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민주주의와 청년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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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민주주의와 청년비례대표제
  • 박재욱 신라대·정치/행정학
  • 승인 2022.10.3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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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사상 첫 900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고령인구는 901만 8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 중 17.5%에 달한다. 2035년에는 30.1%, 2050년에는 40.1%, 급기야 2070년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46.4%로 올해보다 무려 28.9%p 증가세가 예측되고 있다. 반면 생산연령인구(15세~64세)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져 2022년 현재 71.0%이지만 계속 감소하여 2070년에는 46.1%로 24.9%p나 감소하여 인구구조에서 고령인구보다도 적어지는 역전 현상이 분명해진다. 

저출산∙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생산인구의 감소를 가져오고, 이는 노인 부양비 증가와 더불어 소비, 투자, 고용이라는 경제 3세트의 감소를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저성장의 고착화와 나라 빚의 증가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는 경험적 교훈을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인 일본의 작년도 고령인구는 29.1%로 우리보다 여전히 10%p이상 높지만 최근 10년간 한국의 65세 고령인구의 증가세는 평균 4.2%로 일본의 평균 2.1%보다 훨씬 빠르며, 2045년에는 37.0%로 일본의 36.8%를 넘어 OECD 38개국 중 현재 28위에서 껑충 뛰어 일본을 제치고 가장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투표자 수에서도 지난 20대 대선에서 60대는 33.1%로, 2030세대 26.9%보다 6.4%p 높아 대선 사상 처음으로 2030세대를 앞질렀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유권자수 비율 각각 21.1% vs. 36.1%에서 크게 역전되니 격세지감을 통렬히 절감한다. 

이와 같이 유사 이래 처음 맞게 되는 인구구조의 대격변기에 우리는 실버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실버민주주의(silver democracy)란 사전적인 의미에서 고령세대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에서 이들 고령층의 의사가 정책결정 과정을 좌우하고, 포퓰리즘에 젖은 정치권은 고령세대를 의식하고 중시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미 우리보다 심각한 고령화 사태를 겪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 유권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컨대 지난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결정은 고령자들이 투표에서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고령세대의 급격한 증가와 높은 투표율, 줄어드는 청년세대와 낮은 투표율로 인해 상대적으로 고령세대의 이익이 대의민주주의 과정에 과다 반영될 여지가 커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의 보수화도 필연적이다. 일본이 최근 급격한 보수 우경화의 길로 접어든 배경은 고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이러니 시급한 연금개혁 논의조차 꺼내지도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버 민주주의는 에디트 웨이스(Edith Weiss)가 말한 대로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를 저해하는 정치참여의 위기를 가중시킨다. 복지수요 및 사회보장 요구의 증가에 따라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의 부담 증가는 불 보듯이 뻔하다. 늘어나는 고령세대의 부양비에 지친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에 조세 부담 경감과 공평한 자원배분을 요구할 것이지만 국회나 행정부에서의 정책결정과정에 청년세대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공식화된 제도적 장치는 현재로선 미비하기 그지없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같은 세대 간 젠더 갈등이나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어 청년세대의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책무를 둘러싼 논란이 주요 정치적 이슈로 부각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우리 세대 중 일부가 제 아무리 이들 세대를 대리하거나 대표하여 그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려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한 그들이 야기할지도 모를 폭발적 시위나 혁명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청년세대의 대표성을 반영할 대안이 모색되고 강구되어져야 한다. 

하나의 대안으로서, 논란도 많고 유명무실한 현행 직능별 비례대표제를 개혁하여 세대 간 형평성 확보를 위해 청년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 미성년층이나 정치적 대표성이 취약한 2030세대를 위해 피선거권을 지닌 30대 이하에게 인구 비중에 맞게 비례의석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현재 청년세대인 20~29세까지 인구가 12.73%, 30~39세까지 인구가 12.91%이니 약 26%에다, 미래세대인 미성년층 0~9세 인구 7.10%, 10~19세 인구 9.10%까지 더하면 대략 42%이니 이에 비례하는 의석수를 국회 의석이나 지방의회 의석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현재 국회의원 비례의석수가 47석이니 30대 이하에게 절반 정도의 비례의석을 의무화할 수 있다. 여론과 정치권의 합의에 따라서는 추가의석도 가능하다. 참고로 현 21대 국회의원 중 2030세대는 총 11명으로, 이 중 지역구는 6명, 비례대표는 5명이다. 20대는 비례대표 2명에 불과하다.

청년세대의 피선거권의 나이도 좀 더 낮추고, 인터넷 투표도 조기에 도입할 수 있다. 또한 2030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해소와 정치적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정치교육이나 정치아카데미 설립 등 적극적 조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고령세대에게 자식과 손자 세대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잘 설득하여 이해를 구하는 동시에, 청년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청년비례대표제 도입과 선거제도 개혁 등을 이제 논의해야 한다. 미루고 싶다고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재욱 신라대·정치/행정학

신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주로 지방자치론과 정치학을 가르치며 정치학과 행정학을 넘나들며 교육하고 연구한다. 한국지방정부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및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행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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