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일상’ 그리고 ‘옛사람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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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일상’ 그리고 ‘옛사람의 향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31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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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서에 담긴 조선의 일상 | 노인환·심영환·이은진·이재옥·이현주 외 3명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 | 288쪽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조선왕실에서 보관하던 12만여 책의 왕실도서와 전국에서 수집한 민간 고문헌 17만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자료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51편을 선별해 그들의 삶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동안의 조선 시대 연구는 정치, 사회와 같은 상부구조를 대상으로 한 거대 담론이 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대를 고민하며 삶을 견뎌낸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때, 고문서에 암호로 남아 있는 너무도 많은 사람의 사연을 읽어내는 데 주목했다. 

고문서에 집중한 이유는 조선 시대 사람들이 그 시대에, 바로 그 현장에서 작성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문서 속 사람이 만들고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경이로워 때로는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주 다양하다. 궁궐의 국왕에서부터 시골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다. 사연도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 경영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자신을 팔아야 하는 고뇌의 순간까지 다채롭다. 고문서에 녹아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조선 시대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이 들려주는 몇몇 사례를 보자(출처: 동아일보)

* 1767년 5월 한순재는 용산서원에 자신을 내다 팔며 자매명문(自賣明文·평민이 자신을 노비로 팔기 위해 만든 문서)을 남겼다. 평민 신분이었던 그는 봄에 기근이 닥친 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갚을 방도를 찾지 못하자 결국 자기 자신을 내다 판 것. 1801년 선암외라는 사람은 서원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10살과 7살 난 두 딸을 팔며 “형편상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가 낳은 두 딸을 서원에 영원토록 팔아버린다”는 글을 남겼다

* 조선 실학자 황윤석(1729~1791)이 8세부터 62세까지 쓴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 46책 중 1책에는 18세기 중엽 한양 주택시장에 대한 깨알 정보들이 가득 들어 있다. 1769년 41세에 왕실 족보를 관리하는 관청인 종부시의 종7품으로 승진하며 고향인 전북 흥덕을 떠나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 그의 일기 속에 한양 주택 임장기가 담긴 것. 고향 땅을 팔아 40냥을 챙긴 그는 4대문 안에 있는 중소형 주택 10여 곳을 돌며 발품을 팔았지만 끝내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지 못했다.

* 고문헌 탐구는 역사적 인물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풍부한 단서도 제공한다.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가 목숨을 잃은 ‘삼학사(三學士)’ 가운데 하나인 오달제(1609∼1637)가 그랬다.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청과의 화의에 반대했던 기개는 그가 남긴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에 잘 드러난다.

문집에 1633년 오달제가 24세에 응시한 과거시험 답지가 나온다. 당시 문제가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준비하던 ‘동전’을 유통할 좋은 방법을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근데 오달제는 ‘동전을 만드는 게 임금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려는 것인지 민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되레 따져 묻는 답을 쓴다. 국가시험 응시생이 정부가 시행하려는 정책의 유해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곧은 성정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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