈이다. 그 구체적 사례로 내부냉전의 해체와 남북한 문학장에서 한때 배제 실종되었던 재·월북 작가의 복권과 작품의 복원 및 정전화 문제를 천착한다. 이를 통해 분단·냉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데 지성사적 문화사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제1부 문화사·지성사 논문 7편, 제2부 문학사·작가론 논문 6편 등 13편의 기획으로 구성되었다. 

* 1부 총론격인 글에서 김성수는 ‘납·월북 작가 해금 조치’(1988) 30년을 맞아 ‘월북’ ‘해금’이란 개념을 해체하고 대안으로 월북이든 월남이든 분단 피해자의 문화정치적 복권이란 개념을 제안한다. 냉전체제·분단체제가 강제한 공안통치적 배제·숙청이라는 ‘뺄셈의 문학사’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통합과 포용의 문화사’로 의제를 전환하자는 것이다. 
* 천정환은 한국 냉전문화의 역사와 극복 방법을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회담 전후 통일·평화 담론의 전변과정에서 살피고 있다. 통일당위론의 해체 극복과 평화 담론과의 병행 가능성을 모색한다. 남북이 식민화와 세습독재를 피하면서도 각각 사회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과정과 평화체제, 국가연합을 이루는 과정이 서로 다른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 이봉범은 납·월북 작가 해금 조치의 자세한 경과를 살펴본 후 월북이란 의제를 분단이데올로기를 넘어서려는 통일 민족문학(사)로의 진전을 가로막는 냉전프레임의 망령, ‘내부냉전’으로 규정한다. 해금과 국가보안법의 모순구조 타파, 즉 월북 작가의 사상적·정치적 복권은 문학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냉전프레임의 미망을 극복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 이철호는 해금 이후 90년대 학술장의 변동을 비판적으로 리뷰한다. 해금과 북한을 학술장에 끌어들이자 내재적 발전론과 단절되고 ‘리얼리즘의 축복’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며 모더니즘을 포함한 근대성 담론의 전유가 일반화된 것이다. 이제 리얼리즘, 북한문학, 통일문학이 더 이상 특권화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 정종현은 납·월북 작가 해금이 문학사뿐만 아니라 학술과 지식장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전제하고 ‘해금’ 전후 1980년대 금서의 전체상을 재구성한다. 특히 박정희 유신 정권기의 정치 이면사를 다룬 금서에 주목하여 그들을 유신 정권의 도덕적 타락과 관련된 일종의 정치 포르노로 해석한다. 
* 허민은 ‘해금(1988)’이라는 조치의 성격을 ‘문학문화의 재구조화’라는 역사적이면서도 문화사적인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냉전 이데올로기의 해체 및 북한·통일 문제에 대한 역사 인식의 전환, 한반도 정치 지형의 변화 등이 연동됐던 ‘항쟁 이후’라는 시간의 중층적 성격과 탈냉전적 문화사 인식의 지평에 관해 탐구한다. 
* 한상언은 영화인의 월북을 이유로 영화 상영이 금지된 1940년대 후반부터 일제강점기 제작된 조선영화가 발굴되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까지를 중심으로 월북 영화인과 해금에 관해 되짚어 본다. 문제는 발굴된 영화가 대부분 일제 말기 영화라서 월북 문제보다 친일 문제로 지적받는데, 이는 친일문제라는 보다 민감한 부분도 있지만 월북 영화인과 북한 영화에 대한 무지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파악한다. 현재 월북 영화인에 대한 연구는 시작단계로 북한영화 연구와 함께 진행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 2부 총론격인 글에서 유임하는 해금 조치 30년을 넘긴 현재까지도 납북, 월북 문인들의 사상적 복권은 유보된 채 몇몇 문인들의 해방 이전 작품들만 유통되는 경향을 비판한다. 해금 조치의 불구성은 북한문학과 통일문학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연구 붐이 불과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조한 점에서도 잘 확인된다. 다만 우리 문학의 근대성 재검토, 재월북 문인과 북한문학, 통일문학사와 관련된 문학사적 복원 노력을 지속해 왔던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 김미지는 1988년 발표된 월북 문인 해금이라는 사건의 ‘이면’을 두 상징적 사건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정지용 아들이 ‘아버지는 월북이 아닌 납북’임을 증명하고 출판사 사계절이 해금 이전에는 ‘불온문서’였고 해금 이후에는 ‘해적판’으로 몰린 소설 『임꺽정』을 복권하기 위한 노력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불화의 소멸 이후의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데 하나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장문석은 1985~1989년 시기 월북 작가의 해금과 작품집 출판을 최대한 전수 조사한다. 그 결과 월북 작가의 실제 작품집 출판이 해금의 시간과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발견한다. 이 점에서 정부의 공식적인 ‘해금’과 어긋나는 시간, 주체,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정부의 공식 해금 조치에 맞서서 출판사, 비평가·연구자, 독자의 상호작용과 문화적 실천이 해금 전후 1985-1989년에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월북 작가, 작품론은 세 편이다. 
* 오태호는 월북 작가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 연구사를 남북한 학계 전체로 확대 검토한다. 그 결과 남북한 학계의 역사소설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임꺽정』 자체가 남북 공통의 문학적 자산에 해당하는 원천 텍스트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 정우택은 월북 시인 이용악의 러시아 연해주를 배경이나 제재로 한 시에 주목한다. 이용악에게 만주가 관찰의 장소였다면, 연해주는 생계를 위해 월경했던 생활의 현장이기에, 그의 ‘북방 시’는 분단 극복의 심상이자 냉전체제를 돌파하여 평화 연대의 시대를 열어 밝히는 문학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고자연은 1957~1960년에 발표된 월북 작가 한설야의 아세아·아프리카 관련 기행문을 분석하여 제3세계에 대한 그의 인식 형성·변화를 고찰한다. 북한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로서 한설야의 행보는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를 표방하지만 평화라는 키워드에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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