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여정이 나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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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여정이 나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 문소영 명지대학교·음악치료학
  • 승인 2022.10.2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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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음악의 힘: 내 감정을 다스리는 클래식 수업』 (문소영 지음, 다산초당, 260쪽, 2022.09)

 

“제가 요즘 많이 힘든데 어떤 음악을 들으면 기운이 날까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전공이 음악치료라는 것을 밝히면 종종 받는 질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한 이에게 특정한 악곡을 바로 답해주기는 곤란하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음악치료’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치료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말하면, 훈련받은 음악치료 전문가가 목적과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이런 음악이다’라는 단순 매칭이 아닌, 치료 세팅에 따라 엄밀한 곡 선정과 적용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하지만 그런 곡목을 알려달라는 제안을 여러 경로로 받다 보니, 전문적인 음악 중재와는 별개로, 누구나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그에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적잖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출판사로부터 ‘클래식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이라는 주제로 ‘음악의 힘’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쉽지 않은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치료’와 ‘클래식’이라는 두 단어를 연결하는 것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가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인 『음악의 힘』이다. ‘내 감정을 다스리는 클래식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책을 읽을 독자와 전문 음악치료사에게 이르기까지 한 번쯤 참고할 만한 유용한 음악 리스트와 해설을 제공하고 싶었다.
이 책은 음악치료 기법에 기초하지만, 임상적인 음악 중재를 넘어 ‘음악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모토로 클래식 음악을 안내한다. 특히 사랑, 일, 휴식, 삶,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클래식을 소개하고 감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10분 힐링 음악감상’이라는 섹션을 통해 실제 감상을 어떻게 공유하는지 사례도 접할 수 있다.

음악치료분야에서 나의 세부 전공은 신경재활음악치료이며, 내담자의 기능 회복과 재활을 목적으로 뇌가소성에 기반한 음악중재를 적용한다. 그와 관련된 사례를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병원에서 음악치료 임상을 수행하며 만난 20대 여성이 있었는데, 뇌 전반의 심각한 손상으로 인해 마비의 정도가 심했다. 이 내담자는 사지마비로 휠체어로 이동해야 했고, 극도의 연하곤란으로 언어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그런데 내담자가 음악치료실에 입실한 뒤 피아노 건반을 발견하자 마비로 인해 건반에서 손이 미끄러지는 일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손으로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악곡을 연주한다기보다는, 악기를 재활의 도구로 활용해 다감각적이고 기능적인 손가락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치료의 의도이다.
어느 날 내담자가 건반을 치는 것을 듣다가 감지되는 멜로디가 있었다. 뚜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도에서부터 시작된 음의 진행이 의미 있는 패턴을 형성했다. 바로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의 멜로디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후 와이먼(Addison Wyman)의 「은파(Silvery Waves)」 등 다른 곡도 연주를 시도했는데, 내담자에게 내재된 음악 기억이 마비된 손을 움직이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내담자의 경우 우선 건반이 주는 시각적인 레이아웃이 누르고 싶은 자극을 주었고, 건반을 눌렀을 때 나는 청각적이고 음악적인 피드백이 움직임을 정교하게 만들고, 강화시킨 것이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던 잠재된 기억이 특정한 멜로디를 완성하는 것을 초월해 마비된 몸까지 움직임을 시도하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바로 ‘음악의 힘’을 목도한 순간이었다.
 
『음악의 힘』에 실린 내용 중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으로, 인생의 영원한 의문을 해소할 수 없을 때 추천하고 싶은 쇼팽의 「스케르초 2번(Scherzo No. 2 in B-flat Minor)」이 있다.
 

이 곡은 내가 대학 졸업 연주회에서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당시 유명한 피아노곡을 모은 CD 전집에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스케르초 2번」을 듣고 그 강렬함에 압도돼 한동안 충격에 빠질 정도였다. 지도교수님은 좀 더 스케일이 크고 테크닉적으로 화려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결국 이 곡을 선정했다. 이 곡을 수천 번도 넘게 연습했는데, 인생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라는 곡의 흐름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삶의 전환점에서 느끼는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이 곡이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듯한 도입부의 셋잇단음표와 그에 대한 응답인 듯 매우 강한 옥타브의 화성적 진행으로 시작된다.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유쾌하지도 않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대가 없이 행복을 얻을 수 없기에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리라. 여러분도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면 이 곡을 듣고 반문해보기를 권한다. 삶은 자주 침묵하지만 영원히 대답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클래식 하면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자주 접해야 그 묘미를 알 수 있을 텐데 장벽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예전보다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으로 이루어진 정 트리오로 대표되는 1세대 클래식 음악가들을 시작으로, 조수미라는 프리마돈나를 거쳐, 피아니스트 10년 주기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임동혁, 조성진, 임윤찬이라는 신예 연주자들에 이르기까지 이제 클래식에서도 한류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클래식 붐을 일으킨 좋은 음악가들이 많아지고 우리의 문화인프라가 성장한 것과 더불어, 스마트폰만 있으면 원하는 곡을 언제든지 찾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반면에 음악에 대한 이해도는 깊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음악감상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음악은 작곡자의 의도, 보편적인 감상평을 포함하는 ‘음악 리터러시(literacy)’가 존재한다. 음악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음악 리터러시를 바탕으로 개인의 감상을 자유로이 확장해야 한다. 『음악의 힘』이 그러한 능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클래식 음악으로의 여정이 나의 내러티브를 만든다. 음악을 감상하며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찾아내 심리적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구해보자.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며 ‘클래식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이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 탐구 여정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기대한다. 우선 본문에서 음악에 대한 소개 및 음악감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에 관한 해설을 읽는다. 그다음 「그림과 함께 듣는 음악」은 QR 코드를 통해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함께 감상할 것을 권한다. 연상되는 심상(image)에 도움을 주는 간단한 제시문이 도움을 줄 것이다. 이어지는 「같이 들으면 좋은 음악」에서는 본문의 곡과 함께 들으면 좋은 악곡을 간단한 해설을 덧붙여 제시했는데, 독자의 플레이 리스트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
책을 다 읽었다면, 이제 스마트폰을 켜고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탐색하거나 콘서트홀에서 라이브로 연주를 들어보자. 당신의 삶에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문소영 명지대학교·음악치료학

명지대학교 통합치료대학원 음악치료학과 교수. 호주 멜버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음악치료 석사 디플로마(Graduate Diploma in Music Therapy), 동 대학원에서 음악치료 전공으로 석사(M.Mus) 및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다. 세계음악치료협회(WFMT) 대외홍보위원을 역임했으며, 2023 World Congress of Music Therapy 학술위원회 논문심사위원, 한국음악치료심리재활학회 및 한국통합치료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다. 『음악치료 기법과 모델』을 공저했고 다수의 저서를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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