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자유의 관계에 관한 아름답고, 새롭고, 끝없이 확장되는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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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자유의 관계에 관한 아름답고, 새롭고, 끝없이 확장되는 사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23 0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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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브리바디: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 올리비아 랭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412쪽

 

영국 대표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회고록과 비평을 유연하게 오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 보여왔다. 특히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에서 펼친 대담한 논의들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기본권조차 위태로워진 시대를 읽는다. 인간이 누려 마땅한 것들을 환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연대할 것을 촉구해온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치열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다.

“20세기의 해방운동이 21세기에 실패하고 있다.” 점점 더 만연해지는 혐오와 분열을 목격하며 올리비아 랭은 이렇게 요약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관통하며, ‘다른 몸’에 가해진 억압과 ‘모든 몸’에 마땅히 주어져야 할 자유를 환기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별과 젠더, 인종, 사회적 계급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외쳤던 수많은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의 사유와 투쟁을 만난다. 

저자는 독자들을 그 논쟁 한가운데로 이끌어, 우리가 미약한 성공과 처절한 실패 끝에 천천히 전진해왔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 전진은 억압의 대상인 나약한 몸들이 이루어낸 것이라는 사실도. 평범한 인간의 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세계를 재형성해왔는지 보여주는 연대기인 동시에, 다시금 그 저항에 참여하길 촉구하는 선언문과 같은 책이다.

“20세기의 위대한 해방운동이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임신 중지의 불법화, 시위와 파업의 폭력 진압, 골 깊은 양극화를 먹이 삼는 정치까지, 역행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저자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책은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 투쟁의 산물이 이토록 급속히 뒤집히고 있음을 환기하고, 나아가 또다시 쟁취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 중심에 빌헬름 라이히가 있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긴장의 형태로 몸에 남아 성격을 경직시킨다는 ‘성격 무장’ 이론으로 잘 알려진 사상가로, 자유로운 성이 그 무장을 해제하고 나아가 왜곡된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애제자,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융합한 ‘성 혁명’과 ‘성 정치학’의 아버지라 불린 그가 어째서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까? 20세기 해방운동을 관통하는 이 여정에서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로 이끄는 안내자인 동시에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별과 젠더, 인종, 사회적 계급을 넘어 보편적 인권을 외쳤던 수많은 사상가, 활동가, 예술가를 만난다. LGBT 운동의 선구자 히르슈펠트, 최악의 방종으로도 그 방종에 대한 경고로도 읽히는 사드 후작, 감옥에서 탄생한 흑인 해방운동가 맬컴 엑스, 급진적 페미니즘 운동가이자 그 자신이 여성 혐오의 피해자였던 앤드리아 드워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논의는 완전무결하지 않고, 서로 첨예하게 부딪치기도 한다. 히르슈펠트는 피임을 합법화하기 위해 우생학에 동조한 성 해방론자들과 뜻을 같이했다. 워싱턴 행진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낸 인권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은 성추문으로 끝내 이름이 잊히고 만다. 라이히에게는 정신분석학이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프로이트가 “우리에 갇힌 동물” 같았고, 프로이트에게 라이히의 이론은 “취미거리”에 불과했다. 랭은 이들의 사유와 투쟁, 실패를 균형감 있게 펼쳐 보임으로써, 그 논쟁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정적인 한 순간의 산물이 아님을, 미혹한 인간의 처절한 실패와 미약한 성공을 통해 점진적으로 획득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기시감을 토로한다.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유혈 충돌한 ‘샬러츠빌 사태’를 바라보며 KKK단의 만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 아나 멘디에타가 온몸으로 고발한 아이오와대학 기숙사 여대생 살인사건은 여전히 같은 형태로, 더 잔혹한 형태로 반복된다. 나치가 선동을 위해 사용한 미개한 대중과 그렇지 않은 대중으로 나누는 레토릭은 오늘날 어디에서나 울려 퍼진다. 그러나 저자는 역행하는 세계를 개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여정의 끝에 “모든 것은 취소될 수 있으나, 모든 승리는 다시 싸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란의 히잡 시위 등 자유를 향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긴 여운을 남기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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