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삶’과 ‘사랑’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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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삶’과 ‘사랑’에 주목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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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철학자의 탄생 | 아먼드 단거 지음 | 장미성 옮김 | 글항아리 | 272쪽

 

소크라테스의 전기는 주로 가장 논쟁적인 ‘재판’과 ‘사형’을 다룬다. 그러나 이는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 죽음에 해당한다. 그전에 소크라스의 ‘삶’은 어떠했는가? 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은, 못생겼지만 지적인 중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를 돌아다니며 아테네 시민들에게 아주 성가신 질문을 던져댔다는 것 정도다. 비범하고 성실한 제자 플라톤은 대화편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이런 활동을 후세에 전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저 철학자이기만 했을까? 최소한 소크라테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철학자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테네인은 삶의 어느 순간 철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텐데 이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먼드 단거의 소크라테스 전기인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소크라테스가 본격적으로 독창적인 철학을 시작한 것은 30대 이후의 일이다. 단거는 그전 10대, 20대 소크라테스에게 주목해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을 추적한다. 그는 여느 전기 작가와 다르게 소크라테스의 철학 활동 자체보다는 소크라테스를 철학자로 만든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찾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그가 그 해답으로 발견한 것이 바로 ‘사랑’이며, 이 책의 제목이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Socrates in Love’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때 ‘사랑’은 ‘필로소피아’, 즉 철학자로서 그가 지녔던 지혜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낭만적인, 즉 ‘에로스’에 가까운 사랑을 말한다. 단거는 이런 사랑이 소크라테스의 삶은 물론이고 그의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를 결국 서양철학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그리고 위대한 철학적 영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가 사랑한 사람으로 단거는 아르켈라오스, 알키비아데스 그리고 아스파시아를 꼽으며, 이중 아스파시아가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소크라테스의 삶에 대한 가장 유명하며 공신력 있는 증인은 바로 플라톤, 그리고 크세노폰이다. 둘 모두 중년 이후의 플라톤밖에 알지 못했으며 부당하게 사형당한 소크라테스를 변론할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전하는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중년기 이후의 시점에 치중되어 있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젊은 시절을 미스터리로 만든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의 목표대로 젊은 소크라테스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외에 다른 증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동시대인인 아리스토파네스, 키오스의 이온과 함께 후대인인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크세노스, 플루타르코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증인을 소환한다. 또한 데브라 네일스, 칼 허프먼 등 최신 연구자들의 업적까지 아우른다. 결과적으로 단거가 새롭게 구성해낸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은 훨씬 더 입체적이면서도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라는 다소 감상적이고 불확실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운 읽을거리나 재미있는 상상 정도에 그치지 않고 충분히 진지하면서도 독창적인 전기의 위상을 획득해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아닌 삶과 사랑, 그리고 중년기 이전의 삶에 주목하고 여러 증인을 소환함으로써 단거는 인간 소크라테스의 입체적인 모습을 비춘다. 흔히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천민 출신이고, 못생긴 배불뚝이이며, 연애 경험이 별로 없고, 행동가라기보다는 사상가다. 그러나 이는 주로 중년 이후 소크라테스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젊은 시절의 소크라테스는 반드시 이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제시하는 소크라테스는 10~20대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매력적인 건장한 젊은이다. 또한 여러 고용인을 거느린 석공 집안의 아들로서 귀족은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모자람 없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어릴 때는 연상의 애인 아르켈라오스와 사귀었다는 기록이 있고 알키비아데스와는 물론 아스파시아와도 애정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철학하지 않을 때에는 늦은 나이까지 전사로서 충실한 군 복무를 하며 나라를 위해 몸으로 뛰었다.

석공, 전사, 애인 등 소크라테스가 가진 여러 면모를 통해 우리는 그가 사실 어릴 때나 젊은 시절에는 다른 아테네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한 인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던 소크라테스는 왜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철학에 헌신해 목숨까지 바친 영웅이 되었는가? 이 미스터리 아래에는 소크라테스와 아스파시아의 관계가 놓여 있다. 소크라테스가 “그녀는 사랑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라고 『향연』에서 언급했던 ‘디오티마’라는 여성 뒤에 신비롭게 가려진 아스파시아는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전환을 가능케 한 인물로서 무대에 오른다.

저자에 따르면 아스파시아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과 또 다른 연인 알키비아데스와의 관계는 결국 철학에 헌신한 그의 삶과 부당한 재판, 그리고 유명한 변론 연설, 사형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연쇄를 만들어낸다. 저자가 구성한 소크라테스 전기의 쾌거는 바로 이처럼 평범한 한 인간 소크라테스의 다층적 면모를 비춰내면서도 이를 소크라테스의 철학활동과 죽음까지 설득력 있게 엮어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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