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규범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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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규범의 형성
  • 계승균 부산대학교·법학
  • 승인 2022.10.2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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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인간과 인공지능 그리고 규범』 (계승균 지음,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308쪽, 2022.09)

 

인간과 사회의 형성됨에 따라 여러 가지 규범, 종교규범, 도덕규범, 윤리규범 등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등장과 함께 규범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영역이 종교규범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를 중심으로 논의하면 신이 인간을 창조하여 일종의 규범을 인간에게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규범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규범 관계를 형성하였지만, 근대 법규범의 등장과 그 내용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간 사회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근대 이후의 법규범에는 가능하면 종교규범, 도덕규범, 윤리적 내용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법규범의 탈종교화, 탈도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그 잔재가 우리나라의 법규범에도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존속살해죄가 아직도 일반살해죄에 비해서 높은 형량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합헌으로 판정을 받은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도덕규범이 법규범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인간을 창조하였다. 법인제도가 그것이다. 가공적이고 추상적 존재인 법인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거의 자연인인 인간과 거의 동일한 법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인간과 동일한 생명체인 동물 역시 인간의 인식 변화에 따라 이제는 ‘동물권’이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나타날 정도로 동물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반려동물이라는 명칭으로 인간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법감정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 규범은 인식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그것이 도덕규범이든, 종교규범이든, 법규범이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여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늘 규범 내용은 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법규범은 인간의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고, 인간만이 우주에서 권리 주체가 되고, 법률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머지는 모두 인간행위 대상 또는 객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거의 인간 수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규범의 영역에 다소 혼란을 가져다 주고 있다. 여기서 인공지능이 문제 되는 이유는 인간이 인공지능이 행하는 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인공지능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하면 이는 인간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 규범학의 입장에서 인공지능이 문제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인공지능이 행위주체나 권리주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시장이나 창작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영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 모를 정도로 변화의 속도와 기술의 발전이 빠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필자의 앞선 저술 내용, 인공지능과 지식재산권이라는 저서의 앞 단계에 해당하는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하면서 인공지능 자체가 법규범에 수용될 때에 과거의 법규범 경험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의 법규범에서는 인공지능과 유사한 존재들이 없었는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이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인공지능의 규범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과 같은 생명체인 동물은 법규범에서 어떠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지 또는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인간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법인제도나 동물의 지위와 관련된 제도의 역사적 변천이나 현행 규범 제도 내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면 인공지능이 법규범의 내부로 포섭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이 결합된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들이 행하는 행동에는 마치 인간과 동일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즉 관념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제적인 생활행위 및 법률행위를 하는 눈에 보이는 존재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법규범에서 평가하는 규범적 평가를 적용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평가에 있어서 인간의 법감정(法感情, Rechtsgefühl)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법규범에 규정되어 있는 여러 가지 제도들이나 법규범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공지능이 법규범에 들어올 여지(餘地), 또는 틈이 존재한다. 그리고 법규범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규범에서 법규범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많은 변화가 있었고,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법규범은 고정된 어떤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유기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규범도 새롭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이미 인공지능과 관련된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특정 분야라든지 당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이미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윤리적인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장착된 자율주행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이 우리나라, 미국, 독일, 일본 등의 도로교통과 관련된 법규범에서 이미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비록 기계류이기는 하지만 윤리적 규범과 법규범이 함께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윤리적 규범은 정밀한 의미의 윤리는 아니지만 기술을 통해 제작된 물건이나 기술 자체에 대해서 공학자가 지켜야 할 직업윤리 또는 학문적 윤리에 대해서 주로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내용이 추상적이고 어떠한 행위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내용이지만, 이러한 기술윤리적 규범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법규범으로도 변화될 수 있다. 법규범으로의 변화 가능성은 기술이나 과학의 발전과도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것은 비단 법규범만이 아니다. 따라서 신학자, 법학자, 사회학자, 교육학자, 윤리학자, 공학자 등이 모여서 함께 논의하여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된다. 


계승균 부산대학교·법학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LL.M., 부산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변협의 <인권과 정의> 등 다수의 학술지 편집위원, 한국저작권법학회와 한국지식재산학회의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연구영역은 지적재산권법과 정부계약법이다. 「저작권과 표현의 자유(2021)」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저작권과 소유권』(2015), 『인공지능과 지식재산권』(2020), 『공공계약법의 기초이론』(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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