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의 생애 전반이 담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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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생애 전반이 담긴 인터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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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아르의 말: 자유로운 삶을 꿈꾼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 | 시몬 드 보부아르·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 이정순 옮김 | 마음산책 | 172쪽

 

『제2의 성』으로 20세기 후반 여성운동의 등불을 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터뷰집으로 이 책에는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여섯 번에 걸친 보부아르의 인터뷰가 담겼다. 인터뷰어는 저널리스트 알리스 슈바르처. 독일의 여성운동을 견인하는 젊은 페미니스트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년의 지식인은 10년간 진행된 대담 내내 정력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보부아르는 대담이 이루어지던 당시 한창 꽃피우던 여성운동에 대한 참여와 그 과정에서 자신이 주도한 행동들을 상세히 술회한다. 또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타자와의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논한다. 특히 한 번의 대담에는 사르트르도 동석하여 평소 잘 언급하지 않던 둘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한 세대를 뛰어넘은 두 여성의 대화는 모성, 여성과 일, 정치활동, 노년, 우정,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의 삶을 관통하는 주제들을 아우르고 있어, 보부아르라는 인물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련의 대담이 시작되기 전해인 1971년, 보부아르는 생애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을 맞닥뜨린다. 프랑스의 급진적 여성단체인 ‘여성해방운동(MLF)’의 요청으로 낙태와 피임 합법화를 요구하는 ‘343인 선언’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것이다. 그는 이를 기점으로 그때까지 거리를 두고 있던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여생을 보낸다. 마지막 대담이 1986년 타계하기 몇 해 전 성사되었음을 생각하면, 『보부아르의 말』은 보부아르가 ‘여성의 동행자(친구)’로서 여성의 해방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가장 뜨겁게 투신하던 시기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젠더 규범이 사회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축되고 공고해졌다고 주장한 보부아르의 역작 『제2의 성』은 출간 당시 수많은 항의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제2물결 페미니즘 초기의 주요 저작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보부아르는 그 책 말미에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썼다. 사회주의가 이룩되면 자연스레 성평등이 이뤄지고 여성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출간 이후 20여 년이 지나도록 프랑스 내 여성의 상황과 조건들은 나아지지 않았고,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성평등이 실현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그는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지식인의 의무가 여성을, 나아가 인류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보부아르는 변화를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한편, 보부아르는 일찍이 여성을 한자리에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원한 여성’의 신화와 ‘모성’의 절대 숭배, 다시 말해 여성을 가사 노동에 예속시키는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보부아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독립적인 삶을 위해 직업이 필요했고, 그 직업은 글쓰기를 통해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여성의 자유가 극히 제한적이던 시대, 여성들이 직업적·경제적으로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립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역설한 것이다.

『보부아르의 말』은 보부아르가 만년에 천착했던 연구 주제인 노년과 나이 듦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는 덜 치열해진 일상으로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확보하게 되어 흡족하다면서도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이며, “더 이상 미래가 없고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외모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쉰, 쉰두 살 무렵에 마흔 살 때 얼굴과 비교해보고 차이를 확인하는 게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고 천진한 구석까지 내비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부아르의 주관적인 노년 체험을 넘어 노년층이 겪는 빈곤이나 고립감, 남성과 여성 간 노년의 차이에까지 논의를 확장해간다.

젊은 시절, 정치적 사안에 대해 ‘관중’의 태도를 견지하던 보부아르는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1960년에는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며 ‘121인 선언’에 서명했고, 베트남전쟁에도 반대 의사를 확고히 표명했다. 나아가 선거에서 정당을 선택하는 원칙, 후보와 투표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도 밝힌다.

현대 여성운동의 기수로 손꼽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만약 누군가 한 사람이 현재 국제 여성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는 시몬 드 보부아르다”라고 했다. 이처럼 보부아르는 일생 동안 책과 행동으로 여성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자 분투했고, 그 진실된 생애는 후대 여성들에게 뿌리 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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