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미래 사이, 텍스트 … 텍스트역사연구소(IRHT)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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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미래 사이, 텍스트 … 텍스트역사연구소(IRHT)에 대해
  • 문성욱 해외통신원/소르본대 박사과정·중세프랑스문학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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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리포트]
IRHT의 펠릭스 그라 센터 도서관 (Bibliotheque du Centre Felix-Grat, Paris)

2013년 무렵, 콜레주 드 프랑스 사이트를 통해 미셸 쟁크의 프랑스 중세문학 강좌를 보던 때다. 노교수는 어느 날 세미나의 강연자를 소개하며 지나가듯, 하지만 힘주어 그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 IRHT”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 표현이 인상적이었던지 IRHT의 이름도 덩달아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얼마 뒤 프랑스에 와서 몇 년째 논문을 쓰다 보니 나 자신 저 ‘우리’의 말석에서 빚을 지고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갚을 길이야 없겠지만 짧은 글을 쓰면서 개인적인 빚의 내역을 되새겨 볼 수는 있겠다. (이하의 내용은 주로 IRHT의 사이트나 유튜브 채널에서 접할 수 있는 문서 및 영상 자료에 기반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보려 되도록 많은 인용을 했지만 대개의 경우 축약이 불가피했음을 밝혀 둔다).

* 텍스트 찾기, 역사 밝히기, 연구에 기여하기 

IRHT는 “Institut de recherche et d’histoire des textes”의 약자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을 찾아 “recherche”를 ‘연구’로, “histoire”를 ‘역사’로 새기고 앞뒤 순서를 바꾸어 ‘텍스트역사연구소’라 옮겼지만,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니다. 정확히 하자면 “recherche”란 말에서는 일차적인 뜻, ‘찾다’의 뜻을 강조해야 한다(중세문학에 익숙한 독자라면 ‘성배의 탐색’과 같은 모험담을 떠올려도 좋다). 즉 IRHT는 텍스트를 ‘찾아’서 그 ‘역사’를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둔 기관이다. 아무래도 IRHT 사이트의 소개 글을 간추려 옮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을 성싶다.

“IRHT는 중세 수고와 옛 인쇄본에 대한 기초 연구에 종사한다. 지중해 연안 문화권의 주요 언어로 쓰인 텍스트의 역사를 모든 방면(물질적 매체, 필체와 장식, 내용, 이미지 도상학, 전파와 수용)에서 다룬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문헌학적·어휘론적·역사적·고필체학적·고서학적 탐구는 수고의 작성연대와 작성지역을 밝히고 수고에 담긴 텍스트를 판별하고 확정하며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그 생산·유통·수용·이용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그 결과물을 모든 연구자의 작업 도구로 제공하도록 한다.”

대상의 폭과 방법의 다양성에서 IRHT에 비견할 수 있는 연구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마지막 줄에 있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소속 연구소로서 특정 대학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IRHT는 바로 그 독립성 덕분에 프랑스 안팎의 다른 연구소, 연구자의 활동에 기여할 수 있으며, 이 기여가 IRHT의 정체성이다. 1937년 국립고문서학교(Ecole nationale des Chartes) 출신의 문헌학자이자 국회의원이었던 펠릭스 그라(F. Grat)가 IRHT의 창립을 제안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이 바로 ‘연구를 위한 연구’, 즉 다른 연구자의 독해와 해석과 성찰에 바탕이 될 텍스트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연구소였다.

우선 목표는 유럽 안팎에 흩어져 망각되어 있는 고전 라틴 텍스트의 수고본을 확인하고 기초 사실을 정리하며 수고본 자체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는 작업이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라 자신이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뒤 그의 꿈을 이어받은 잔 비에야르(J. Vielliard)의 지휘 아래서 IRHT의 관심은 지중해 권역의 온갖 언어(그리스어, 아랍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오크어, 콥트어 등)로 확장되어 갔고, 텍스트를 담은 매체로서의 책과 텍스트를 수반하는 이미지가 텍스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물론 이 첫 세대는 마이크로필름이 고화질의 디지털 이미지로 대체되는 식의 급격한 기술 변화까지 짐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1998~2004년 IRHT 소장을 역임했던 역사학자 자크 달라룅(J. Dalarun)이 지적하듯 다양한 문헌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색인화한 IRHT의 유명한 카드 함들은 이미 오늘날의 데이터베이스를 예견하고 있다. 실제로 IRHT가 지금 구축하고 있는 조나스(Jonas: 중세 프랑스어 및 오크어 텍스트·수고본을 대상으로 함)나 비발(Bibale: 옛 수고본 소유자들의 장서를 조사함으로써 수고본 전승 과정을 종합해 밝힘) 등의 시스템에 기반이 되는 것은 저 낡은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연구의 첫 단계, ‘찾기’의 단계가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새로운 수고본과 새로운 텍스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기지의 대상으로부터 미지의 사실을 발견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발견을 먼저 알아보고 학계에 ‘자료’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발견자 자신이 누구보다 박학하고 섬세한 연구자여야 한다. 중세 라틴어문학 전문가 안-마리 튀르캉-베르베르크(A.-M. Turcan-Ververk)는 농담을 섞어 말한다. “이곳에서 수고본을 검토하는 법, 카탈로그를 작성하는 법, 작업도구를 고안하는 법을 배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이 연구소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발견을 해나가면서도 그것을 대단히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상한 고등사범학교 출신 연구자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그는 귀가 따갑도록 주위에 떠들어 대고, 이에 대해 논문을 세 편쯤 쓰며 으스대기 마련이다. 반면 발견에 대해 믿을 수 없이 소박한 태도를 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큰 깨우침이었다. 그것이 연구의 정신이며 봉사의 정신이다.” 2009년 별세한 로망어 분과 초대 책임자 에디트 브라이에르(E. Brayer)에 바치는 추모 글에서 안-프랑수아즈 라비-뢰르캥(A.-F. Labie-Leurquin)이 말하는바, “다른 이들의 연구를 돕는 데 바쳐진 삶”이 얼마 전 여든 살을 넘긴 이 연구소의 삶이다.

* 기술과 통찰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의 문헌을 연구하는 IRHT가 가장 먼저 첨단 기술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역설이다. 20세기 중반 유럽 도처의 도서관에서 먼지 쌓인 책을 뒤지며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잔 비에야르를 비롯하여 그들 중 많은 수가 여성이었다는 점도 지나는 김에 짚어 두자)의 모습은 지금 떠올려 보면 낯설도록 고답적이지만 당시 마이크로필름은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위에서 말했듯 인터넷 등의 가능성을 이용하여 연구성과를 더 널리, 더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고민되고 있다.

기술은 때로 연구 자체를 혁신한다. 고필체학자 도미니크 스투츠만(D. Stutzmann)은 중세 문헌의 글자를 판독하는 단계를 넘어 서로 다른 필체를 구분하는 세밀한 작업에서 인공지능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 다니엘 들라트르(D. Delattre)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서사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유머를 섞어 자신을 “탄화 파피루스 문헌 연구자”라 소개하는데, 그의 주요 관심사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폼페이와 함께 묻혀버린 도시 헤르쿨라눔에서 발굴된 수많은 파피루스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처음으로 유적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 새까만 덩어리들이 그저 불에 탄 나뭇조각인 줄 알고 내다버리기도 했다. 곧 그 정체를 깨달았지만 때로는 손으로, 때로는 이런저런 장비를 동원하여 문서를 펼쳐보려는 시도는 자주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문서를 펼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비침습적’ 방법이 시도된다. 여러 세기에 걸친 이 과정은 텍스트의 여정이 곧 발견과 연구의 발전사이기도 함을 증명한다. 과거의 텍스트가 ‘저자’의 손을 떠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는 일은 결코 자명한 일이 아니다.

이 노력은 좁은 의미에서 기술자의 것일 뿐만 아니라 깊은 의미에서 학자의 것이다. 고온에 익은 파피루스 더미에서 어렵사리 건져 낸 문자들은 읽히고 이해됨으로써 텍스트가 된다. 텍스트의 표면과 심층, 눈에 보이는 사실과 밝혀내야 할 의미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IRHT의 신념일 것이다. 한 편의 글이 어떤 매체에 담기고 누군가에 의해 읽히며 또다시 필사되는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이 글의 정신을 밝히는 일과 무관할 리 없다.

* 오늘의 카시오도루스

1177년경 그려진 카시오도루스(485년경-580년경)의 초상 (레이던 대학도서관, Ms. vul. 46, fol. 2r)
1177년경 그려진 카시오도루스(485년경-580년경)의 초상 (레이던 대학도서관, Ms. vul. 46, fol. 2r)

바꾸어 말하면, 읽고 이해하는 사람 없이 텍스트는 없다. 그래서 중세 대학사 전문가 모니크 브린제이(M. Brinzei)는 고전어 교육이 약화되고 있는 세태를 우려한다. “라틴어 수고를 읽을 수 있는 전문가가 없다면 과거는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나친 걱정일지 모른다. 매년 가을 개최되는 “중세 수고 및 인문주의 서적 입문 연수”에는 꾸준히 세계 각지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와 학회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옛날의 말, 옛날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다수였던 적은 없겠지만 완전히 사라진 적도 없을 것이다.

더욱 직접적인 위험은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심급에서 유래하며, 급속하게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한때 백 명을 웃돌던 정규 연구원이 어느새 예순 여 명으로 줄어든 상황, 인쇄술 도입을 전후한 14~16세기, 즉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격변기의 지성사를 아울러야 할 인문주의 분과에 정규 연구원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그저 ‘징후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곳의 장점은 내 주변의 동료들이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질문이 있으면 바로 옆방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공문서학자 세바스티앙 바레 S. Barret)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IRHT에서 인원 감축은 학문적 지평의 축소로 귀결된다. 그러니 앞으로의 소원을 묻는 질문에 “십여 명의 정규 연구원을 충원하는 것”이라 답하는 현 연구소장 프랑수아 부가르(F. Bougard)의 말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점점 단기 프로젝트 위주로 바뀌어가는 연구 정책의 방향도 우려를 낳는다. “프로젝트에 따라 하는 연구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연구에 그칠 수 있다.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예상 결과를 미리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결과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결과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바레의 지적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혹자는 과연 IRHT가 필요한지, 일상의 편리를 증진하는데도 불평등, 기후 위기와 같은 급박한 사안을 해결하는 데도 아무 쓸모가 없을 말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데 왜 세금을 들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IRHT에 대한 지원을 줄여나가고 있는 정책결정자들의 속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세의 책, 특히 도서관을 대상으로 하여 어떻게 지식이 세대와 시대를 넘어 전승되어 왔는지를 연구해 온 도나텔라 네비아이(D. Nebbiai)는 “미래를 건설하려면 기억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억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사회는 다른 사회들과 마주서지도,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한다”고 갈파한다. 이 경고가 고담준론에 그치지 않음을 마리 크로니에(M. Cronier)가 관심을 쏟는 터키 지역의 기독교 공동체나 소니아 펠루스(S. Fellous)가 연구하는 튀니지의 유태인 사회처럼 존속이 위기에 처해 있는 소수집단의 사례들이 증명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떤가? 펠루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연구, 학문, 교육, 지식, 역사(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이 역사 아닌가?)야말로 현 사회의 위기에 대한 대응일 수 있음을 권력을 쥔 이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패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며, 우리의 상급기관들이 그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텍스트가 읽는 이를 필요로 하듯이, 이런 말도 들으려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가지리라는 것이겠다. 하지만 미래가 기억에 달려 있음을 떠올리자. 텍스트는 기억의 매체이며, 따라서 IRHT는 기억의 장소이다. 그러니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암흑기’를 살면서 고대의 정신적 유산을 남기기 위해 진력했다는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의 예를 따르는 것은 해볼 만한 내기일 것이다. 튀르캉-베르베르크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카시오도루스에게는 절망할 만한 모든 이유가 있었다. 그는 야만 속에서 살았고, 권력에 대해서도 낙담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비바리움(Vivarium) 수도원을 세웠고, 엄청난 양의 텍스트들이 그 덕분에 보존되었다. IRHT는 한 무리의 카시오도루스와 다르지 않다. 절망할 만한 모든 이유가 있어도 계속해야 한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카시오도루스의 유산도 남아 있지 않나. 앞으로 1500년 동안 또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문성욱 해외통신원/소르본대 박사과정·중세프랑스문학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중세문학을 공부하면서 <뤼트뵈프 시에서 가난의 의미들>이라는 주제의 석사논문을 썼다. 지금은 파리 소르본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뤼트뵈프를 비롯한 13세기 시에서 '저자'의 개념이 출현하는 과정이 당대의 역사적 조건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탐구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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