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픽션이고, 이상한 천원짜리 변호사가 논픽션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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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픽션이고, 이상한 천원짜리 변호사가 논픽션이라면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2.10.30 0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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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친절하라.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 적막함을 피하고자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서 한동안 잊고 있던 플라톤의 권유가 때마침 흘러나온다.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넘어야 하는 첩첩산중인양 끝도 모르게 혼란한 세상 탓인지 가슴에 와닿는다. 

뉴스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반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천원짜리 변호사>같이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설정의 TV 드라마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며 화제성을 누리는 시기이다. 마음이 감동되고 따뜻해지는, 그러면서도 웃음과 해학과 풍자를 던지는 드라마가 연달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배경을 생각해본다. 

우리 저마다가 매일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드라마 주인공 우영우나 천지훈처럼 ‘공정과 정의와 상식’을 실행하는 변호사들이 ‘짜잔’ 하고 나타나 힘을 보태주는 설정에 대한 감정이입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들은 개인의 인생고뿐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와 불편부당한 문제들을 예리하게 통찰하며 바로잡는 만점짜리 해결사이다. 학연이나 혈연이 금수저이면서도 나름 장애나 혼외자라는 아픔을 가진 그들은, 소위 ‘빽’ 없는 이들이 당면한 부당하고 난감한 처지에 공감해주는 마음 따뜻한 인생 변호인이다.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맞서 평등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해주는 정의의 구현자이다. 가히 원더우먼이요, 어벤져스요, 홍길동 같다. 그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내편무죄 네편유죄’가 오랜 기간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 현란한 말솜씨로 도의를 운운하면서도 세상의 소금보다는 설탕으로 사는 법을 보여주며 금권력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회에서,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면서 이웃에게 용기를 주는 우리 삶의 변호인, 병든 사회의 해결사를 바라는 우리의 꿈을 일깨운다. 

물론 옛날부터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러한 주인공의 활극을 우리가 혹에라도 현실로 착각하거나 확대해석 하지 않도록 매번 드라마 시작 자막은 그 내용과 사건과 인물들이 ‘실제와 관련 없는 허구’임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내 힘겨운 삶의 변호사인양, 그 아픔과 역경에 함께 울고 승리와 기쁨에 더불어 웃는 동안, 우리 상상계에서는 이상한 우변호사나 천원짜리 천변호사가 논픽션이 되는 셈이다. 특히 하늘을 나는 고래나 희화화된 극적 판타지가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계속 상기시킴에도 주인공들이 정의와 상식과 평등의 집행자가 되기까지 매우 현실적인 역경들을 극복해낸 터라, 우리 각자가 지금 치르고 있는 삶의 전투도 모두가 겪는 일이요, 종국에는 과거형이 되리라는 생각에 위로받는다. 

반면에 뉴스는 갈수록 픽션급 서사가 되어가고 있다. 민생은 물론이고 일부 특수효과를 누리는 소수를 제외한 주변의 교육계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시국에 지쳐가는 와중에, 뉴스는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참담한 혹은 황당한 수위의 스토리들로 채워지면서 픽션보다 더 허구적이 되고 있다. 요즘 같으면 뉴스가 논픽션에서 픽션으로 장르를 갈아타도 이상하지 않겠다. 권불십년이라 하니, 예전 정권들처럼 지난 정권과 현 정권도 추후에 영화와 드라마 소재로 각색되고 해외시장에도 진출되면서 더 많은 허구적 요소가 더해지리라 예상된다. 

앞으로 뉴스가 시작될 때, 드라마처럼 안내 자막이 나오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이 뉴스에 나오는 내용, 사건, 때, 장소,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실과 관계가 없는 허구임을 밝힙니다.” 픽션 드라마가 논픽션이길 바라고 논픽션 뉴스가 픽션 같은 세상을 곧 이어받을 우리 학생들 말처럼, 이번 현생에서는 인간계보다는 상상계나 천상계가 훨씬 더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가치가 있나보다. 그래도 희망을 갖는 것은 90대의 노쇠한 내 어머니처럼 이 나라와 북한, 중국과 일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픽션같은 세상을 위해 매일같이 서너 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이 세상의 변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과 루스(Luce)재단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강의교수를 거쳤으며, 국내에서 현대미술사학회 회장, 원광대 평생교육원장, 대외협력처장, 국제교류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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