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상과 민족의식, 젠더적 각성의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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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과 민족의식, 젠더적 각성의 합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23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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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레타리아의 물결: 식민지 조선의 문학과 좌파문화 | 박선영 지음 | 나병철 옮김 | 소명출판 | 444쪽

 

이 책에는 식민지 시기 한국 좌파 문학의 기원과 발전, 영향에 대한 연구 성과가 담겨있다. 식민지 시대의 진보적 문학운동을 새롭게 재조망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물결이 은밀히 되돌아오는 비밀을 밝히고 있다. 당시의 진보적 운동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활력적인 문화의 기억은 역사적 후대에게 생생한 영감을 제공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직도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 있는 식민지 문학운동의 역동성을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이라는 신기원적이고 독창적인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 문학은 기존의 평가와는 달리 결코 카프에 국한되지 않았다. 당대의 진보적 문학의 다양한 흐름들은 흩어진 채 모여 있는 성좌와도 같은 소우주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 같은 소우주에서 발산된 물결은 유동성과 탄력성으로 심연에 깊이 각인되어 위기를 극복하는 생명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정통성에 얽매였던 사상의 편협성을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신조어이다. 식민지 시대 사회주의는 직선적인 계급 운동이 아니라 인종과 젠더의 중첩된 영역에서 회전이 걸린 움직임을 보였다. 이 책에서 ‘물결’이라는 은유는 그처럼 사회사상과 민족의식, 젠더적 각성이 합류해 유동적인 흐름을 이룬 넓은 강을 나타낸다.

그런 유동적인 물결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정치적 중심이 약한 대신 문학에서 번성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서구와 러시아,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서 한국 좌파 지식인들은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활동해야 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한국 좌파의 불리함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확고하고 통제적인 권위의 부재 속에서 한국 지식인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감독에서 자유로웠고 사회주의 사상을 창조적 활동에 적용할 때 많은 자율성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적 검열의 압박은 작가들이 통제를 우회하며 예술적 솜씨를 발휘하게 해 아이러니한 눈부신 결과를 낳고 있었다.

사회주의 사상은 한국으로 여행하는 동안 목적론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활력적인 물결을 창조한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적 문화는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페미니즘을 횡단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이기영의 마르크스주의와 염상섭의 민족주의는 만날 수 없을 듯했지만, 문학에서는 더 넓은 강의 물결을 이루며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염상섭은 동반적 여행자인 동시에 좌파 민족주의자로서 조금의 유보도 없이 프롤레타리아 물결의 큰 흐름을 주도한 작가였다. 또한 강경애는 남성조직인 카프에 가담할 수 없었지만 남성중심적 사회주의마저 넘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통해 진보적 문학을 확대시켰다. 그와 함께 카프의 맹원이었던 김남천은 위기의 시대에 아방가르드적 모험을 통해 모더니스트보다도 더 실험적인 미학의 정치화를 실행했다.

이 책은 염상섭과 강경애, 김남천의 문학을 다루면서 기존의 연구들을 쇄신하는 강력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염상섭은 흔히 카프와 대립한 민족주의자로 평가 되어 왔지만, 실상은 식민지의 경우 민족주의가 급진적 비판의 물결이 될 수 있다는 비밀을 보여준 작가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좌파 민족주의는 단순히 정통성에 얽매인 교조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또한 강경애는 사회주의에 의해 페미니즘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넘어서서 양자의 잠재성을 더 확장시킨 작가였다. 그녀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횡단하는 페미니즘의 방식으로 편협한 남성중심주의를 극복하며 사회주의의 경계를 더 확대시켰다. 김남천 역시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문학을 다양한 실험적인 방법으로 혁신시킨 작가였다. 그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분리를 넘어서고 역사성과 일상성의 대립을 해체하며, 모더니티의 밑바닥 이면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일상을 통해 역사성이 더 잘 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전쟁의 격랑에 휩싸인 1940년대 초반에 끝이 났다. 사회주의가 정치적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음은 물론 문화운동 역시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방해를 뚫고 새로운 반향을 얻어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 정치학의 모델이 되었다. 실제로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은 식민지 시대의 진보적 문화운동에서 명료한 영감을 얻은 실천이었다. 프롤레타리아의 물결은 민중의 물결로 귀환했으며 이번에는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 점에서 식민지 문화운동은 짓밟힌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역사의 제분기를 돌리는 밀알이 된다는 스튜어트 홀의 격언을 입증한 셈이었다.

오늘날은 전지구적 빈부격차와 실직상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 등 식민지 작가들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난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의한 무의식의 식민화로 인해 사회주의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시대는 제임슨이 말한 무의식의 식민화를 뚫고 프롤레타리아의 물결과 민중의 물결을 넘어 제3의 물결이 귀환해야 하는 시대이다. 지금의 프롤레타리아도 민중도 사라진 상황은 김남천이 경험했던 위기의 시대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민중이 소멸된 시대에도 프롤레타리아 물결의 숨겨진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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