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인이자 교육자 호라티우스가 들려주는 소박한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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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인이자 교육자 호라티우스가 들려주는 소박한 삶의 지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2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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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과 은둔의 현자 호라티우스 | 김남우 지음 | 문학동네 | 184쪽

 

이 책은 “사람들은 ‘시인’을 어떤 존재로 생각할까? 또 시인들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생각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시인 호라티우스가 ‘교육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전하고자 한 지혜에 대해 이야기한다. 

500년 공화정이 혼란스러운 내전으로 무너지고, 가이우스 옥타비우스가 마침내 황제가 되어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얻은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시인 호라티우스는 로마를 다음 시대로 이끌기 위한 백년제를 주관했다. 

호라티우스는 ‘백년제’의 기념 찬가를 짓고 합창대의 지휘를 맡는다. “옛것은 사라지고 새롭고 영광스러운 시대가 열렸다.” 쓰라린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평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라티우스의 가르침은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제의 주관자인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도 가르침을 전하려 했다. 시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백년제 찬가를 통해 로마의 미래를 위해 돌봐야 할 가치와 시민적 태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려 했다. 

헬레니즘 시대가 끝나고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마침내 호라티우스에게서 교육자 시인이라는 자의식이 깨어났다. 그리고 로마 문학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어렵게 되찾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지혜를 전파하길 원했다. 정치가 아우구스투스가 갈등과 분열, 내전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화합의 시대로 공동체를 이끌고 있었을 때, 시인 호라티우스는 로마의 들녘에 새로 태어난 세대가 예전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고자 했다.

‘행복’은 호라티우스가 평생 놓지 못한 화두다. 험한 내전을 겪은 당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호라티우스 역시 평온과 안정을 원했을 것이다. 그 시기는 불안과 공포, 살인과 약탈, 혼란과 고통이 가득한 시대였다. 젊은 남자라면 언제든 전쟁에 참가할 준비를 해야 했다. 이 오랜 내전은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게 될 사내의 승리로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그는 500년 공화정을 대신할 정부로 절대 권력의 독재정을 택했다. 고요와 평온을 오랫동안 바랐던 이들은 드디어 찾아온 평화의 여명 속에서 로마가 황제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평화가, 누구도 찬성하지 않은 방식으로 오고 있었다.

호라티우스는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자 했다. 처음에는 그도 출세를 꿈꾸었지만, 막상 겪어본 도시에서의 삶에 실망하여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이는 그의 시와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호라티우스는 이탈리아 남동부의 베누시아에서 해방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했던 시골 촌부의 아들은 큰 꿈을 가지고 로마로 유학을 가고자 했다. 아버지가 그와 동행했고 로마에서 아들을 돌보았다. 시간이 흘러 호라티우스는 다시 아테나이로 유학을 떠났다. 이렇게 출세를 위한 삶, 도시에서의 삶을 원했던 호라티우스였지만, 진귀한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로 대표되는 ‘서울살이’는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유명한 ‘시골 쥐와 서울 쥐’ 우화를 풍자시로 지어내 이를 표현했다. 시골 쥐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로 간다. 하지만 이내 거기서 요란한 소음, 개의 위협 등을 겪고 그곳은 자기가 찾던 진정한 장소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래서 시골 쥐는 다시 그의 고향, 농촌으로 되돌아간다. “길을 나서라Carpe viam”가 후에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로 바뀔 것임을 알리는 극적인 순간이다.

하나 농촌에서의 삶도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농촌의 삶은 필연적으로 궁핍하며, 이는 농사일의 고됨과 함께 가난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끝없이 원하는 자는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온은 전쟁으로 탈취할 수 있는 것이, 권력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재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와 권력을 쫓는 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지만, “현재의 삶”의 평온은 자족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인생의 유한함’이다. 이렇게 ‘오늘을 즐겨라’는 호라티우스의 시의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가난과 은둔에도 그가 만족스러운 것은 주연酒宴과 우정이 있기 때문이다. 술잔치와 우정이 없다면 농촌의 삶이 너무 단조롭기만 할 것이다. 호라티우스가 이야기하는 주연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치를 바라지 않고, 소박한 차림만을 원한다. 호라티우스는 이 평화로운 “나무 그늘 아래”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한적한 시골의 주연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충만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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