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쯤인가?!…현재 가장 논쟁적인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의 절박한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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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쯤인가?!…현재 가장 논쟁적인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의 절박한 호소
  • 박문정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 승인 2022.10.30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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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저항할 권리: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효형출판, 150쪽, 2022.09)

 

코로나에 대한 담론은 이제 ‘유행’이 지난 듯하다. 그러나 마치 예전과 같이 돌아온 것 같은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사소한 것부터 우리를 구성하는 세계의 질서와 체계가 분명히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이 ‘감지’가 인류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저항할 권리>는 포스터 코로나 시대에 대한 아감벤의 사유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아감벤은 백신 접종과 그린패스 도입 등 뉴노멀 시대를 구성하는 과정에 관한 의문과 고찰을 다루며 팬데믹으로 드러난 현 사회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현 인류를 대이동을 한 후 절벽에서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레밍에 빗대며, 우리 인간종의 미래를 심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레밍이라는 종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상실되어 그 본능이 죽음으로 변환되어 집단자살로 마감한다. 팬데믹의 사태는 철학, 신념, 이상, 사랑, 우정과 같은 삶의 명분과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류라는 종에게 그 정당성과 명분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는 코로나로 통제되던 시기에 우리는 사회활동, 경제활동 그리고 교육, 모임, 여행, 연애, 취미 등 모든 것이 통제되는 경험을 하였다. 우리의 삶은 단순히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우리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치들을 주체적으로 실천하고,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것인데, 팬데믹 사태로 인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긴급 상황에 따른 제한은, 한 번 시도된 이상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아감벤은 바로 이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감벤은 도덕적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과학(의학)이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되어버리고, 또 그 과학(의학)이 자본과 결합된 현재의 인류에게 이미 팬데믹 상황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예견될 수 있었던 것임을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와 질버르맨의 <미생물 폭풍>을 예로 들며 <저항할 권리>의 전작인 <얼굴없는 인간>(2021)에서 설명하였다. 여기서 아감벤은 전염병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두 눈에 ‘마스크’를 씌우지 말고, 진실을 마주하자고 하였다.  

<얼굴없는 인간>은 2020년 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하는 시기에 쓴 글이고 <저항할 권리>는 이후에 일상이 어느 정도 회복한 듯한 시기에 나온 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감벤은 <저항할 권리>에서 더욱더 강력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인류의 위기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즉, 팬데믹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던 초기에 마스크 쓰기 의무를 거부하는 노학자로 낙인이 찍혀 비판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주장하는 아감벤의 분명한 인문학적 입장이 <저항할 권리>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는 바이러스 학자도, 의사도 아닙니다. 단지 전염병에서 비롯한 극도로 심각한 윤리적, 정치적 변화에 관심 있습니다.”

<얼굴없는 인간>을 출간할 때 아감벤이 직접 서문으로 제안했었던 글의 제목은 ‘경고(Avvertenza)’였다. 즉 아감벤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우리는 어디쯤인가’의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 하며, 이 상황에 대한 인류의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를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디쯤인가(A che punto siamo)”는 <얼굴없는 인간>의 이탈리아아판 원제이다. 

아감벤은 <저항할 권리>에서 우리가 근대사회를 구성한 이후 ‘평화’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꼬집으며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었다. 백신접종 여부에 따라 사회 활동, 경제 활동 그리고 사랑과 우정의 행위까지도 통제되며, 법의 테두리를 표류하게 된 우리는 이미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보았다. 

<저항할 권리>에서 아감벤은 보다 실천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보인다. 2021년 10월 7일 이탈리아 상원 헌법위원회에서 했던 연설내용이나 11월 21일 베네치아에서 대학생들에게 했던 연설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안이든 ‘얼굴’을 들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연설 이후 아감벤은 법학자 우고 마테이, 베네치아 전 시장이자 철학자인 마시모 카치아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를로 프레세로와 함께 “의심 및 예방 위원회(Commissione dubbio e precauzione)”를 조직하였다. 

어쨌든 아감벤은 이 모든 경고는 철학자의 의무이자 역할임을, 약도 백신도 아닌 철학의 언어, 시어가 우리 존재를 밝히는 마지막 성냥이 될 수 있음을 단테의 <신곡> 천국편 17곡에 나오는 구절 ‘옴이 있는 곳을 긁게 만들어라’를 인용하며 강조한다. 여기서 단테는 십자군 전쟁에서 사망한 자신의 증조부 카치아귀다(Caccia guira degli Elisei)가 신으로부터 단테가 인류를 구원할 시인이라는 것을 예언할 임무를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2년 8월 23일 공개한 글 ‘말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A chi si rivolge la parola)’에서 아감벤은 시인의 임무와 시어의 역할을 집약한다. 


시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가?
시를 받는 것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필요 그 자체라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만 이 질문에 대답이 가능해진다. 
필요는 우리에게 친숙한 양식의 범주와 일치하지 않는다. 필요의 주체는 필연도 우연도, 가능도 불가능도 아닌 것이다. 
  [...]
 
시는 모든 글을 오가며 계속 여행하도록, 읽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되돌려 준다. 
 


아감벤은 불편한 진실 혹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거북한 무언가로 우리를 계속 돌려보낸다. 우리는 아감벤의 언어를 통해 인간이 진보와 번영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느냐 과학과 자본에 함몰된 현재를 직면하게 된다. 
  
아감벤은 <저항할 권리>에서 ‘무조건’이 전제되는 사회, 정치의 위험을 강조하고 우리에게 강력한 어조로 경고한다. 현재, ‘우리는 어디쯤인가!’인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박문정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이탈리아 작가와 문학을 중심으로 근현대 유럽 사회의 문화와 정치를 연구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안토니오 타부키와 지식인의 역할에 관련한 논문으로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 소르본 4대학, 본대학 등 3개 대학 공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 인문학술사회연구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이 책의 전작 『얼굴 없는 인간』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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