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삶과 사상, 저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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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직접 들려주는 자신의 삶과 사상, 저술 이야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23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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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을 보라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312쪽

 

이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자서전적인 책이다. 생애 마지막 저작인 이 책을 통해 니체는 자신의 가족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이런 자료는 니체의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 나아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하여 그때까지 자신이 발표해온 여러 책들을 하나씩 거론하면서, 책을 쓰던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집필 동기를 밝히는 한편, 각 저작이 출간되고 나서 사람들이 보여준 갖가지 반응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니체는 이 책을 1888년 10월 마흔네 번째 생일을 맞아서 쓰기 시작하여 11월 4일에 초고를 완성했고, 이듬해인 1889년 1월 초까지 수정과 보완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돌연히 광기에 빠져 쓰러진 뒤 10여 년간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지내다가 끝내 정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1900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질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가 유대 대중을 향해 예수를 가리키면서 했던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니체가 지칭하는 ‘이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바로 니체 자신이며, 이 같은 제목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다시금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리스도교를 겨냥한 니체의 대결의식이 담겨 있다. 이는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를 “내 말을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라는 구절로 끝맺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니체는 이 마지막 문장을 통해 자신을 디오니소스 신에 빗대고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들의 죄를 대속(代贖)했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예수의 이러한 희생이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교의 신이 인간을 자신의 죄를 벗어날 힘도 없는 무력하고 유한한 존재로 여기며 동정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인간을 유약한 존재로 보고 멸시하는 종교라고 생각한다.

 

니체는 자신을 디오니소스의 화신으로 본다. 디오니소스 신이 상징하는 것은 세계의 강인하고 충일한 생명력이다. 그리스도교가 이 세상을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는 불완전한 세계로 보는 반면, 니체는 넘쳐날 정도로 풍요로운 세계로 본다. 탄생과 죽음, 파괴와 창조가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 세계에서는 풍요롭고 충만한 힘이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면서 유희한다. 이러한 힘을 니체는 디오니소스 신이라고 불렀고, 그가 보기에 세계란 바로 디오니소스 신이 창조와 파괴를 즐기는 놀이터인 것이다. 니체 철학에서 강조되는 ‘초인’은 디오니소스 신 같은 생명력으로 어떠한 고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을 흔쾌히 긍정하면서 유희하듯 살아가는 자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니체는 각 부분에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라는 무척 도발적인 제목을 붙여놓았다. 이렇게 낯 뜨거울 정도로 자화자찬하는 제목들을 니체가 단 이유를 놓고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었다. 당시까지 많은 저작을 발표했지만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여 실망했던 니체의 콤플렉스가 반영된 것이라고 하거나, 몇 달 후 니체에게 닥친 광기의 전조가 이미 이 같은 과대망상적 제목들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니체가 이런 제목들을 붙인 것은 긍정적이고 충만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다분히 의도적인 조치였다. 1886년에 출간한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가치에 대해서 잘못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가치를 내가 평가한 대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허영심이 아니다(오히려 자부심이거나 대개의 경우 ‘겸손’이나 ‘겸양’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사상이 인류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이 같은 위대한 사상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겸손한 자를 좋아하지만, 니체는 남의 눈치를 보는 겸손을 천민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배격한다. 오히려 자신의 격에 어울리는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겸손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니체의 이런 교만 속에는 당대 유럽 사회에 팽배하던 순응적인 ‘노예도덕’ 내지 ‘무리도덕’에 보내는 조소가 담겨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사회에 순응하며 서로 다투지 말고 어울려 살 것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이런 식의 순응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창조적이고 위대한 것을 이루어내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사람을 보라』의 구성에는 겸손과 순응을 칭송하던 그리스도교와 유럽 사회를 비웃고, 그리스인들이 숭상했던 긍지의 덕을 회복하려는 니체의 의도가 깃들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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